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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주 Jan 29. 2021

영자신문 기자라는 겉멋에 취해

영문 타자기와 12현 기타를 두들기며

유신정권 끝 무렵인 1970년대 말 교내 영자신문 편집국장이랍시고 으스대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를 향해 불타오르는 당시의 거센 사회적 열망에 기름 한 방울 얹지도 못하는 의식수준이면서. 인문관 1층 구석의 영자신문사 사무실에서 자장면 시켜 끼니를 때우고, 무료하면 12현 기타를 두들기며 시간을 죽였다. 정규 과목 수강은 기사 마감 등을 이유로 과감하게 빼먹기 일쑤. 이렇게 낭만 아닌 낭만을 즐긴 덕에 훗날 음악 비전공자로서는 드물게 대중가요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는데…. 흐뭇한 추억도 많았지만 기억하기 싫은 일들 역시 적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국장석에서 칼럼 타이핑. 기성 언론을 모방한 기자증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
신문이 나온 후 후배 간부들과 지면 평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
김연준 당시 총장과의 신년 인터뷰. 예의를 갖춘답시고 양복에 넥타이를…
대학시절 4년간의 트레이드 마크. 검은 옷에 '빨간 T' 무늬가 있는 티셔츠 차림
이런 교내 신문 기사까지 스크랩해둔 걸 보니 나름대로 겉멋이 제대로 들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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