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정훈국 근무 당시 한동안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6·25 참전용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절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그는 내 결혼식 때 미국 은행 수표로 축의금을, 첫아이 출생 때는 축하 카드를 보내오는 등 내게 늘 남다른 정을 표했다. 나이는 나보다 30살 정도는 많았지만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방한 때 알게 된 ‘젊은 한국군 친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했던 것 같다.
예비역 미 육군 대위 루이스 T. 스프레이 씨가 30년 만에 한국에 온 건 제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5월이었다. 그는 LA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6·25 때 참전지를 둘러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는데, 외무부와 국방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강원도 홍천 육군 제11사단 지역 방문이 성사된 것이었다. 고위급도 아닌 미군 참전용사의 개인 자격 요청에 한국 정부가 예산과 인원을 할애해가며 응한 것은 분명 이례적이었다. 제5공화국 정권 전반의 기조였던 미국과 미군에 대한 우대정책에 기인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외무부 북미과의 협조 요청을 접수한 국방부 문화홍보과는 미국 참전용사 부부의 11사단 지역 방문 안내 역할을 내게 맡겼다. 국방부 측 요원으로 외무부를 방문해 북미과장의 간략한 배경 설명을 듣고 ‘맡은 바 임무’ 수행에 나섰는데, 운전기사가 딸린 렌터카에 그들 부부를 태워 홍천을 오가는 것이었다. 모든 일정은 11사단 정훈참모와 사전 협의된 대로 무사히 마무리됐다.
수십 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처럼 들뜬 외국인 부부와 서울~홍천을 오가며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거의 기억에 없다. “Back to civilization!(다시 문명 속으로!)” 11사단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서울 초입에서 참전용사 부인이 나직이 내뱉은 말이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한마디는 뇌리에 남아 있다. 당시 조수석에 앉은 내게는 매연에 찌든 거무튀튀한 느낌의 공장지대가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