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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주 Mar 07. 2021

'양키 고 홈'을 외치지 않는 유일한…

미군에게 한국을 자랑스럽게 표현했던 한때의 수식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정훈국장의 주한미군 장교 대표 접견 (2) MND 투어 참가자 국방부 방문 (3) 주한미군 국방부 방문 시 다과회를 위해 한복 정장 차림을 한 여직원과 (4) 주한미군 장교 대표의 사후 감사 서신.


"전 세계에서 ‘양키 고 홈’을 외치지 않는 유일한 나라(The only country in the world that doesn't shout 'Yankee Go Home.')" 1981년 말쯤 전역한 해군 소령으로부터 넘겨받아 2년간 수행한 국방부 정훈국의 한미친선활동(국방부 오리엔테이션 투어 : MND Orientation Tour) 사업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이 문구였다. 한국에 신규 배속된 주한미군 장교·부사관들이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전하는 정훈국장 환영사의 말미는 이 문구로 장식됐다. 1982년 3월 국내 반미운동의 효시격인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발생에도 불구하고 미군에게 한국을 자랑스럽게 표현하는 이 수식어는 한동안 유효했다.

MND 투어 참가 주한미군들의 오전 일정. 동작동국립묘지(현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와 국방부 방문, 서울타워 관광, 한국의집 오찬 등.


돌이켜 보면 내가 국방부에 근무했던 제5공화국 초기 주한미군에 대한 정권 차원의 대접은 극진했던 것 같다. 한국 군부의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 등도 미국이 적당히 눈감아주지 않았던가. 미국 입장에서 정권의 정통성(legitimacy)이 있든 없는 ‘혈맹’ 한국의 조속한 정치적 안정을 바란 건 주지의 사실. 이에 직·간접으로 힘입어 집권한 군부 세력으로서는 군사외교 차원을 떠나 자기네 정권 유지의 안전장치라는 점에서도 주한미군을 잘 모셔야 했을 것이다.

MND 투어 참가 주한미군들의 오후 일정. 비원 관광과 OB맥주 공장 견학, 태릉선수촌 및 육군사관학교 방문, 워커힐 가야금극장식당 쇼 관람 및 만찬 등.


1급 위험지역인 한국에 근무할 것을 자원한 미군 장교·부사관을 대상의 1일 MND 투어는 주한미군 공보실(PAO)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수행됐다. 주로 수도권 지역에서 선발된 일정 인원이 정복 차림으로 참여했고, 난 계획 수립 실무에서부터 시행 당일의 안내요원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 대외홍보 공로(?)로 1982년 12월 문화공보부 장관 포상의 군 대상자로 추천돼 차관이 대리 수여하는 표창장을 받았는데, 당시 차관이 정권 실세 ‘스리 허‘ 중 한 명인 허문도였다. 크지 않은 체구의 곱상한 외모는 언론 통폐합을 주도한 악역(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1982년 문화공보부 장관 홍보 유공 포상의 군 대상자로 추천된 공문과 당시 정권 실세 '스리 허' 중 한 명이었던 허문도 문공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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