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두 번째로 얻은 귀한 라이선스인데…
대한민국에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 당연히 운전면허 따기 경쟁도 각 직장마다 구성원들 간에 불이 붙었다. 언제 마이카를 소유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지만 면허는 따놓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국방부 근무 당시 중위 3호봉의 월급 15만원을 받는 서민 처지이면서도 거금(?)의 학원비를 들여 1종 보통 운전면허를 획득했다. 그때가 1983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코스와 도로 주행 등 실기 합격 판정을 받자마자 행상 아주머니가 재빨리 달려와 “축하합니다~”라며 애교 있게 내민 박카스를 사 마신 기억이 난다. 합격의 기쁨과 함께 어우러진 여름철 박카스의 청량감을 만끽하면서 머잖아 마이카족이 될 꿈에 부풀었었다. 당시의 감회가 지금도 새롭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2021년 5월, 내 인생 두 번째의 라이선스인 대한당구연맹 심판(3급) 자격증을 얻었다. 당구 입문 수십 년 경력자에게도 생소한 스누커와 잉빌(잉글리시빌리어드) 등의 룰을 익히느라 애를 써야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돈과 시간 등 공을 들여 ‘땄다’기보다는 연맹과 주변의 배려로 ‘얻었다’는 느낌이 더 짙은 것 같다. 이 심판 자격증은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 세 번째 라이선스일 수도 있다. 1983년 말 전역을 앞두고 신문사에 입사해 보도증(속칭 프레스카드)을 받았었다. 이건 회사에서 발행하는 신분증이 아니라 5공 정권의 문화공보부가 발행하는 일종의 보도 면허였다. 이게 없으면 밖에 나가 기자 대접을 못 받았는데, 어쨌거나….
운전면허를 땄다고 해서 곧바로 차를 몰고 시내 주행에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 운행 경험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적절한 연습 내지 연수 기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심판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심판이 곧 경기 진행의 주관자인데 사안별 대처가 어눌하거나 판정 실수라도 하면 선수들이 개별 시합을 망치는 건 물론 대회 전체에 흠집을 남길 수도 있다. 대한당구연맹이 수시로 실습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것도 이 때문일 텐데, 빠짐없는 참여가 절실해 보인다. 연맹이 부여한 자격번호 2021-089를 ‘장롱면허’로 썩히지 않으려면 주인장이 하기 나름이다. 나이는 능력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주변에 입증해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