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새워둔 원칙이 있다. 지나다니면서 만나는 수용가는 들러서 가자는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는 우연히 들러서 따로 오가는 시간이 없지만, 나중에 일정표대로 멀리서 찾아오려면 그 시간을 일부러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월초에는 멀리 있는 것을 점검하고, 월말에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다. 회사 가까이 있는 것은 언제라도 쪼르르 달려와서 점검을 할 수 있지만, 멀리 있는 것은 몇 십분이라도 걸리기 때문이다. 월말에 비상출동이라도 걸렸는데, 멀리 있는 것을 찾아가려면 시간에 쫓길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월말에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주자는 것이다. 월초에 비상출동이 걸려서 일정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월말로 미룰 수는 있지만, 월말에 비상출동이 걸려서 점검을 하지 못한다면 이 달에 점검해야할 것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월은 28일까지 있어서 다른 달보다 일수는 적어도 근무일수는 꽉 찬 20일이다. 토, 일요일을 빼고는 중간에 쉬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월말에는 여유가 있었다. 금왕리와 도자기 마을을 돌고는 신륵사 관광지 경내에서 점심을 먹고 차에서 쉬었다. 며칠 전에 대표가 전기안전관리 팀을 모아 놓고는 또 한소리 했기 때문이다.
“저는 아주 급합니다. 이번에 전기안전관리 수용가가 1/3이 줄었습니다. 375에서 절반이 줄었고, 시청화장실이 다 날아갔고, 양평군부대가 떨어져 나갔어요. 물론 이건 부장님 과장님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긴장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수용가에 가면 10분 할 걸 30분 점검을 한다든지, 어떻게든지 양이 줄었으면 질로 승부를 봐야할 것 아닙니까? 왜 오전 10시 반에 점심을 먹고 하루 종일 집에 들어앉았다가 옵니까? 왜 도서관에 앉았다가 옵니까?
“전기안전관리 팀 외에 이 사무실에 있는 분들도 다 들으세요. 예를 들어 17명 임금을 주고나면 나에게 떨어지는 것이 그만큼이 안 나와요. 그런데도 그렇게 즐겁습니까? 결혼식장에서 우는 거 아니고, 장례식장에서 웃는 거 아닙니다.”
한 보름은 잠수를 탔던 대표가 나와서 작심하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내 이야기도 들어 있다. ‘시청 화장실 날아간 것’이 내 수용가였고, ‘양평 군부대 떨어져 나간 것’도 내 것이었다. ‘도서관에 앉았다가 온 것’도 나다. 그래서 도서관에도 못 가고 신륵사 주차장에서 책을 펴 들었다. 이제는 차 시동을 켜지 않아도 햇볕만 받으면 차 안이 그리 춥지 않아 낮잠도 잘만했다.
보통 아침에 차를 타고 나오면 이렇게 쉴 때 출발하기 전에는 너무 일러서 보지 못한 전화 업무를 보아야 한다. 정기검사 때 불합격해서 재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영주오피스텔에 ASS를 갈고 재검사를 신청을 했다. 여기 정기검사를 한 사람이 김형준과장이다. 김형준? 이름으로 봐서는 내 조카뻘이다. 나보다 항렬이 하나 낮은 조카들이 가운데 자를 형자로 쓴다. 사촌의 아들 중에는 같은 이름도 있다. 요즘 다시 재기되는 이름 중에는 내 손자뻘이 되는 이름도 있다. 김재규다. 김재규는 실재로 우리 종친이다. 1979년 12월 26일 부마항쟁 같이 유신반대자들을 탱크로 쓸어버릴 계획을 세웠던 박정희를 처단한 김재규 말이다. 자랑스런 민주투사가 우리 종친이다. 영구집권을 위해 미쳐가는 유신정권을 종식하고 민주화를 앞당긴 인물이다. 며칠 전에 이 김재규의 판결을 재심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판결 17일만에 사형한 김재규의 죄명은 내란이었다. 그것도 군법을 적용해 총살형을 당했다. 재판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늦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김형준은 그 위 항렬인 내 조카벌이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어서라도 혹시 금령김씨가 아니냐고 물어 볼 수는 없다, 어느 검사현장에서 다시 만나면 물어 볼 참이다. 이번에는 업무 이야기만 했다.
“영주오피스텔에 ASS를 갈고 재검사를 온라인으로 신청했는데, 왜 합격증은 안 보내 주세요. 나도 가지고 있다가 수용가에 전달해 주어야 하거든요.”
“그것 때문에 전화하셨어요? 그건 ‘전기안전여기로’에 들어가서 뽑을 수도 있어요. 내가 보관한 것을 하나 사진으로 보내 드릴게요.”
그래도 몇 번 봤다고 친절하게 대해 준다. 기왕 통화를 한 김에 한 가지 더 물어볼 것이 생각났다. ㈜풍년에 까치집을 지은 것을 함께 봤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시간 좀 돼요? 나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서 그러는데....”
“예, 돼요. 뭐가 궁금하세요.”
“지난번에 풍년에서 까치집을 봤잖아요. 글쎄 그 까치집 때문에 생쑈를 했어요. 전기안전관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뻔하잖아요. 한전에 이야기해서 책임분계점 COS 내려 달라고 그러고, 까치집 헐고 바람개비 달 배전전기공사업자 불러서 작업 하라는 소리 밖에 못하잖아요.”
“그렇지요 그게 다지요. 뭘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글쎄, 풍년에서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자기들이 포크레인 바가지가 거꾸로 바뀌지도 않는 걸, 바가지 뒤에 타고 올라가서 까치집 헐고, 바람개비 달고, 다 했데요. 한전책임분계점은 안 열고, ASS는 내렸겠지요. 난 그것도 몰랐어요.”
“부장님,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그게 다 부장님 책임이에요. 만일 사고가 났더라면 부장님도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요.”
“그래요?”
“무슨 조사를 받는지 아세요? 점검기록표에 ‘안전관리자의 허락 없이 전기실에 출입하지 마시오’라고 고지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봐요. 그게 있으면 부장님의 책임은 없는 거지만, 그런 안내를 하지 않았으면 책임을 져야 해요. 그 사고에 대해서요.”
또 한 가지 묵혀둔 질문이 있었다. 자비농원의 판넬 자체공사였다.
“또 하나 질문이 있어요. 어떤 농원에 갔더니, 농원 주인이 전기 판넬 공사를 했는데, 접지가 없어요. 접지 공사를 아주 안 했어요. 안전공사에서 정기검사도 했는데, 지적을 안 했데요. 이거 아주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럼요. 아주 위험하지요. 그것도 부장님 책임이에요. 내 한 가지 물어 볼게요. 그 농장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뭐에요. 대답해 보세요.”
“판넬마다 접지가 없는 거지요.”
“아니에요 틀렸어요. 무자격자가 전기공사를 한 거예요. 자기 집에 전기 공사를 해도 아주 경미한 것, 그러니까 콘센트를 간다거나 전등을 다는 것 정도에요. 판넬을 옮기거나 신설하는 공사는 집 주인도 못해요. 자격이 있는 업자가 공사를 해야 해요. 부장님이 점검기록표에다가 ‘여기는 접지가 빠졌다’고 쓰잖아요. 그러면 공사는 인정한다는 의미잖아요. 전기안전관라지가 그런 불법 공사를 인정했다고 간주가 되잖아요. 그런 전기안전관리자는 처벌대상입니다. 이렇게 쓰셔야 해요. ‘불법 공사를 하지 마세요. 그럴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하고 경고를 해야 해요.”
“아니, 왜 정기검사 때는 그런 걸 지적을 안 해요. 우리는 그걸 지적하지만 수용가에서는 시끗도 안 해요. 심하게 나갔다가는 업체 바꾼다고 하면 꼬리를 내려야 한다니까요? 우리가 뭔 힘이 있어요.”
“정기검사 때는 저압 메인판넬만 보지, 그 하부의 판넬은 ‘전기안전관리자의 관리 하에 안전하게 사용하세요’하고 말아요. 우리가 보는 것은 사용전검사 때나 모든 판넬과 접지 상황까지 보지요. 그 외에는 전기안전관리자가 봐야 해요.”
“거기 접지도 변압기에서 메인판넬까지 내려 온 것만 있어요. 그 외에는 접지가 다 빠져 있어요. 이걸 어쩌면 좋아요.”
“점검기록표에 적어 놓으세요. 그러면 면피는 되는 겁니다.”
자비농원에 갈 때마다 판넬을 조심스럽게 연다. 그래도 습한 비닐하우스 안이라서 누전이 되어도 땅으로 잘 흐르고 말아서 다행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4시가 조금 넘어서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회사로 들어오란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자기 컴퓨터로 데리고 간다.
“부장님 여기 좀 보세요. 여기에 우리 회사 차의 동선이 다 기록이 됩니다. 15분 단위로 위치 추적이 되요. 여기뿐만 아니라 경리의 컴퓨터에도 연동을 해 놓아서 거기도 다 떠요. 이건 직원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긴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동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런데 부장님은 1시 30분경에 신륵사 주차장에 가서 세 시간을 있었어요.”
나는 놀라서 할 말이 없었다. 내 위치를 손바닥 보듯이 훤히 보고 있었다.
“여기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저쪽 사무실로 가시지요.”
반대쪽 경리와 이사가 있는 사무실 안쪽에 소파로 데리고 간다.
나는 대표가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횡설수설이다.
“지금 회사가 어렵습니다. 아시잖아요. 저도 몸에 병이 났어요. 아내는 병원부터 가자고 야단이에요. 그런데도 나와 있어요. 회사에서 점심 사 주고 일 시키는데, 점심 식사 후에는 아무 할 일 없이 놀고 있어요?”
“만판 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늘 거기서 안전공사 직원과 통화를 여러 번 하면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도서관에 가 있어도 전기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 그럼, 뭐 하실 말씀이 따로 있는 모양인데, 해 보세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부장님 일이 많이 줄었잖아요. 시청 화장실 8개와 군부대 점검 8곳 말입니다.”
“예, 그건 모두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예, 맞아요. 그런데 그 시간에 다른 일을 좀 하시는 것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오전에 안전관리를 하고, 오후에는 공사 일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 줄었으니까 임금 조정도 했으면 좋겠는데요....”
“예, 그건 이해합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구성원들도 힘을 합해서 헤쳐 나가야지요. 나만 살겠다고 하면 안 되지요. 뭐 구체적인 방안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우선 부장님이 제 의견에 동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대표님,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안전관리가 줄었으니, 내가 맡은 것을 세 등분으로 나눠서 나머지 세 사람들에게 나눠서 맡기고, 나는 빠져도 상관없습니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시지요.”
“아닙니다. 부장님이 어떻게 하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은 그 정도로 서로 의중의 떠보는 선에서 끝났다. 이튿날은 정말로 오전에 점검을 다 마치면 오후에는 일찍 들어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오후에 1톤 트럭을 몰고 광주에 가서 고압장비를 사 오란다. 한 시간을 걸려서 가서, ASS 두 개와 COS 한 조를 사서 싣고 왔다. 오후가 다 갔다. 그 중 하나는 내가 맡은 수용가에서 재검사를 받기 위해 교체해야하는 장비다.
곰곰이 생각을 했다. 이제 3월 말이면 내가 이 일을 한지 1년은 된다. 1년을 안전관리를 했으면 전기에서 겪을 일을 얼추 다 겪어 본 셈이다. 이제 어디를 가서 어떤 경우를 만나도 전기에 관한한은 해결할 수 있겠다. 먼저 나간 조부장과도 1년만 하고 그만 둘 것이라고 했다. 조부장은 이제는 그렇게 힘든 일을 그만 두고 편히 쉬면서 일할 것을 권했다. 뭐 평생 죽어라 하고 일만 하느냐고 말이다. 저녁에 들어와 사직서를 썼다.
사 직 서
사직인 부서 : 전기안전관리
직급 : 부장
성명 : 김 O O
위 사람은 아래와 같이 사직코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직 사유 : 개인 사정
인수인계 기간 : 3월 1일 ~ 3월 31일(31일간)
퇴사일 : 2025년 4월 1일
2025년 2월 28일
김 O O (인)
이튿날 아침에 출근해서 차를 타고 나가기 전에 대표에게 전달했다. 책상에 놓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이 건물 내에 있은 다음에야 얼굴을 보고 직접 전달하는 것이 도리겠다 싶었다. 대표를 찾으니 여자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날이 청소하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은 청소를 다 마치고 나가는데, 대표는 아무도 손대지 않는 여자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대표님이 여자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십니까?”
“예, 여기는 아무도 손대지 않네요. 내가 해야지요 뭐.”
일단은 불러 놓고 용건을 말했다.
“실은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화장실 바닥을 수세미로 밀고 있다가 일어난다.
“이제 제가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직서를 썼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사직서요? 그래요? .... 저도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일단 받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뭐 아주 생뚱맞은 일은 아닌 듯 했다.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전기안전관리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이천 복하교 지나 샤브샤브 식당에 모였다. 함께 식사를 하기는 이번이 네 번째인 듯하다. 셋은 이틀이 멀다 하고 모여서 점심을 먹는데, 나는 그동안 멀리 있다는 구실로 함께 모이지 않았다. 조부장이 있을 때는 둘씩 둘씩 모여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조부장 대신 안과장이 다시 들어 왔으니, 다시 세 명은 날마다 함께 먹고, 나는 나대로 혼자서 먹었었다.
“아이고, 어쩐 일이십니꺼? 점심을 같이 먹자 그러고?”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이과장이 경상도 말로 격한 환영을 한다.
“난 사표 냈어요. 이제 그만 하려고요.”
“정말입니껴? 와예, 와 그만 둘려고요?”
말은 그렇게 해도 작년 12월부터 날 쫓아내려는 공작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팀장인 이부장은 12월 초에 바뀐 수용가 명단을 잘 정리하라고 할 때부터 알고 있었단다. 다들 내가 나가고 조부장이 남아 있을 줄 알았단다. 그런데 나는 여상하고 조부장이 나가는 걸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았단다. 안테나가 잘못인가, 상황이 바뀌었나 했단다.
저녁에 들어오니 대표가 따로 부른다. 뒷곁으로 나갔다.
“부장님, 재고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이 줄었으니 임금을 조금 낮추고 함께 가시지요.”
“아니요. 제겐 이 일이 힘들어요. 하루 종일 운전을 하고 다니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아요. 며칠 전에도 휴가를 냈을 때 먼 길을 다녀오려고 하다가 그만 뒀어요. 운전하는 것이 힘들어서요.”
“아직도 그러세요? 하기야 부장님은 제가 보기에도 관리자 체질인 것 같습니다. 몸 쓰는 일은 힘들어 하실 것 같아요.”
“1년이 지났는데도 운전에 적응이 안 되네요.”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사람을 구할 때까지 마음 편히 기다리시다가, 인수받을 사람을 구하면 인계해 주시고 나가십시오. 그 대신에 제가 어디 물류센터에 자리를 찾아서 꽂아 드리겠습니다. 부장님은 어디를 내 놔도 누구 욕 먹일 사람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관리 일을 맡겨도 잘 하신 것 같아요.”
“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날 내보지지 못해서 안달이 났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욕먹일 사람이 아니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나절 놀고 있는 꼴을 못 보더니, 막상 나가겠다니까 달리 보이는가보다.
하기야 45년이 된 김재규도 재심을 한다는데, 세상에 공짜가 있겠는가? 이제야 내 성실함을 조금이나마 인정해 주니 고맙다. 기술은 좀 부족했어도 성심성의껏 일하려고는 했다. 한번 실수한 것은 되풀이하려고 하지 않았고, 한번 배운 것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기록하면서 복습할 준비도 해 두었다.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니 다행이다. 사표를 던지고 나니 나도 대나무 한 마디를 맺은 느낌이다. 후련하면서도 견뎌 냈다는 뿌듯한 기분도 든다. 날이 한결 따뜻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