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지나고 2월이 되었지만, 날씨는 아직 한겨울이다. 떡국을 잘 못 먹어서 겨울이 가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고 야단이다. 명성전기에 2월 첫 번째 점검 때 들렀을 때도 엄청 추웠다. 점검을 마치고 총무실에 들어서니 송영지 대리가 반갑게 맞는다.
“어서 오세요. 날씨가 엄청 춥지요. 여기 따뜻한 데 앉으세요.”
송대리는 언제나 반갑게 맞는다. 들어서자마자 선물도 하나 건넨다.
“이거 설 전에 전해드려야 하는데, 선물이 늦게 도착해서 지금에야 드려요.”
“뭘 나한테까지 돌아 올 게 있습니까?”
“기사님은 그래도 우리 회사에 핵심적인 일을 맡으셨는데요. 당연히 드려야지요.”
“아, 그래요? 한 달에 두 번 출근하는 직원요?”
그날은 신관에 있는 저압 판넬을 집중 점검했다. 말도 안 되는 현상을 하나 보았다. 사진을 찍은 것을 송대리를 보여 주면서 설명을 했다.
“이걸 봐요. 계단실 1층 판넬인데, 왼쪽 가장 아래 20A의 ELB(누전차단기)에 단자가 1차에 하나 2차에 하나가 있어요. 1, 2차 단자에 각각 두 선씩 물려 있어요. 전기가 들어오는 1차에도 두 선이 물려 있어요. 두 선에서 전기가 들어 올리는 없잖아요. 가만히 살펴봤더니, 글쎄, 1차에 한 선은 전기가 들어오는 선인데, 1차에 하나가 전기가 나가 기기에 연결된 선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한 선이 전기가 들어오는 선이고, 세 선이 전기가 나가는 선이에요. 여길 보세요.”
“그러네요. 하나는 전기가 들어가는 선이고 나머지 3개는 기기에 연결되어 전기가 나가는 선이네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여기 두 개는 차단기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기기에 무슨 일이 있으면 차단기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선 좀 보세요. 전기가 들어가는 1차에 연결을 해서 차단기를 통과하지 않았어요. 이 선에 연결된 기기에 문제가 있으면 이 차단기는 안 떨어집니다. 바로 메인차단기로 올라가요.”
“그렇겠네요.”
“더욱이 누전차단기 1차에 연결한 전선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아크릴 판 안으로 건너가서 반대편으로 꺼냈어요. 전선을 결선할 때 다른 차단기도 건너지르지 말아야 하는데, 부스바(Bus Bar) 전체를 건너지르고 있어요.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배선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전기제료를 생산하는 명성있는 명성전기가 맞아요?”
오늘은 이걸 중점적으로 회사에 건의해서 고치기로 했다. 메인차단기(Main MCCB)에서 부스바(Bus Bar)를 아래로 내려 거기에서 필요한 데로 전기를 따서 서브차단기(Sub MCCB)를 통해 전기 기기에 전기를 공급하도록 되어 있다. 무슨 전기를 쓰기에 서브차단기를 거치지 않고 메인에다가 직접 연결해 놓은 것일까? ‘수신기’라고 쓰여 있다. 단상으로 20A 누전차단기에 연결한 것이라면 별로 큰 전기기기는 아닐 것인데, 메인차단기 100A MCCB에 직접 연결해 놓았다.
차단기는 최대로 정격전류의 150%에서 차단한다. 20A에 연결한다면 30A의 돌발전류가 생기면 차단이 된다. 하지만 100A의 메인차단기에 물려 놓았다면 지금 연결한 소방수신기에 단락 즉, 합선이 생기면 작은 전선에서 150A의 돌발전류가 생겨야 차단이 될 수 있다. 소방수신기의 기판이나 전선이 합선이 되어서 웬만한 불꽃이 생겨도, 큰 전류가 되지 않는 한 차단기가 떨어지지도 않고, 계속 불이 붙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소방 수신기가 화재를 발생시키는 요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리님, 이게 다른 기기도 아니고 수신기랍니다. 화재가 나도 전기가 떨어지지도 않게 생겼어요. 소방 수신기는 본래 한전전기가 끊어져도 작동할 수 있도록 보조배터리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전기도 안 떨어지게 했다는 것은 문제도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기록표에 있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보고해 주세요.”
싸인을 받고 가려는데, 송대리가 부탁이 하나 있단다.
“부장님 지난번에 지적을 해 주었던 것 말이에요. 사출부 어떤 판넬에 누전차단기를 하나 신설해야 한다는 곳 말이에요. 제가 누전차단기를 구입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지금 하나 달아 주실 수 있나요?”
“뭐 간단한 거야 제가 달아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었지요?”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출부 판넬에 가 보고 찾아 봐야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겠다. 90여 군데를 관리하다보니 다 기억할 수가 없다.
“어떤 거였지요? 얼른 생각이 안 나네요.”
“사출부에 차단기에 연결하지 않고, 어디, 어디에서 한 선씩 땄다고 한 곳이 있습니다. 신설해야 한다기에 제가 하나 샀습니다.”
“알았어요. 이리 주세요. 내가 가서 보고 달 수 있으면 달아 볼게요”
뭐, 설 선물도 한 상자 챙겨 주었는데, 간단한 차단기야 하나 달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받아 들었다.
건네 준 선물은 차에 두고 대신 연장 가방을 걸머 맸다. 사출부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판넬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 갔다. 가장 안쪽에 있는 판넬에 갔더니, 보인다. 단상을 따 갔는데, 놀랍게도 괴상하게 연결해 갔다. 삼상을 쓰는 차단기 L3에서 한 선을 땄다. 중성선은 접지 단자에서 땄다. 그 판넬에는 접지 단자가 두 개 있었는데, 접지는 다른 접지 단자에 연결했다. 그러니까 케이블에 3C(3선)가 들어 있는데, 한 선은 380V에 물려 전압을 땄고, N선은 한 접지 단자에서 땄고, 또 한 선은 다른 접지 단자에 연결해서 접지를 했다. 건물 벽에 구멍을 뚫어 선을 밖으로 빼냈다. 밖에 어디에서 단상으로 쓰는 기기인 모양이다. 기가 차서 지난번 점검 때 강력히 지적을 했더니, 송대리가 직접 누전차단기를 사 온 것이다.
공구가방을 매고 오기는 했지만, 내가 작업을 할 수가 없게 생겼다. 첫 번째 이유는 작업을 하려면 3상 380V에 체결된 차단기를 내려야 하고, 부스바에 구멍을 뚫어 누전차단기를 신설하려면 메인차단기도 내려야 한다. 지금 공장 작업 중에는 아무 것도 내릴 수가 없어서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또 차단기를 내린다고 해도, 메인 부스바에 구멍을 뚫고 차단기에 연결할 작은 부스바도 없다. 이런 사정을 진즉 알았으면 그 자리에서 설명을 하는 건데, 긴가민가해서 가능하면 해 보겠다고 왔더니, 역시 불가능하다. 받아 온 누전차단기를 판넬에 넣어 두고 송대리와 통화를 했다.
“지금 전기를 내릴 수가 없어서 안 돼요. 차단기는 판넬에 넣어 뒀습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점심시간 전에 오셔서 우리가 점심을 드릴테니 드시고, 점심시간에 좀 설치해 주실 수 있어요?”
“예, 알았어요.”
부속이 더 필요해서 안 된다는 이야기는 다음에 와서 더 하기로 했다.
명성전기에는 한 달에 두 번을 간다. 보름 동안에 또 명성전기의 전기 공사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둬야 한다. 다음에 갈아 달라고 했으니 갈아 주든지, 못 갈면 못 가는 합당한 이유를 또 설명해 주어야 한다. 곰곰이 생각을 했다.
“아, 그래. 그러면 되겠다.”
합당한 이유 하나가 생각이 났다. 한 둘이면이야 갈아 줄 수도 있고, 설치해 줄 수도 있겠지만, 이건 한 둘이 아니다. 더 찾아보면 네 군데는 될 것이다. 신관 계단실 1층에 있는 판넬에 수신기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 다시 사진으로 찍은 것 살펴보니, 수신기가 아니라 세콤 장비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원을 딴 것이다. 건물이 모두 세 동이니까 건물마다 세콤을 설치했으면 세 개는 될 것이다. 구관에도 세콤장비가 있을 것이고, 본관 2층 건물에서 세콤 장비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다음에 가면 먼저 이 세콤 장비를 찾아 볼 요량이다. 차단기 없이 단상을 따간 전선 하나에 세콤 장비에서 전원을 따간 것 세 개를 합하면 네 개다. 네 개 정도가 되면 공사업자를 불러서 전기 내선 수리를 하라고 할만하다.
2월 마지막 전기 점검을 갔다. 세콤 장비의 전원을 딴 것을 집중적으로 찾아 봤다. 구관건물은 사출부 첫째 판넬 옆에 역시 세콤 장비가 달려있다. 거기로 끌어간 선도 역시 메인 차단기에 직접 달려 있다. 이번에는 본관 건물에 설치한 세콤장비를 찾았다. 1층 첫 번째 판넬 옆에 붙어 있다. 역시 여기도 맨 아래의 서브 차단기 1차에 연결해 놓아서 메인 차단기에 직접 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여기 전기 담당자 좀 만날 수 있어요?”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데리고 올 게요. 뭐가 잘 못 됐어요?”
“예, 잘 못 됐어요. 데리고 오면 알려 드릴게요.”
쪼르르 구관건물로 달려가더니, 곧 이어 50대 정도의 직원이 들어서 다가온다.
“제가 전기 담당자입니다. 뭐가 잘 못 됐습니까?”
“예, 여기 좀 보세요. 명성전기라면 우리나라의 전기 스위치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데, 전기 판넬을 열어보면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습니다. 명성의 명성에 먹칠을 할 일입니다.”
“어디요. 뭐가 그래요.”
“세콤장비에 간 선인데, 여기 좀 보세요. 어디에서 갔습니까? 메인 차단기 바로 아래 부스바에서 따갔어요. 차단기를 거치지 않고, 메인 차단기에 바로 연결한 선이에요. 이게 지금 말이 됩니까? 여기 빈 차단기도 있는데, 여기에 연결해서 써야 하는데, 서브차단기를 거치지 않고 메인차단기에 직접 연결했어요. 이건 안 됩니다. 세콤 장비에서 불이 나도, 메인차단기를 차단용량이 커서 메인차단기가 떨어지지도 않아요. 불이 붙어도 안 떨어져요.”
“그러네. 차단기를 거치지 않았네. 왜 이렇게 했지?”
“여기뿐만이 아니에요. 구관에는 사출부 첫 번째 판넬에도 그렇게 해 놨고, 신관에는 계단실 판넬에도 그렇게 해 놨어요. 모두 서브차단기를 쓰지 않고, 메인차단기에 직접 연결해 놨어요.”
“왜 이렇게 해 놨을까요?”
“세콤에서 차단기 하나라도 더 거치면, 차단기가 떨어질 때 세콤이 울려서 한번이라도 더 출동해야하니까, 차단기 하나라도 줄이려고 메인차단기에 연결했어요. 여기 보세요. 그래놓고 메인차단기에 스티커를 붙여 왔는데, ‘절대 내리지 마세요’하고 차단기 손잡이를 가려 놨어요.”
“그러네. 가려놨네요.”
“세콤 경비회사의 편의를 위해 명성의 안전을 뒤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이 스티커를 붙이려면, 서브차단기에 연결하고, 서브차단기와 메인차단기 모두에 붙여 놓아야 합니다.”
“그러네. 어거 어떻게 해야 하지요?”
“뭘 어떻게 해요. 보안업체에 연락해서 서브차단기에 연결해서 전기를 쓰라고 해야지요.”
“그럼, 총무과에 올라가실 거지요. 거기다가 말씀하세요. 절차를 밟아서 해결할게요.”
“예, 그렇게 하세요. 내가 점검기록표에 적어서, 사진과 함께 전달하고, 고치라고 할게요.”
바로 총무과 송영지 대리를 만났다. 송대리 건너편에는 여기에서 가장 높은 책임자인 이사도 자리에 있다. 이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게 직접 전화를 해서 해결하곤 했다. 지난 여름 장마 때는 구관에 전등이 전부 들어오지 않고 차단기가 떨어졌었다. 두 달 전에는 신관 보일러실에 MC(Magnetic Contacter, 전자접촉기)가 고장이 난 걸 찾아 갈도록 했었다. 이번에는 담당인 송대리에게 이야기를 하면 이사에게까지 보고가 되어서 고칠 것이다. 우선은 절차를 밟기 위해 송대리에게만 이야기를 하면 된다.
“송대리님, 지난번에 갈아 달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못 갈았어요.”
“지난번에는 점심시간에 차단기만 내리면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차단기를 내려도, 소형 부스바라는 부속이 더 있어야 해요. 여기 사진을 보세요. 이런 거요.”
부스바에서 연결된 누전차단기를 보여 주었다. 송대리도 수긍을 한다.
“대리님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여기 올라오기 전에 작업자 중에 전기 담당을 만났어요. 그분에게도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분이 총무실에 말씀을 해 달라더군요. 그러면 절차를 밟아서 고치겠다고요.”
“그래요? 무슨 말씀이신데요.”
점검기록표에 적은 것을 일일이 설명을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도 보내 주었다.
“3. 저압판넬 열화상 측정 점검.
① 구관 사출부 1번 판넬, 우 4번 20A ELB 1차에서 세콤 기기 전원을 연결함.
② 신관 계단실 판넬, 좌 8번 20A ELB 1차에서 세콤 기기 전원을 연결함.
③ 본관 1층 1번 판넬, 메인 MCCB 2차 부스바에서 세콤 기기 전원 연결함.
①, ②, ③ 모두 별도 누전차단기를 통과하여 세콤 기기에 연결 권장.
④ 사출부 3번 판넬 단상 전원 사용 시, 우 4번 L3에서 380V 1선, 좌 접지단자에서 N상 1선, 우 접지단자에서 접지선 1선 연결한 것을, 20A ELB를 신설하여 체결 할 것.”
다 듣고 난 송대리가 물었다.
“부장님, 이거 심각한 건가요?”
“그럼요. 아까 아래서도 말했는데, 명성전기의 전기업계 내에서 위상은 상당히 높습니다. 명성이 자자해요. 그런데 명성전기 회사에서 전기를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명성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어요. 이건 바로 잡아야 합니다. 또 세콤 경비회사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서 명성의 안전을 뒤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걸 보고도 전기안전관리자인 제가 지적을 해서 고치도록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입니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보고하겠습니다.”
“아까, 전기담당자를 아래에서 만났는데, 총무과에 말씀드리면 절차를 밟아서 고치겠다고 했거든요.”
사진도 보내고, 보낸 사진을 펼치면서 일일이 설명도 해 주었다.
“전기 공사업자가 부장님께 물으면 대답도 해 주실 거지요?”
“그럼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그러세요. 내 잘 일러 드릴게요.”
이것이 고쳐질지는 모른다. 이제까지 아무 일 없이 써왔는데, 지금 와서 왠 트집이냐고 할 지도 모른다. 사실 내겐 이걸 고치지 않으면 차단기를 내리고 판넬을 잠궈놓을 수도 있다. 고칠 때까지는 공장이 가동이 되지 않아도 전기를 쓰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랬다가는 아마도 전기점검회사를 바꾼다고 할지도 모른다. 용인서원병원처럼 말이다. 지난 여름에 구관 천장에서 비가 샜는지 천장형 에어컨에서 결로가 발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등이 누전이 되는 걸 핫선과 N선을 바꿔 뀐 적이 있다. 그것도 여직 그대로 있다. 누수가 되는 걸 고친 후에 전선을 다시 원래대로 바꿔 뀌자고 해도 이사는 묵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네 가지를 고치라고 한 걸 묵살한다면, 난 또 그대로 갈 판이다. 이걸 잡고 싸움을 벌일 수가 없다. 내 책임은 다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었다. 뭐 새벽이 오는 걸 막겠다고 닭의 목을 비틀 필요가 있겠는가? 박종철 열사가 순직한 그해 2월에, 민주화의 물결은 도도히 흘러 4.3호헌에 반발해 철폐를 주장했고, 이한열 열사의 순직에 6.10항쟁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났고, 6.29 항복 선언을 받아 낸 후에, 1978년 제6공화국 대통령 5년 직선제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역사적인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도 닭의 목을 비틀지 않겠다. 고치치 않으면 고칠 때까지 판넬을 잠궈 두고, 공장 가동을 못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잠그거나 차단기를 내리지 않아도 지적을 했으면 물 흐르듯, 새벽이 되면 닭이 자연스럽게 울 듯, 고치기를 바란다. 이제까지 아무 탈 없이 살아 왔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트집을 잡는다고, 긁어 부스럼을 낸다고, 비틀려면 비틀어 보라고, 닭의 목을 내 밀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비틀지 않겠다.
우리 사회는 그런 당연한 역사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처럼 흐르는 변화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 말도 안 되는 전선을 연결하고 살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이제는 안전을 위해서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손해를 보고 귀찮아도 안전을 위해서 투자를 할 만큼 우리는 성숙해 졌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거기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닭의 목을 비틀지 말자.
후기 : 열흘 후에 명성전기 송대리가 전화를 했다. 세콤 설치업자를 바꿔 주었다. 서브(Sub) 차단기를 거치지 않고 따간 전선은 벽에 붙은 세콤 전용 차단기에 연결해서 쓴다고 했다. 세콤 장비에 맞는 6A 짜리 차단기였다. 내가 다음에 가면 열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아크릴 판 안에서 부스바를 가로질러 간 선은 밖으로 빼기로 하고, 차단기는 세콤에서 설치한 대로 사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