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치기
겨울이 지나고 양지쪽 잔디에 새싹이 연필심만큼 돋기 시작하면 우리의 놀이도 변합니다. 꽝꽝 얼었다가 녹은 땅을 찾아 못치기를 합니다. 못 따먹기입니다. 서로 땅에 힘껏 못을 꼽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순서를 정하고, 이기면 먼저 합니다. 선 못은 넘어트리면 먹는 거고, 넘어진 못은 날려서 내 못 길이만큼 나가면 먹는 것입니다. 못을 꼽으려면 휙휙 소리가 날만큼 힘차게 꼽습니다. 선 못을 때려서 넘어지게 하고 내 못은 꼽히려면 쩡쩡 소리가 날만큼 힘차게 때려야 합니다. 넘어진 못을 날리려면 쨍그렁하고 날아가도록 정 가운데를 빗겨 쳐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의 못은 날아가고 내 못은 그자리에 서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똑바로 꼽으면 되지만, 먹으려면 빗겨 치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학교서 공부시간만 끝나면 잠깐이라도 못을 들고 나갑니다. 잔디 언덕에 비스듬히 서서 하거나, 운동장이라면 모래가 없는 딱딱한 땅을 골라서 합니다. 치다가 숨은 돌이라도 만나면 여지없이 튕겨 나가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맙니다.
나는 처음에는 못치기를 하면 많이 잃었습니다. 못을 다 잃으면 집안을 한 바퀴 돌아 마루밑 연장통이고, 외양간 소죽통 위고, 건조실 침상 밑이고, 못이 있을만한 곳은 모두 찾아 뒤집니다. 썰매를 만들거나 팽이를 만들 때 무엇이고 필요하면 집을 한 바퀴 돌면서 찾아보면 웬만한 것은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마루 밑에는 연장통이 있고, 외양간 소죽통 위 실겅에는 톱이고 망치고 끌이고 아버지가 좀 귀히 쓰시는 물건이 있고, 뒤란 돌아가 굴뚝 뒤 벽에는 싸리나무나 지게 재료나 좀 큰 물건들이 매달려 있고, 건조실 쪽에는 금방 쓰다만 연장들이 아직 치우지도 않고 있고, 부엌을 돌아오면 어머니가 쓰시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몇 번만 돌면 대충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필요한 연장을 생각하고 한 바퀴 돌면 손에 무엇이든지 들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못을 잃어서 다시 덤비러 가려고 못을 찾다가 연장통에 없으면 못빼기를 들고 박힌 못을 빼야 했습니다. 더 이상 구할 데가 없으면 마루 도리에 옷을 걸려고 박아 놓은 못을 빼 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떤 집 아버지는 노름을 하다가 다 잃자 땅도 팔고, 집도 팔고, 나중에는 자식도 팔고 마누라도 팔아먹었다더라. 그런 무책임한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친구들에게 못을 다 잃고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긴히 쓰는 마루에 못을 장도리로 빼는 내가 장차 커서 집 팔고 식구들까지 팔아먹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못치기는 안 할 수는 없고, 하긴 하되 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가봅니다.
못을 보기만하면 대가리를 망치로 납작하게 두드려 손에 잡고 힘차게 휘둘러 꼽기 좋도록 만듭니다. 도끼를 바닥에 놓고 바탕삼아 못대가리를 망치로 두드리면 금새 납작해져서, 엄지손가락 끝과 검지 둘째마디에 잡고 휘두르기에 알맞을만큼 됩니다. 못이 없으면 철사라도 구합니다. 굵은 철사는 망치로 두들겨 끝을 뽀족하게 하고 손잡이는 둥글게 말아 잡기 편하게 만들면 훌륭한 무기가 됩니다. 철사로 만든 못은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나무못치기도 있습니다. 가을에 추수를 다 하고 추운 겨울이 되기 전에는 논에서 하는 못치기입니다. 장마에 논두렁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느라고 막대기를 걸쳐 놓는 받침대로 논두렁 중간에 박아 놓은 낫자루만큼씩 한 나무못으로 못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못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손에 한 움큼 잡히는 맛이 둔중하고, 한 뼘씩 박히는 맛이 힘찹니다. 논바닥에서 시작해서 못이 흐르는 대로 논두렁으로 올라갔다가, 논둑을 타고 넘다가, 윗논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아랫논으로 내려 달리기도합니다. 물렁한 논바닥에도 잘 박히고, 푸석한 논두렁을 타고 오를 때도 괜챦고, 딛고 다니던 논둑에도 박혔다하면 잘 넘어지지도 않아서 좋습니다. 못을 잃어서 떨어지면 다른 논둑에 박힌 것을 찾아 빼어 오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때는 흔히 어두워 못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길에 두었던 책보를 찾아 둘러매고야 가지고 놀던 못을 아쉽게 모아두고 집으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싫컷 놀고 집으로 오는 길은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기분을 얼마나 느끼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컴퓨터 게임을 해서도 아마 갖지 못할 것입니다.
비석치기
여름에는 볕이 뜨거워 못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놀이도 시절을 따라 유행이 흐르듯 흘러갑니다. 여름이면 그늘나무 아래서 흔히 비석치기를 합니다. 편편한 땅에 대여섯 발자국 되게 평행선을 그어 놓고, 한편이 둘에서 서넛이 되게 편을 갈라, 한 선에 비석을 세워두고, 다른 편이 반대편에서 돌을 던져 비석을 쓰러트리는 것입니다. 모인 사람이 홀수라서 편이 맞지 않으면 그 중 제일 잘하는 사람을 왔다리갔다리로 정합니다. 이 왔다리갔다리는 양쪽편을 다 들어 공격을 하는데, 편이 맞는 사람이 다 하고 나서 못 쓰러트리는 것을 주로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상대의 비석을 다 쓰러 트려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못 쓰러 트린 사람은 다시 기회가 없고, 자기 것을 쓰러트린 사람은 틀린 사람의 것을 다시 한번 더 쓰러트릴 자격을 얻게 됩니다. 맞았는데 설 맞아 넘어가지 않았다면 다시 한 번 더 할 수 있습니다. 모두 던졌는데, 아직 쓰러트릴 것이 남았다면 그 몫은 왔다리갔다리의 것입니다.
왔다리갔다리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느 편이든지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어른이 이 역할을 한다면 어느 한 편을 들어 편파적으로 한다든지, 공평하게 잘 하고 있는데 어느 한 편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의심을 하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며 이 왔다리갔다리가 끼인 놀이는 재미를 잃게 됩니다. 그런데 어릴 때는 누구하나 의심을 하지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고 잘 놀았습니다. 이런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시면서, 어린이의 믿음과 신뢰를 돌이켜 가지라고 하셨나봅니다.
비석치기는 머슴들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묘등 사이에서 놀던 놀이랍니다. 겨울에 마을에 머슴들이 다 모여서 나무를 하러 가다가 부잣집 주인네 묘등에 모였습니다. 밤낮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는 보기 싫은 주인집 조상의 비석에 돌을 던져 맞추기 시작했답니다. 손으로 던져 맞추다가, 발등에 얹어 던져 맞추다가, 눈 감고 던져 맞추다가, 가랑이 사이로 거꾸로 던져 맞추다가, 한발 들고 던져 맞추기도 하가다, 이것이 순서를 갖춘 놀이가 되었답니다.
우리가 놀던 놀이도 이와 비슷합니다. 한 쪽은 땅에 잘 서도록 편편하고 들고 던지기에 알맞은 크기의 납작한 돌을 반대편 땅에 세우면, 공격하는 편은 자기 짝의 것을 넘어트리면 됩니다.
첫 번째는 ‘던지기’인데, 던지는 방법은 그냥 한손으로 던져 맞추는 것입니다. 비석을 이렇게 넘어 트리면 된다 쯤으로 서론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한발뛰기’입니다. 비석을 앞으로 던져놓고, 한발 뛰어서 깨금발로 밀기입니다. 깨금발로 뛰기와 비석을 밀기와 밀어서 선 비석을 넘어트리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놀이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잔기술이 이런데서 길러진 것 같습니다.
셋째는 ‘두발뛰기’로, 두발 깨금발로 뛰어 밀기입니다. 두 번째 한 것을 한 번 더 복습하면서 쉬어가는 코스입니다.
넷째는 ‘발등’인데, 발 등에다가 비석을 얹어서 빈발을 한발 내딛었다가 비석 얹은 발을 당겨 던져서 맞추는 것입니다. 비석을 손으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발로도 던지는 기술을 익히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알까기’인데, 비석을 양발 사이에 끼우고 발을 모아 한 발짝 뛰어서 가까이 갔다가, 두 번째 뛰어서 비석을 놓아 맞추는 것입니다. 비석을 손으로 던졌다가, 한 발로 던졌다가, 이번에는 두 발로도 던지는 기술입니다.
여섯째는 머리에 이고 걸어가서 서서 떨어트리기인데, 이것은 어머니들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것을 닮았다고 이름도 ‘물동이’입니다. 물동이는 앞으로 떨어트리기도 하고 뒤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뒤로 앉아서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일곱째는 ‘어깨’로, 한쪽 어깨에 얹고 걸어가서 선채로 떨어트리기입니다.
여덟째는 ‘올챙이’로, 배부른 올챙이처럼 배에 얹고 몸을 뒤로 젖히고 가서 떨어트리기입니다. 몸을 뒤로 젖혔기 때문에 세운 비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옆으로 잘 봤다가 짐작하고 떨어트려야합니다.
아홉째는 ‘등’인데, 몸을 앞으로 구부려 등에 업고 가서 떨어트리기입니다. 비석을 보지 못하고 등의 감각으로 떨어트려야 하는데 몇 번 하고나면 요령이 생겨서 이런 것은 식은 죽먹기가 됩니다.
열째는 ‘한발’인데, 한쪽 다리를 들고 다리 밑으로 비석을 던지기입니다. 한발로 서서 균형을 잡아야하고, 한발은 또 날아가는 비석의 길을 내야하고, 손은 또 비석을 맞추어야하기 때문에 연속동작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열한째는 ‘가랑이’입니다. 뒤로 돌아서서 몸을 앞으로 구부려 가랑이 사이로 보고 비석을 맞추는 것입니다. 세상을 뒤집어서 보는 것입니다. 늘 바로보고 던지다가 뒤집어서 보는 세상을 향해 비석을 처음 던져보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수입니다.
열두째는 ‘봉사’입니다. 눈을 감고 던지는 것입니다. 눈을 감기 전에 자세를 잡고, 거리를 가름해 두고, 팔의 힘을 조정해 두었다가, 눈을 감고는 세팅해 둔 그대로 비석을 던지는 것입니다. 딱하고 비석이 맞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온갖 희열을 다 맛보는 것입니다. 카타르시스입니다. 우리는 이 맛으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비석치기가 다 끝나 승부가 나도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진편이,
“에이 졌다. 내일 또 하자” 그러면, 이긴 편도,
“그래 내일 또 하자” 그러면 그만이었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 편을 새로 짜면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우리 전통놀이의 특성인가 봅니다. 비석치기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비석을 던지고 내편을 도와주고 다음 과정을 나가고 하는 중에,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보완하고 다시하고 하는 긴 감정의 교류에 이미 승부로 맛볼 성취감이 다 녹아들어서 그런가봅니다. 그러는 중에 돌을 다루는 기술이 온 몸에서 길러집니다. 돌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날 저녁 내 비석은 마루 밑에 던져두고 왔는데, 동생 영구는 비석을 씻어서 이불 속에 두고 같이 잤습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놀이와 내가 하나가 되었고, 낮의 놀이가 밤의 잠자리까지 하나가 되었었습니다. 하나가 된 세상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