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의 겨울은 추웠다.

by 기추구





라디오


내가 살던 남천에는 꽃이 그렇게 신기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경의 일부였기에 별로 달라 보이지 않으니까 특별할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특별한 것은 라디오가 처음 나타났을 때입니다. 어른들이 라디오를 들은 것도 라디오 장사가 몇 차례 마을을 지나가고서 였습니다. 왕관모양의 표를 붙인 금성 라디오는 할아버지가 베는 목침을 세 개 붙여 놓은 크기였습니다. 그 속에 사람이 들었는지, 어찌도 그렇게 소리가 잘 나는지 신기했습니다. 작은집 마루에서 할아버지가 들으시던 라디오 소리를 오동나무 아래서 오동나무 꽃을 모으면서 듣던 아련한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라디오에서 12시라고하면 지금은 1시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는 시간이 한 시간은 걸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남자 어른이 이야기하는 뉴스는 재미가 없었고, 이미자가 노래하는 소리는 어린 우리가 들어도 신이 났습니다. 이미자 목은 미국 사람이 샀다고 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좋은 소리가 나는지 연구해 보려고 벌써 팔렸답니다. 그런데 그 이미자씨가 아직도 살아 있으니 아마 거짓말이었나 봅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방송은 오후 5시에 나오는 어린이 방송이 이었습니다. 특히 설날이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는 콩쥐와 팥쥐가 인기였습니다. 해마다 기다려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늦게 해가 기울 때까지 했는데, 뒷간 가는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콩쥐가 계모에게 구박을 받을 때는, 함께 듣고 있던 동생들과 마주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콩쥐가 왕자와 결혼을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수수 빗자루로 방바닥을 두드리면서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는지 라디오를 통해 장정분지 위 둥그런 하늘에 상상의 나라를 그릴 수가 있었습니다.



새총 만들기


내가 가장 처음 논 놀이는 고무신놀이었습니다. 엿장수가 지게를 지고 동네까지 올라와서는 헌고무신을 가지고 오면 엿을 주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달콤한 것이 있는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부모와 동생 넷이 사는 단촐한 식구에 떨어진 고무신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뒤지자니 이미 큰집 형들이 엿 바꿔 먹은 지 오래였습니다. 엿 꼬랑지를 맛보고는 그 후부터 신발이라는 신발은 모두 모았습니다. '엿 사세요' 쩔그렁쩔그렁 다니던 모습대로, 신발을 모아 새끼줄로 묶어서는 '신발 사세요'하고 마당이고 이웃이고 다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노는 모습이 또 웃음거리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다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아직 아무 것도 만들 수 없을 때 아버지가 새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Y자로 생긴 나뭇가지 위에 고무줄을 묶어서 가운데 가죽부분에 돌을 뒤에서 잡고 고무줄을 당겼다 놓으면 총알처럼 나가는 것입니다. 아직 어려서 잘 쏘지도 못할 때였으니 망정이지 팔에 힘이 생겨 잘 쏠 때 같으면 사고를 많이 쳤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아버지는 새총을 만들어 주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한참을 커서 내 손으로 만들 때쯤에는 좀 더 멋진 것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Y자로 멋없이 벌어진 가지가 아닌, 소리굽쇠처럼 양쪽 가지가 멋들어지게 안으로 모아진 새총을 생각했습니다. 실재로 형들이 양쪽 가지의 굵기가 똑같고, 동그랗게 모아진, 노란 색깔 나무에 가지를 휘느라고 불에 달군 검은 자국이 군데군데 난 새총을 보았습니다. 아기 기저귀를 채우는 둥근 노란색 고무줄에 혁대를 하는 부드러운 가죽이면 더 좋았습니다. 주머니에 넣기도 좋은 폼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멋진 새총이 아니면 유치해서 만들 생각도 안했습니다. 산길을 가든 들길을 가든 나무만 보면 새총하기에 적당한 나무를 찾으며 다녔습니다. 새총을 만들기에 가장 근사한 나무는 산초나무입니다. 가지가 벋을 때는 언제나 두 가지로 벋었고, 두 가지가 마침 굵기가 거의 비슷했고, 잘라다가 철사로 거리를 잡아 구부려서 소죽 끓이고 난 불에 구우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습니다. 찾아 다니다가 다니다가 눈으로만 만들었지 난 한 번도 만들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최상의 것만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것입니다. 행복을 찾노라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새총의 다른 모습은 삽자루 굵기의 통나무를 톱으로 켜서 가운데를 잘라 내고, 가의 가는 두 가지를 가늘게 깎아 고무줄을 매는 가지를 하고, 아래 손잡이 부분은 손에 넣을 만큼 깎아내 만드는 방법입니다. 동네 형들이 만든 것을 보았습니다.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톱을 가지고 나무를 하러 가다가 적당한 굵기의 소나무만 보면 톱질하기 좋은 정도의 높이로 잘라 내고 땅이 붙들고 있으니까 바로 톱질에 들어갔습니다. 이것도 번번이 실패였습니다. 새총가지 처음 부분은 잘 썰어 나가다가 가지가 모아져 손잡이 부분을 둥그렇게 안쪽으로 썰 수 있는 재주가 없었습니다. 나무를 자르는 톱은 폭이 크게는 10센티는 되고, 톱을 오래 써서 줄로 쓸어 작아져도 5센티가 되는데, 톱날도 화목을 주로 베는 톱이라서 이빨이 1센티에서 1.5센티가 되는데, 머릿속에 그리는 대로 동그랗게 돌아 주지 않았습니다. 소나무만 하나 잡고 다음을 또 기약하며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 새총을 나무만 잡았지 한번도 제대로 만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팽이치기


장난감은 역시 겨울에 많이 필요했습니다. 추워서 달리 나가서 놀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만들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동네 형들이 만드는 것을 보고 우리가 만들어야 했습니다. 팽이를 만드는 데는 동생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팽이는 크게 두 가지인데, 그냥 팽이와 실팽이가 있습니다. 팽이는 요즘도 문방구에 가면 파는, 얼음판에 돌리고 팽이채로 때려서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 때는 한 사람이 말뚝을 대문 문지방에 빗겨 세우고 올라타 붙들고, 한 사람은 낫으로 깎아 나갔습니다. 뾰족하게 깎았으면 적당한 길이로 톱으로 자르면 되는데, 자를 때는 빗겨 세운 것을 수평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팽이 윗면을 삐뚤지 않게 자를 수가 있습니다. 힘들게 다 다듬어 놓고 삐뚤게 자르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습니다. 잡다가 '둘려'하면 조금씩 돌리며 붙들어준 동생에게도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닙니다. 내 발등을 내가 찍는 수밖에 달리 누구를 탓할 수가 없습니다. 팽이 가장 중심은 베아링을 박는 것이 가장 고급입니다. 그런데 베아링을 쉽게 구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하나 구하면 잘 보관했다가 팽이에 박아야 하는데,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대게는 베아링 대신 대가리가 작은 못을 박았습니다. 그래야 잘 돌고 뭉툭해 지지 않고 오래 돌릴 수가 있습니다.


이 팽이를 돌리는 데는 시멘트를 깐 봉당이 제일 좋은데, 마을에서 부잣집이나 깔지, 여느 집에는 부뚜박이나 깔았을까 말까입니다. 우리집 봉당은 흙바닥으로 울멍줄멍해서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마루는 좁기도 하지만, 송판사이에 틈이 많아서 별로였습니다. 방에서는 더더욱이 못 칩니다. 자리가 떨어지기 때문에 했습니다. 왕골 돗자리는 할아버지네 사랑방에나 가야 볼 수 있고, 우리는 짚으로 촘촘히 엮은 돗자리인데, 팽이가 뱅글뱅글 돌면서 파고 들어가 돗자리가 떨어진다고, 돌렸다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수입니다. 방바닥에서도 돌릴 수 없습니다. 콩기름을 입히기는 했는데, 그리 두껍지 않아서 어머니가 애지중지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팽이는 밖에서 돌려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팽이는 얼음판에서 칠 때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겨울 빈 논바닥 얼음판으로 모입니다. 막대기 끝에 헝겊을 두 겹으로 매고, 헝겊 끝에서부터 팽이를 둘둘 말아 잡고 공중에 뿌려 돌리면, 척하니 얼음판에서 잠자리가 나뭇가지 끝에 앉았다가 날듯이 사뿐히 돕니다. 팽이채를 처음 만들었으면 헝겊을 입에다 넣고 침으로 골고루 적셔야 합니다. 젖은 팽이채로 치면 팽이에 척척 감겨서 탁탁 소리도 나고 윙윙 소리를 내며 잘도 돕니다. 오래 돌리기는 싱거워서 못하고, 부딪혀서 상대방 것 쓰러트리기가 재미있습니다. 부딪히려다가 빗나가서 팽이만 나가면 나도 함께 얼음판을 미끄러져 찾아가 쳐서 돌아오는 기분이 내 마음도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아 세상 시름을 다 잊습니다.


방에서 돌릴 수 있는 팽이가 실팽이입니다. 실팽이는 실로 돌린다고 해서 실팽이입니다. 말뚝보다 배나 굵은 나무를 1센티 두께로 고르게 잘라 내어, 정 가운데 구멍을 뚫습니다. 구멍 뚫는 송곳은 아버지가 잘 만드십니다. 굵은 강철 철사를 끝을 납작하게 두드려서 줄로 세 갈래로 갈라 톱날처럼 날을 세웁니다. 반대편 끝에 막대기를 해 박으면 날선 송곳이 완성됩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의 송곳을 빌리러 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송곳을 만드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자랑인지 모릅니다. 그 송곳으로 가운데 구멍을 내고, 구멍이 작으면 역시 그 송곳으로 구멍 가장자리를 조금씩 깎아내 구멍을 넓히면 됩니다. 그 구멍에는 양지말 가는 길 가에 많은 다래나무를 5센티 정도 잘라다가 팽이대를 만듭니다. 팽이대는 빡빡하게 끼워야 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끼워 올려야 돌릴 때 팽이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위로 3센티 정도가 올라오고 아래는 1센티 정도만 남겨두면 적당합니다. 다래나무 팽이대에 뚫린 구멍 속으로 팽이심을 깎아 넣으면 됩니다.


팽이심은 가장 단단한 싸리나무로 합니다. 화살표처럼 생겼습니다. 화살표 끝 굵은 부분이 팽이대 구멍에 끼이지 않게 굵게 하고 나머지는 매끄럽게 깎아 위로 끼워 넣는데, 싸리나무로 만든 팽이심이 다래나무로 만든 팽이대를 통과해 손에 잡을 수 있을만큼 나오게 하면 실팽이가 완성됩니다.


실은 돌리는데 필요합니다. 그래서 실팽이라고 합니다. 팽이대 윗부분에 감고 팽이심 손잡이를 잡고 실을 당기면 실이 풀리면서 팽이가 돌아가는데, 얼른 바닥에 놓으면 됩니다. 돗자리에서는 잘 안 돌아 가도 장판에서 잘 돌아갑니다. 돗자리는 물론 떨어진다고 못 돌리게 했고, 콩기름 먹인 장판에서도 돌렸다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청구야, 방에서 팽이 돌리지 말그라이!'하는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부잣집처럼 방에 나이롱장판이라고 하는 비닐장판 까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마루에서 돌리면 송판과 송판 틈에 걸리기도 했고, 마루에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나이롱바가지는 누구나 장에 가면 사오고, 장에 간 사람이 대신 사오기도 했지만, 나이롱장판은 아무 집이나 못 깔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들어오는 버스를 장정에서 내려, 집에서 마중 나온 소 등에 나이롱장판을 가로 걸쳐 싣고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을 볼 때는 미처 몰랐는데, 거기서는 팽이를 마음대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팽이는 혼자 힘으로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바로 밑에 동생 영구의 손을 빌려야 합니다. 깎는 것도 깎는 것이지만 톱으로 자르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자르면 삐뚤고, 자르면 또 삐뚤어서 못 쓰고, 그래서 여러 번 다시 만들었습니다. 마당 빗자루에서 야문 싸리나무를 꺾어 팽이심을 겨우 해 박아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동생 것을 다시 만들어 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내일 만들어 줄 테니 하루만 참으라고 했을 텐데, 그 때는 그 이야기를 왜 못했는지, 내 것만 만들어 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구는 조르며 울다 못해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에게 이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면서 팽이를 만드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구야, 여기 있다.' 하시는 것입니다. 내 것은 삐딱삐딱 돌아가는데,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영구 것은 떨지도 않고 잘도 돌아갑니다. 내 것은 조금 돌다가 금방 쓰러지는데, 영구 것은 움직이지도 않고 쉽게 자리를 잡아 오래 돌아갑니다. 내 것은 다듬지 않아서 꺼끌꺼끌한데, 동생 것은 반질반질 낫 손질이 되어서 얼마나 매끄러운지 모릅니다. 내 것을 동생 주고, 내가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는 것을 갖고 싶었는데,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배가 좀 아프지만, 그나마 영구가 웃음을 되찾아서 다행입니다.




썰매타기


겨울이면 또 빼놓을 수없는 것이 썰매입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두발 달린 썰매 만들어 주셨습니다. 굵은 철사를 댄 두 받침에 판을 얹은 것으로 손잡이는 바늘이라고 부릅니다. 바늘은 굵은 못 대가리를 잘라서 손잡이가 될 만한 막대기에 거꾸로 박고, 반대편에는 같은 굵기의 나무를 손 넓이만한 길이로 잘라 가로 박으면 편하게 얼음을 지칠 수가 있습니다. 겨울에도 물이 고여 얼음이 꽝꽝 언 논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아침에 나가면 배가 고파야 집에 돌아옵니다. 혼자 타는 것보다 여럿이 몰려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어려운데 넘어지지 않고 따라다니기도 하고 서서 타기도 하고 온갖 묘기를 다 부립니다.


어릴 때는 두발 썰매를 무릎 꿇고 타다가, 조금 숙달 되면 쪼그려 앉아서 탑니다. 조금 더 크면 바늘을 길게 해서 그네를 구르듯이 서서 쌩쌩 구릅니다.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때는 바늘을 썰매 앞에다 대고 누르면 얼음이 파이면서 썰매가 섭니다.


초등학교 2,3학년만 되어도 두발 썰매는 유치해서 타지 않습니다. 외발썰매를 탑니다. 외발썰매는 함석물동이가 땅에 놓이는 받침대를 사용합니다. 팽이를 돌리다가 썰매 타는 맹추위가 오면, 받침대를 쓰려고 멀쩡한 동이를 발로 차 찌그러트렸다가 혼줄이 난 이야기는 동네서도 어렵게 듣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받침대는 아래가 도톰한 삼각형으로 나무를 길이로, 가는 톱으로 썰어야 합니다. 가는 톱은 양날톱으로 흔히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아버지가 쓰신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웃집에서 빌려 오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간이 콩알만 해 집니다.


날은 나무 받침대보다 조금 길게 잘라서, 앞은 반 유선형으로, 뒤는 모서리를 다듬는 정도로 동글게 갈면 됩니다. 날은 가는 톱으로 가로 썰은 받침대에 끼워 넣고 철사를 꿰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날에 구멍은 굵은 못을 대고 망치로 때리는데, 손을 다치기 십상입니다. 구멍을 뻥 뚫어서 헤진 부분을 옆으로 제켜 다듬어야지, 구멍이 났다고 다시 때리면 도로 아무려지고 맙니다. 날의 구멍이 너무 작으면 다음 작업이 어려워집니다. 날을 뚫은 대못을 사방으로 젖혀 헤진 구멍쪼가리를 완전히 제켜야 구멍을 크게 둟을 수 있습니다. 날을 받침대에 끼우고 뚫은 구멍에 위치와 깊이를 가늠해서 못을 쳐 철사를 끼울 구멍을 한 번에 찾는 것이 또 기술입니다. 두 군데를 한두 번에 관통해서 철사를 동여 매야 날이 빠지지 않습니다. 날에 구멍을 작게 뚫거나 해서 한두 번에 적중을 못하면 다 만들지도 못하고 받침대가 헤어져 버리게 됩니다.


받침대 위에 송판을 댈 때는 끼운 날이 망가지지 않도록 단단한 흙바닥에 세우고 망치질을 해야 합니다. 바닥이 단단하면 1/3쯤 나오도록 애써 끼운 날이 휘거나 접혀 작품을 망치게 됩니다. 아주 망치로 땅을 때려 홈을 파고, 그 속에 날을 끼운 받침대롤 박아 넣고 받침대에 못질을 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봉당에서 할 수도 없고, 마당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천상 마당 가 울타리 아래나 아주 길바닥으로 나가야 합니다. 썰매 양쪽에 발을 올려놓은 곳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나무를 하나 더 대면 완성입니다. 이 썰매는 앉아서 탈 수는 없습니다. 서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발썰매를 타는 재미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두발 썰매는 서서 탄다고 해도 구를 때만 일어설 뿐, 서서 갈 수는 없습니다. 날이 날카롭지 않아 사방으로 미끄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발썰매는 날이 서 있어서 옆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달리다가 뒤를 누르면 브레이크가 잘 잡히기 때문에 서서도 안전하게 탈 수 있습니다. 대신 바늘이 길어야 합니다. 나중에는 바늘도 하나로 탑니다. 긴 장대에 못을 박아 손잡이도 만들지 않고 가랑이 사이로 끼워 나룻배 밀듯이 썩 썩 미는 재미는 세상을 다 가진듯합니다. 동네 아이들이 한 논에 모여 얼음판이 하얗게 일어나고 하늘판은 검게 덮이도록 뺑뺑 돌기도 합니다. 썰매를 타는 데도 한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연날리기


겨울이 이울도록 썰매를 타다보면 어느덧 싫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누가 연을 만들어, 안장 가운데 동산, 동네 마이크 탑이 있는 곳에서 날리면 너도나도 연을 만듭니다. 놀이에도 유행이 있었습니다. 유행을 절기에 맞추었는지, 절기가 유행에 맞았는지, 어쨌든 놀이는 변했습니다.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이 있는데, 가오리연이 만들기가 쉽습니다. 장롱 깊숙이 숨겨둔 창호지를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고 방학책보다는 좀 더 크게 네모반듯하게 오려냅니다. 아버지가 종다리를 만들려고 말려서 뒷곁에 묶어 매달아 놓은 싸리나무을 한 가지 뽑아옵니다. 팽이를 만드는 싸리나무는 빗자루를 만드는 참싸리나무고, 연을 만드는 싸리나무는 바구니 등 그릇을 만드는 물싸리나무입니다. 물싸리나무는 칼만 대면 고르게 잘 갈라집니다. 싸리나무를 가늘게 깎아서 활처럼 휘게 모서리를 가로질러 붙이고, 또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붙이고, 만나는 지점에는 밥풀을 더 많이 발라 단단히 붙여야 합니다. 휘게 붙인 가로막대기를 뒤에서 실로 당겨 묶어 바람이 흐를 수 있도록 하고, 세로로 붙인 막대기는 앞에서 삼각형으로 묶고 여기에 연실을 매면 됩니다. 꼬리는 처음에는 적당한 길이로 했다가 연이 나는 것을 봐서 조정해야 합니다. 자꾸 곤두박질을 치면 기우는 반대쪽 날개 길이를 더 길게 해야 하고, 무난히 날면 그때서야 멋을 부려 가운데 꼬리를 더 길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방패연을 만들기는 더 어렵습니다. 종이도 더 많이 들고 싸리나무는 배도 더 들고 밥풀도 이밥으로 한 숟가락은 있어야 합니다. 만들기 어려운 만큼 방패연은 근사합니다.


방패연을 만드는 데는 싸리나무가 많이 드는 만큼 싸리나무를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느냐에 연의 품질이 달려 있습니다. 동네에서 부잣집 종하네는 여름에 마루에 치던 대나무 발이 있었습니다. 그 집 아이들은 그 발대를 뽑아서 연을 만들었습니다. 발로 쳤던 대나무는 다듬을 필요도 없이 매끈하고, 똑 고르고, 잘 휘고, 이미 붙이기 쉽도록 납작하고, 방패연을 만드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재료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려면 싸리나무를 잘라다가 쪼개서 다듬어야 하는데, 이미 시작부터 경쟁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네 가운데 스피카탑이 있는 동산은 연을 날리기 안성마춤입니다. 연을 날리는 동산 가운데는 나무로 사각기둥을 세워 조그만 지붕을 씌웠는데, 이 지붕은 처음부터 멋진 스레트로 날렵하게 씌운 지붕이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가끔 이장님이 느린 소리로 '쥐를 잡아서 꼬리를 모으면 상을 줍니다.'라든가, '비료가 왔으니, 내일 모레 지러 갑시다.'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상당히 다른 목소리가 마을을 쩡쩡 울렸습니다. 1번 공화당을 찍으라는 이야기인데, 2번으로 나온 사람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선거에 나오지도 말고 이 세상에 살지도 말아야할 사람인 것처럼 불쌍하게 들렸습니다. 참 이상하지, 그런 선거는 하나마나지, 뭣 하러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1번을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대게 겨울바람은 북쪽에서 부는데, 스피카탑이 있는 동산 남쪽은 안장 왼쪽으로 동네 집들의 지붕 위로 한참을 높았습니다. 연줄을 풀고 몇 번만 추스르면 북풍을 안고 풍기 가는 뱀재쪽으로 쉽게 날아올랐고, 날아오르기만 하면 어디 걸릴 대라고는 없었습니다. 연을 날리느라고 촌스럽게 뛰어다니는 초보 짓은 안 해도 되었습니다. 어떤 연은 높이 잘도 오르는데, 어떤 연은 실만 길게 늘어트리고 멀리만 가는 연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뱅글뱅글 돌다가 남의 연과 엉기기도 했습니다. 큰 형들은 연싸움도 가끔 했습니다. 연을 가까이 붙였다가 한번 휘돌려 실을 감고는 실을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실끼리 비비면 약한 실을 끊어져 멀리 날아갑니다. 연 싸움을 하려면 실에 풀을 먹이기도 하고, 사금파리를 잘게 깨어서 밥풀로 이겨 붙이기도 했습니다.


연을 날리는 절정은 정월 대보름쯤 입니다. 대보름에는 날리던 연을 끊어 주었는데, 말아 피우던 담배에 불을 붙여서 연 바로 밑에 매어서 날립니다. 연이 하늘 꼭대기까지 날 때쯤이면 담배 불이 다 타서 연실을 끊는 것입니다. 산을 넘어가면 옛날 버스가 들어오기 전에 장을 보러 다녔다는 풍기입니다. 연이 아무리 높이 날아올랐다가 끊어져도 산 중턱에도 못 갔습니다. 뱀재 초입까지 뿐입니다. 이튿날이면 끊었던 연을 찾으러 갔다가 점심때가 지나서야 실도 끊고, 꼬리도 잘라먹고, 찢어진 연만 들고 오기도 했습니다. 연을 날려 보내는 날이면 멀리 멀리 까맣게 점이 되어 날아가는 세계는 또 어딘가 그날 밤 잠자리에서 그 세계를 가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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