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뻔 했다.

by 기추구


딱총


가을이 되면 다래를 따먹던 나무가 단단해 집니다. 다래나무는 칡덩굴처럼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속이 비어서 우리가 딱총을 만드는 좋은 재료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다래가 굵고 맛있는 나무는 나무도 굵고 속의 구멍도 넓어서 딱총을 만들기도 좋습니다. 다래를 따 먹을 때 열매도 작은 것은 나무도 가는 것이 배배 꼬이기만 잘하고 속에 구멍도 신통치 않습니다. 쓸만한 품종은 열매든지 나무든지 두루두루 다 좋은가 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어른들의 말이 정말 맞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낫으로 딱총을 만들기에 적당한 가지를 한번 쳐서 구멍의 크기를 가늠해 봅니다. 그 구멍은 고기비늘 같은 반투명의 얇은 막이 총총히 쳐져 있습니다. 구멍이 클수록 좋습니다. 됐다 싶으면 몇 년 묵어서 나무가 단단한 밑둥 부분을 똑바른 곳으로 낫길이 만큼을 잘라 옵니다. 손잡이는 손에 넉넉히 쥘 길이면 되고, 총신 부분은 그 두 배쯤이면 됩니다. 그 다음은 또 싸리 빗자루의 싸리대를 손잡이 부분에 꽉 낄 굵기로 잘라 냅니다. 손잡이는 꽉 끼게 단단히 박고, 총신부분은 매끄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다듬어서, 끝 부분은 총알의 길이만큼 총신보다 짧게 잘라야 합니다. 그러면 간단히 딱총이 완성입니다.


총을 쏘려면 총알이 필요한데, 딱총의 총알은 종이를 씹어서 만듭니다. 종이를 색종이의 1/4 정도 되도록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다져서 침을 쪽 빨아 빼고는 하나를 총신 입구에 꼭꼭 다져 끝까지 밀어 넣으면 1차 준비가 됩니다. 총신보다 막대기가 총알 길이만큼 짧기 때문에 총알이 장전된 셈입니다. 또 하나의 총알을 종이를 씹어 만들어 입구에 다져 넣으면 쏠 준비가 끝납니다. 한 손으로 총신을 잡고, 다른 손으로 손잡이를 맞잡고 힘껏 밀어 올리면 ‘땅’하고 위에 있던 총알이 튀어 나가는 것입니다.


동네서 하나가 만들면 곧 온 동네로 퍼집니다. 내가 만들면 나는 동생들 것도 만들어 주기에 바쁩니다. 나보다 세 살이 어린 영구 것도 만들어 주어야 하고, 영구보다 두 살이 어린 종구도 딱총 비슷한 것이라도 들어야 칭얼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편을 나눠 전쟁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 때는 딱총에 맞았으면 맞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죽은 사람으로 나오지, 우길 줄은 몰랐습니다. 쏜 사람은 멀어서 혹시 잘 안보여도 맞은 사람은 다 아니까 순순히 수긍을 했습니다.


아무리 딱총을 쏘아야 한다고 해도 종이가 없으면 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멀쩡한 책을 찢거나 공책을 찢어서 놀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아랫집 서당할아버지네 집에 글공부를 하러 오는 형들은 책에 글씨가 쏟아진다고 묶음을 아래로 향하게 들었지 거꾸로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고, 책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라고 어머니가 늘 일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화장지는 물론이고 마을에 신문도 없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도 볏짚을 단 채로 앞에 놓거나, 어떤 집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 손닿는 처마에서 볏짚 네댓 개를 빼어 들어가 해결하곤 했습니다. 아 참, 거기는 화장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뒷간이라고 했고, 변소였습니다. 변소에서 종이로 처음 사용한 것은 비료포대가 처음이었습니다.


딱총놀이를 하다가 종이가 떨어져서 뒷간으로 들어가 앞에 놓고 찢어 쓰던 책이나 종이를 가지고 나와 입에 넣고 씹어서 딱총을 쏜 것은 한 참 후였습니다. 아래 똥통에는 구더기가 항상 우글거리고, 똥통을 가로질러 놓은 나무는 조심해서 디뎌야지 잘못하면 발이 빠지기도 하는데, 바람 심하게 불면 옆에 쌓아 놓은 재가 날려 뽀얗게 안기도한, 볼일 볼 때마다 한 장씩 찢어서 쓰던 철지난 책장도, 통째로 들고나가 먼지 탁탁 털어서 입에다 넣고 씹어서 총알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병 하나 걸리지 않고 잘도 컸습니다. 가끔 회충검사를 하면 지렁이 몇 마리씩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나오기는 했습니다.




깡통차기


동네 가운데 집 원각이네 마당에서 깡통차기를 하는 날이면 동네가 다 떠들썩합니다. 왠만한 집에서는 시끄럽다고 못하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깡통을 차서 시끄럽지, 들켰다고 나오라 그럴 때 아니라고 우기지, 끝까지 숨었던 사람이 후다닥 튀어나와 깡통을 차면 와장창 깨지듯이 시끄럽지, 그러는 사이 들켜서 술래에게 잡혔던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면 도망가서 숨지, 이런 소란이 해가 넘어가야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또 마당 가운데 발뒤꿈치를 축으로 세우고, 돌을 넣어 입구를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깡통 날을 발끝에 달고, 한 바퀴 돌려 그려 마당을 파는 것도 큰 맘 먹어야 허락할 수 있습니다. 술래가 눈을 감고 하나에서 열까지 세는 동안, 원이 있는 곳에서 될 수 있으면 가까이 숨으려고 애를 쓰느라, 집안이 벌집을 쑤신 듯이 남아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깡통은 시골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부자집에서 꽁치 통조림이나 사다 먹고 마당 끝에 버리거나,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다가 가겟집에서 물건을 팔고 남은 깡통을 보면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공기돌보다 조금 큰 돌을 두어 개 집어넣고 발로 차도 돌이 나오지 않도록 입구를 발로 밟으면 깡통차기 준비는 끝납니다. 여자들은 끼이는 일이 없고 사내들만 둘러서서 한 사람 술래를 정합니다. 흔히 둘씩 짝을 지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끼리 또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은 빠지고, 가장 나중까지 지면서 남아 있는 사람이 술래가 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1에서 10까지를 세고 눈을 뜨고 나면 다 숨고 그 많던 아이들이 머리카락 하나 남아있지 않습니다. 술래는 가까이서부터 숨어 있을 법한 곳으로 찾아가 발견하면 '원각이 깡'하고 깡통을 먼저 밟으면 됩니다. 다 찾을 때까지 이렇게 찾으면 되는 데, 다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발견된 아이들은 남아서 나중에 별견된 사람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술래를 정하는데, 중간에라도 숨었던 아이가 누구든지 나와서 술래보다 먼저 깡통을 댐다 차버리면, 발견됐던 아이도 그 때 숨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술래는 날아간 깡통을 다시 주워다 원 안에 넣고 처음부터 다시 찾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발견된 아이도 숨어있는 사람의 편이 됩니다. 술래는 숨어있는 아이는 물론 발견된 아이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술래가 되면 해가 저물 때까지 가기 일수 입니다. 반은 더 찾아서 이제 두 세 명만 찾으면 되는데 느닷없이 누가 깡통을 차기라도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마을 남쪽 위에 저수지가 있는데, 그 밑을 지날 때마다 저 둑이 무너지면 그 아래 논이며 집 서너 채는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때의 심정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집니다. 깡통차기는 흔히 해가 다 넘어가 어둑어둑해서 '청구야, 밥 먹어라'하고 어머니가 불러야 끝이 납니다.





수영


저수지 근방에서 노는 놀이는 언제나 위험했습니다. 소 안장처럼 생긴 마을에서 왼쪽으로 중간쯤에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 아래 논에 물을 대려고 계곡을 막아 만든 것입니다. 물이 빠지면 물이 넘치도록 만들어 놓은 수로에서 미끄럼을 탔습니다. 콘크리트로 수로가 미끄럼틀 넓이만큼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짚단을 가져다가 앉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짚도 다 헤어지고 맨 엉덩이로 앉는데, 어떤 질긴 옷이라도 금방 구멍이 났습니다. 아마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곳에서 노는 놀이는 유일했습니다.


저수지에 물이차면 수영을 하고 놀았습니다. 마을에 큰 형들은 저수지를 가로질러 건너가고 건너오고 자유로이 다녔습니다. 나도 저수지 언덕에 앉아 놀았습니다. 수영을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 잘도 헤엄치는 것을 보고 나도 물에 가까이 갔습니다. 손을 담가보고, 발을 담가보고, 그러나다 돌에 묻은 흙을 디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저수지에 빠진 것입니다. 한 번도 수영을 해 본 일이 없는 나는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 갔습니다. 물속으로 한번 깊이 들어갔다가 발버둥을 치면 다시 고개를 물 밖으로 낼 수 있었는데, 곧 다시 사정없이 물속으로 가라앉아 갔습니다.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이러다가 죽는구나하면서 숨을 안 쉴 수가 없어서 쉬면 물이 솨하고 가슴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따뜻한 안방에 이불을 덮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내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형들이 소리를 질러서 큰형들을 불렀답니다. 그 당시 마을에서 가장 큰 형들인 원준이, 흥식이, 용주 등은 저수지 반대편 묘등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답니다.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내려와 셋이서 인간띠를 하고, 흥식이 형이 맨 아래서 나를 건졌답니다. 물이 맑지 않아서 세 번째 내려가서 가라앉았으면 못 찾았을 텐데 마지막 내려가는 것을 건졌답니다. 건져서는 무릎에 배를 엎어눌러 물을 빼고 집으로 데리고 갔답니다. 어머니는 5리 되는 교회에 빨리 연락을 해서 전도사님을 모셔오고, 예배를 드리고 전도사님이 다시 내려가시고 나서 한참 후에 내가 깨어났답니다. 나는 이미 그 때 죽은 몸입니다. 지금 사는 것은 덤일 뿐입니다. 감사하지요, 무엇이든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때부터 마을에 나가기만하면, '거기를 왜 들어갔느냐?'고, '길영이가 어서 오라고 잡아당기더냐?'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길영이는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 그 터에 지은 집에 살던, 나보다 서 너 살 더 먹은 형이었습니다. 길영이 위로 두리라는 누나와 그 부모들이 살았는데, 그 집에 불이 났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다 나왔지만 길영이만 못나오고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길영이 부모님은 아들을 잃고 동네 가운데로 이사해서 살았습니다. 그 터 위에 저수지를 막았습니다. 저수지 안에 길영이의 혼이 나를 끌어당기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미끄러진 것은 분명한데 동네 사람들이 자꾸 그러니까 정말로 끌어당겼는지 어쨌는지 나도 모르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만 그렇다고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는 사람들이 더 자주 그렇게 물었고, 나는 한번 그렇다고 했으니 이젠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이젠 웃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부터 흥식이를 그렇게 좋아 하셨습니다. 장가를 들어서는 이제 아저씨가 되었는데,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셨습니다. 흥식이 아저씨의 막내에서 두 번째 동생인 순옥이는 나와 한 학년인데 각별히 마음을 써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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