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우리 부모님은 화전을 일구어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 동네에서는 근본 없이 굴러 들어왔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화전 일구기는 몸에 베어 있었습니다. 약물래기 위에 가파른 비탈 산을 네모지게 구획해서 나무를 다 베어 내셨습니다. 그 때가 작년 가을이었나 봅니다. 마른 나무는 밖으로 밀어 내고, 잔가지와 풀을 긁어 가운데로 모으고 불을 질렀습니다. 물론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게 간격을 멀리 띄우고 조심조심 불을 놓았습니다. 이것이 화전입니다. 처음에는 골도 타지 않고 메밀을 심었습니다. 흩뿌리고 괭이로 슬슬 묻어 나가면 됐습니다. 여름이 끝날 때쯤이면 비탈밭에 메밀꽃이 하얗게 핍니다. 메밀에 달빛이라도 비치면 메밀꽃은 야광이라도 되는 듯이 더 환해졌습니다. 화전을 일구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탈밭을 위태위태하게 지나 다니셨습니다.
바로 그 밭이었습니다. 올해는 소를 빌려 고랑을 만들고는 고구마 싹을 틔워, 순을 잘라다가 심는 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두런두런 구성구성 소리를 내며 심으시고, 나는 점심으로 싸가지고 간 감자보따리 옆에서 잠을 잤습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 햇볕이 따갑게 내리 쬐고 있었고, 풀잎이 목을 찔러 따갑기도 했고, 지나가던 벌레가 바지가랑이 속을 스믈스믈 기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고운 잔디에 눌려 있는 누웠던 자리를 내려다보니 글쎄, 온갖 벌레들이 다 기어 다니는 것입니다. 겉의 잔디가 푸르지, 조금만 들춰도 누렁진 잎받침이 잔디를 둘러싸고 있고, 그 아래는 하얀 뿌리들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 누구 뿌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게 빽빽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온갖 벌레들이 제각기 뭐가 그리 바쁜지 자기 길을 가기에 바쁜 것이, 지금 밭에 고구마를 심는 우리 부모님보다 더 바쁘게 정신없이 지나다녔습니다. 개미는 다리 여섯 개로 쉴틈 없이 두리번두리번 다니지요, 다리를 셀 수도 없이 많은 벌레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둥근 벌레, 길쭉한 벌레, 짧은 벌레, 긴 벌레, 가지각색으로 생긴 벌레들이, 잔디 뿌리를 타고 넘기도 하고 옆으로 빗겨 지나기도 하고 아래로 잡고 건너기도 하고, 제각기 뭘 그리 바쁜지 쉴 새 없이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누울 만큼의 작은 바닥에도 한 세계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 넓은 하늘만이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만이 몸부림치고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엉덩이 밑에 풀 섶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이었나 봅니다. 그 고구마 밭에 김을 매러 가셨습니다. 두 분은 말소리와 호미소리가 가까워 졌다가 멀어 졌다가 하는 사이, 나는 점심 바구니 옆에서 놀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보니 딸기가 빨갛게 익어 흐드러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봄에 익는 그냥 딸기도 맛있는데 이건 더 맛있다는 고무딸기라고 하는 산딸기입니다. 그냥 딸기라고 하는 봄딸기는 오디가 익을 때 같이 익어서, 달콤한 오디를 먹다가 질리면 시커먼 입과 혀를 새콤한 딸기를 또 따서 입맛을 바꾸며, 검은 물 위에 빨간물을 또 들이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뱀딸기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것은 일년생 풀에 맺히는 것입니다. 주로 논둑에 많이 나는데 단맛 하나 없이 밋밋하기만 합니다. 생긴 것은 딸기 모양으로 동그란데, 씨알이 엄청 조밀하고 색깔도 아주 빨간 것이 먹음직스럽기로 우리를 홀리기 충분합니다. 그런데 가끔 뱀딸기 아래로 이상한 거품 같은 것이 맺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뱀이 먹으려다가 침만 흘리고 간 흔적이라고 뱀딸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그 맛있는 고무딸기가 누구 손 하나 타지 않은 것이 자기 좀 먹어 달라고 축 늘어져 바람에 흐느끼며 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오디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야 하고, 딸기는 가시가 있습니다. 그냥 앉아서 주워 먹을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비탈진 바닥을 조심해서 가시에 찔리지 않게 따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새콤한 살절음은 혀를 놀라게 하고,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씨앗은 이빨을 신나게 만들었습니다. 입새에 있는 몇 개를 따먹다가 좋은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낫으로 밑둥을 찍어다가 놀던 자리에 앉아서 따먹으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면 소꼴을 베어서 지고 가려고 아버지가 새파랗게 갈아서 지게에 꼽아놓은 낫을 빼어 들고 딸기나무 가까이 갔습니다. 딸기나무 가지를 찍는 다는 것이 그만 낫이 헛나가고 말았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왼쪽 발목 복숭아 뼈 바로 위에 낫날이 꼽히고 말았습니다. 내가 비명을 지르고 우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달려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입었던 난닝구를 찢어서 피가 나지 않게 동이고 나를 업고 집으로 뛰어 내려 오셨습니다. 그때부터 그 밭은 딸기밭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병원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약방에 가서 덧나지나 말고 아물기나 하도록 약을 사다가 발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상처는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 엄지발가락 아래로 지나는 힘줄이 하나 끊어졌는지, 엄지발가락이 위로는 젖혀지는데 아래로는 구부려 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걷는 데는 표시가 나지 않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는 절룩이게 됩니다. 동생인 영구나 종구는, 막내 여동생 미란이까지, 달리기를 하면 모두 일등을 맡아 놓고 하는데, 유독 나만은 꼭 4등을 해 상을 받는데서 밀려나게 된 것도 이 때 다친 것 때문입니다. 군대에 가서 군화를 신을 때 군화 뒷굽이 밖으로 더 다는 것이 보통인데, 유독 나만은 왼쪽 군화 뒷굽이 안으로 더 달았습니다. 지금도 발목 굵기를 손으로 잡아 보면 왼쪽 발목이 더 가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지금 흉터 끝나는 부분 바로 아래로 새파란 핏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거나 안쪽으로 조금만 더 왔더라면 동맥이 끊어져서 나는 살아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났고, 낫에 베어 또 죽을 뻔했습니다. 상처를 볼 때마다 살려주신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봄풀캐기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큰집 사촌 원구형과 그 아래 사촌들과 함께 봄풀을 깨러 갔습니다. 다래끼에 호미를 넣어 걸머지고 양지말 밭으로 갔습니다. 겨우내 마른 잎만 먹고 산 소에게 별식을 해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뜯길 만큼은 안 되고, 한 다래끼라도 캐 오면 잘 먹겠다 싶어서 형을 따라 나섰습니다. 풀을 캐러 갈 때는 대 여섯 명이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하며 갔는데, 막상 풀을 보자 경쟁심이 생겨서 서로 많이 캐려고 야단이었습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대로 막 캐서 다래끼에 담는데, 형은 어쩐 일인지 나보다 한참을 늦었습니다. 빨리 캐서 다래끼에 담으면 그만이지 형은 일일이 흙을 터느라고 늦은 것입니다. 밭 입새는 풀이 적다가 한 가운데쯤 오니까 그리 경쟁을 안 해도 싫컷 캘 수 있을 만큼 봄풀은 풍성했습니다.
다래끼에 반도 못 차서 무거워 메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형은 나보다 훨씬 많은데 무겁지도 않은지 쉽게 메고 왔습니다. 싸리 다래끼는 무거워 축 늘어지고, 호미는 넣은 것까지 부담이 될만해 따로 손에 들고 낑낑거리며 오다가, 다래끼 걸칠 만큼 둔덕만 되면 쉬어쉬어 집에까지 왔습니다. 무겁게 집에 돌아와 봉당에 다래끼를 내려놓으니 어머니가 호통을 치셨습니다.
“야, 이 바보야. 흙을 뭐하려고 이렇게 많이 파왔어. 풀을 캤으면 흙을 탁탁 털어서 풀만 담아 와야지 흙을 담아오니 무겁지. 풀만 그만큼 담아오며 반에 반에 반도 안 무거울 거 아녀!”
순간 형이 남들 세 네 개를 캘 때 풀 하나 잡고 흔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하나를 캐더라도 일이 되게 해야 했습니다. 땅에는 속도위반이 없습니다.
걸레 빨기
친구들은 대부분 대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해도 남자들은 남자가 할일을 했습니다. 남자가 하는 일이란 소죽을 끓이는 일, 소꼴을 베는 일, 여물을 써는 일, 나무를 하는 일 등입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부모님이 밭에 가시면 집안에서 남자일이나 여자일에 구분이 없이 해야 했습니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물에 걸레를 빨아 오는 일, 마을 공동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 일, 저녁준비로 감자를 까놓는 일 등은 여자일인데, 부모님을 빼면 일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천상 내가 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들일을 하시느라고 바쁘시니까 잔일을 내가 해서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 드려야 했습니다.
물을 길어 오는 거야 물지게를 지고 우물에 가서 퍼오면 됩니다. 걸레를 빨아 올 때가 문제 입니다. 남자가 걸레를 빤다고 놀릴까봐, 그러잖아도 짓궂은 어른들이 남자가 그런 일하면 뭐가 떨어진다고 그러니, 남들이 다 저녁을 먹으로 들어갔을 때 얼른 빨아 옵니다. 그런데 한번은 지금 막 집으로 들어가는 아랫집 현종이를 만났습니다. 현종이는 나와 같은 학년인데 개울가에서 걸레를 빨아서 돌아 오다가 딱 마주친 것입니다. 놀린다면이야 내일 학교에 가서의 일이고, 진짜 뭐라도 떨어진 것처럼 오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현종이는 학교에 가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고맙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종이를 볼 때마다 웃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집 넘어 개울로 걸레를 빨러 갔습니다. 집에서 가기는 정 반대쪽인데, 양지말 들로 나가는 길에 있습니다. 환할 때는 괜찮은데 방과 마루를 한번 닦고 또 걸레를 빨아 놓아야할 때가 문제입니다. 다음에 쓰도록 빨아 놓아야 하는데, 날이 이미 저물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가기는 가는데 빨아서 올 때는 무서워서 또 오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걸레를 빠는 것도 물에 휙 한번 적셨다가 바쁜 걸음으로 돌아오면서 물을 짜는 데도 얼마나 무서운지 머리카락이 쭈빗쭈빗 섭니다. 먼저 어두워진 계곡에서 뭔가 시커먼 손이 쑥 튀어 나올 것만 같고, 그렇게 많이도 따먹고 새총도 만들어 쓴 다래나무 치렁치렁 늘어진 가지들이 어둠에 살이 쪄 금방이라도 몸을 휘감아 올릴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무섭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워지고, 빨리 달려야겠다고 생각하면 더 안 뛰어지고, 뭔가 온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점점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울타리 지나 마당에 들어 설 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들어오는 것이, 이것이 아마 세상살이 같았습니다. 무섭지 않을 수 없었고, 무서워도 빨아오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있는 대로 겁먹었다고 내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감자깎기
더 난처한 일을 감자를 깎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에 갔다고 오면 부모님은 아직 밭에 계시고 저녁 늦게나 오실 것이고, 동생들은 어리다고 다 나가 놀고, 저녁 준비로 감자를 까놓는 것은 천상 내 몫입니다. 묵은 감자는 칼로 깎아야 하지만, 햇감자는 누룽지 긁느라고 초승달처럼 달은 놋숟가락으로 깝니다. 먼저 감자를 고무함지에 담고 물을 부어 간당간당 잠기게 합니다. 물에 젖은 감자를 손에 잡고 살살 긁으면 껍질이 쉽게 벗겨집니다.
그런데 이것도 친구들에게 곧 들키게 됩니다. 물에 담가놓고 긁어도 감자물이 얼굴에 튀어 묻습니다. 감자물이 마르면 하얀 점이 온통 뿌린 듯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누가 지나다가라도 볼까봐 마루나 봉당이나 시원한 그늘에서도 못 깎고, 날도 더운데 부엌에 들어가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깎아야 합니다. 누가 와서 부르면 안 깎은 척 손을 씻고 나와도 얼굴에 묻은 감자물 점을 보고 뭘 했는지 다 압니다. 그래도 감자를 깎아 놔야 어둑어둑 해서 부모님이 들어오시면 저녁을 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저녁을 빨리 먹을 수 있으니까 감자를 깎은 것만은 아닙니다. 감자를 깎아 놓지 않으면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한번 야단을 치시면 큰소리로 혼 내키지는 않으십니다. 한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하는 잔소리도 아닙니다. 한 번은 노느라고 감자를 안 까 놓은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감자를 손이 바쁘게 까시면서, 나를 불러 아궁이에 불을 지피게 하셨습니다.
“왜, 안 까놨는데? 그러면 저녁이 늦쟎아. 아버지가 시장하셔서 빨리 드셔야 하는데, 엄마도 하루 종일 일해서 배고프고. 네가 이것만 까 놔도 얼마나 빠른데, 종일 놀면서 이것도 안 해놔. 감자 까는 것이 어려워서 그러니? 넌 누나가 있어, 할머니가 있어? 맏이인 네가 해야지 누가 하라고 그래?”
그렇듯 따지고 드시는 데는, 그 말이 뼛속까지 쏙쏙 박히는 바늘 같았습니다. 조용하면서도 깨닫게 하시는 어머니 이야기가 회초리로 때리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감자도 까고, 파도 다듬어 놓고, 깻잎도 뜯어다 놓고, 걸레도 잘 빨고, 집안 살림을 도왔습니다. 일이 곧 삶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일하러 태어나신 분 같았습니다. 낮에는 일만하시고, 밤이 되면 잠만 자고, 날이 밝는 대로 또 일어나 일만 하셨습니다. 이야기도 일 이야기고, 시키시는 것도 일 하라는 것이고, 칭찬도 일이어야 하고, 인생이 모두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밥은 쌀이 부족했습니다. 쌀을 조금 넣고, 쌀과 색깔과 모양이 비슷한 옥수수를 때껴서 빻아 넣어 밥을 해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