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치기
어린 나라도 제일 많이 필요로 하시는 일이 누에치는 일이었습니다. 누에를 칠 때는 어른이고 아이고, 있으면 있는 것만큼 필요합니다. 누에는 모두 네 잠을 잡니다. 알에서 깨어나 첫 잠을 잘 때까지는 연한 뽕잎을 국수고명처럼 가늘게 썰어 주기 시작해서, 자라는대로 칼국수 넓이만큼 하도록 썰어서 주면 됩니다. 대신 방은 간난 아기 자랄 때처럼 따뜻하게 해 주면 됩니다. 쌀벌레만 하던 것이 검은 기를 벗고 회색빛 누에 색깔을 띠면서 배추벌레만해지면 첫잠을 잡니다. 첫 잠에서 둘째 잠과 셋째 잠을 잘 때까지는 그리 큰 품은 들지 않습니다. 셋째 잠을 자고 나면 본격적인 누에치기가 시작됩니다. 하루에 세 번씩 밥을 주는데, 누에는 살고 나는 죽는 것 같습니다. 네 잠을 자고 집을 지으라고 섶에 올릴 때까지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누에를 치는데도 기구가 보통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 잠박이 있어야 누에를 울려 놓지요, 잠박 위에 신문지를 깔아 주어야 오줌이나 똥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지요, 뽕을 먹고 싼 똥이 많거나 오줌이 신문을 적셨으면 잠박을 갈아 주어야 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주워 옮기지 않고 한 번에 들어 옮기도록 마지막 뽕을 줄 때는 망을 깔아 주어야지요, 네 잠을 자고 일주일을 또 먹어 머리부터 맑게지기 시작하면 집을 지으러 올라가려고 고개를 들고 사정없이 올라 갈 데를 찾는데 올라갈 섶을 주어야지요, 집을 짓고 일주일이면 번데기가 되어 있는 고치를 따서 겉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벗길 기계가 있어야지요, 이 농사도 한 살림입니다.
누에를 치는 일은 일년 농사에 비하면 짧은 기간에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에 비할 수 있습니다. 시기가 봄에는 씨앗을 다 붙이고 아직 김매기 전에 달 반이고, 가을에는 추수하기 전 달 반입니다. 한 해 두 번 특수를 맞는 셈입니다.
봄누에와 가을누에의 차이는 뽕을 따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봄뽕은 뽕나무 밭의 뽕나무를 가지채로 쩌서 지게로 져와, 집에서 뽕을 땁니다. 가을뽕은 뽕칼을 검지에 끼우고, 한 잎 한 잎 따서 담아야 합니다. 내년 봄에 이 가지에서 뽕잎이 나야 하기 때문에 가지를 보존해야 합니다. 양손 검지에 뽕칼을 끼우고는 손이 안보이도록 따서 담습니다. 뽕잎을 일일이 세는 셈이기 때문에 봄뽕이 휠 씬 쉽습니다. 일단 낮에 한 짐 씩 누에가 먹을 만큼 쩌다 놓기만 하면 저녁을 먹고 자리를 잡고 섭니다. 막내 종구는 마루 끝에, 그 위 동생 영구는 부엌 입구에, 나는 봉당 끝에 자리를 잡고, 봉당가운데 비닐을 깔고 서로 맞주보고 서서 뽕을 칩니다. 뽕을 칠 낫은 아버지가 새파랗게 갈아 주십니다. 낮에 져다 놓은 뽕단을 세 등분해서 내기를 하면 지루하지 않게 일을 다 마칠 수가 있습니다.
누에가 넉 잠을 자고 나서는 올릴 때까지 뽕을 먹는 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납니다. 매년 밭에다 뽕나무를 심은 양만큼 누에를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매번 1장을 칩니다. 우리 동네서 우리만큼 치는 집은 동네서 서너 집뿐입니다. 대게 반장을 치고, 반의 반 장인 1줄을 치는 집도 있습니다. 이런 집은 남들이 맞는 누에 특수를 놓치기 서운해서 재미삼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외갓집은 8장, 10장, 많을 때는 12장씩 칩니다. 논농사는 없고 뽕밭을 빌려 누에치는 것이 한해 농사인 셈입니다. 우리도 농토가 별로 없어서 누에로 벌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누에를 많이 치는 것입니다.
매년 치던 만큼의 누에를 치는데도, 뽕이 모자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에알의 양이 많은 장을 받아 오거나, 날씨 때문이거나 비료를 덜 주어서 뽕잎이 활짝 피지 못하거나, 어떤 때는 뽕 도둑을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산뽕을 따야 합니다. 이사할 때 이불을 담는 큰 자루에 낫을 하나 들고 산에 임자 없이 난 뽕을 따러 가는 것입니다. 새가 오디를 따먹고 날아가다가 똥을 싸면 거기서 난 뽕나무는 임자가 없는 뽕으로 뽕이 모자라는 집의 귀한 목표물이 됩니다. 멀리서 바람에 나부끼는 뽕잎을 보고 찾아가서 따면 됩니다. 아침일 찍 산에 올랐다가 저녁 어스름에 허리가 휠 정도로 큰 뽕보퉁이를 내려놓는 어른들의 땀난 얼굴은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활기에 차 있습니다. 방에서 뽕을 기다리는 누에가 미웠다가도, 부모님들이 흘린 땀을 함께 먹는 누에는 얼마나 귀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역시 땀은 우리 인생을 값지게 하는가 봅니다.
누에가 넉 잠을 자고 나서 또 일주일을 먹으면, 머리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맑게 집니다. 그 때는 맑게 진 머리를 사정없이 흔듭니다. 말이 안 들려 그렇지 어디 올라가고 싶다고 소리 지르는 함성을 듣는 듯합니다. 섶에 올려주면 누에치지는 끝이 납니다. 그 후 일주일이면 집을 다 짓습니다. 고치를 따는 일은 참 재미있습니다. 고치가 크면 클수록 값을 많이 받을 수가 있습니다. 누에가 자라는 동안 뽕을 많이 먹고 별 탈 없이 올라간 것은 고치를 크게 짓고, 고치가 크면 클수록 등수가 높고, 등수가 높을수록 값이 많습니다. 어른들은 고생하는 같은 값이면 높은 등급을 받으려고 정성을 다합니다. 섶에 눌린 흠집이 없게 하고, 마지막으로 싸고 올라가는 오줌이나 똥으로 묻는 물도 들지 않게 하고, 고치를 고정하느라고 늘린 겉껍질을 말끔하게 까기도 하고, 크기별로 일정하게 선별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학교에서 청소를 하고 선생님의 검사를 기다리는 우리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에를 칠 때만이 아닙니다. 담배조리를 할 때도 그랬고, 벼를 수매할 때도 그랬습니다. 등급을 위헤서는 낯빛이 진지했습니다.
담배농사
누에농사가 봄 가을 달 반 씩 석 달 농사라면, 담배농가는 올찬 한해 농사입니다. 봄에 누에알보다 더 작은 까만 씨앗을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내, 밭에 넓은 고랑을 타고 옮겨 심습니다. 담배를 심은 날이면 품을 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네가 모내기할 때만큼 품이 큽니다. 우리는 담배 농사도 크게 했습니다. 농토가 적어 특수작물로 벌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농토가 많은 사람이야 도지를 받아서도 살지만, 우리는 누에와 담배농사까지 지어도 도지를 주면 한 해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가 봅니다.
담배를 심을 때, 아버지는 지게 작대기 아래 담배포기 넓이를 잴 나뭇가지를 매어서, 세워 놓은 이랑을 먼저 나가면서 구덩이를 찔러 파 놓습니다. 다음은 아이가 하는 일로 담배포기를 구덩이에 하나씩 놓습니다. 다음 사람은 어른이 할 일로 호미를 들고 따라가며 아시 묻습니다. 그 다음이 제일 힘드는 일로 수대로 물을 퍼다가 포기뿌리에 흠뻑 부어 줍니다. 이 일은 남자 어른이 해야 합니다. 다음 사람은 아주 잘 묻어 줍니다. 또 꼭 어른이 할 일을 집앞 비닐하우스에서 담배 포기를 솎아서 나르는 일입니다. 이 일을 담배 심을 밭을 돌아가며 종일 반복하는 것입니다. 담배를 심을 때 물을 주어야하기 때문에 밭 옆에 물이 없으면 담배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 장마에 물을 흠뻑 먹고, 요즘 같은 땡볕에 잎이 거무틔틔 실하게 자랐다가, 가을이 시작되면 잎이 막 누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담배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벌써 누레진 잎을 따면 제 색깔이 나오지 않게 때문에, 한창 활짝 피었을 때 따서 말려 노란 색깔을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따는 날이면 어른 셋은 잎을 따서 등짐으로 져 나릅니다. 집에서는 나와 동생은 물론 작은어머니까지 오셔서 가는 새끼를 두 겹으로 꼰 어른 네발길이 새끼줄에 뀁니다. 담배잎이 눌리면 색깔이 안 나온다고 그늘에 네 줄씩 군데군데 쌓아 놓습니다. 건조실은 집 근처에다가 별채로 지어야 합니다. 담배줄에 꿴 생담배는 건조실에 네층으로 빽빽이 가로 걸어 맵니다. 건조실문을 아주 진흙으로 봉해서 괄은 장작불로 밤낮 사흘을 불을 때어 말리는 것입니다.
담배줄을 꿸 때는 좋은 놈은 좋은 놈끼리 따로 꿰어 가운데 걸고, 나쁜 놈은 달고 뗄 때 벽에 슬치면 상한다고 가장 가에 달거나, 불에 가장 먼저 닿는 1층에 답니다. 담배 줄을 꿸 때 우리 실력이 나옵니다. 5분에 한 줄을 꿰면 잘 꿰는 것입니다. 왼 손으로는 줄을 돌리고, 오른 손으로는 담배잎을 골라가며 벌린 줄에 찔러 넣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을 각자 놀리는 데는 이미 누에를 칠 때 단련한 바 있습니다. 누에똥을 갈 때는 잠박에 신문을 깔고 망 채로 옮겨 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천상 손으로 누에를 세듯이 일일이 주워야할 때가 있습니다. 자랄 것을 예상해 반으로 갈라 잠박을 늘릴 때나, 대가리를 사정없이 흔들면서 올라갈 데를 찾는 누에를 고를 때입니다. 그럴 때는 누에만 집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손으로 누에만 집어 옮겨 놓아야 하는데, 빨리 하려면 양손을 한꺼번에 각자 움직이면서 집는 일, 옮기는 일, 놓은 일을 따로따로 해야 합니다. 담배를 꿸 때도 손을 각자 놀려야 합니다. 그만큼 빨리 꿰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시간을 알려면 라디오를 틀어 놓고, '띠 띠 띠 열한 시를 알려 드립니다.'하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엄마, 열 한시래요.' 소리치면, 어머니는 금방 아침 설거지를 하고 담배줄을 잡았는데 '점심 준비 해야겠다'고 꿰던 줄을 물리고 일꾼들이 먹을 점심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네 집에는 궤종시계가 마루에 걸려 있었습니다. 라디오 장수가 몇 순배 돌면서 집집마다 라디오를 샀고, 얼마 후 궤종시계장수가 지게에 잔뜩 싣고와 동네에서 팔았지만, 우리는 시계를 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담배하는 날에는 시간을 잴 수 없고,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작은 집 담배하는 날에는 시간을 잴 수 있습니다. 대청마루에 있는 시계 바늘이 5나, 10이나 숫자가 메겨진 자리에 분침이 가 있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꿰기 시작합니다. 한 줄을 꿰면 줄을 접어 종류별로 구분해 놓은 장소에 올려놓고는 마루로 뛰어가 시계를 보는 것입니다. 5분에 한 줄을 꿰는 것은 보통이고, 4분이라면 선수 축에 드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양손을 각자 재게 놀려야합니다. 양 손만이 아니라 눈은 왼손의 줄과 오른손의 담배꼬다리를 보아야하고, 머릿속으로는 굵은 담배 하나를 꽂을지 작은 것은 두 세 개를 꽂을지 계산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사방에 흩어진 밭에서 담배를 다 쪄오고, 쪄온 담배를 집에 있는 우리가 다 꿰면, 건조실에 담배를 달아야 합니다. 건조실은 네모지게 담배를 말리기 위해 지은 집입니다. 바닥에는 아궁에 불을 때면 세 갈래로 불길이 나뉘어 지나가도록 고래를 만들었습니다. 돌로 세우고 흙으로 싸발라 연기도 세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담배를 나르다가 발끝으로라도 고래를 건드리면 큰일 납니다. 추는 일보다 내는 일이 많다고 죽살이치게 들어 먹습니다. 담배는 4층으로 답니다. 벽에 닿는 곳에는 나쁜 것, 즉 밭에서 따 올 때부터 잎이 이미 누렇거나 점이 박혔거나 작은 것을 골라 꿴 줄입니다. 나쁜 것은 벽에 닿는 곳 뿐만이 아니라 가장 아래 부분으로 화기가 처음 닿는 곳에도 답니다. 좋은 것은 가장 가운데 부분에 답니다. 줄을 잡아매는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우리는 날라다 주어야 합니다. 발 수를 세고 손뼘을 재어서 고르게 달아야지, 숫자를 잘 못 세어서 남거나 모자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달다가 아버지가, '청구야, 몇 발 남았냐?' 물어보시면 정확하게 답을 해 드려야 합니다.
담배를 달고, 장작을 때서, 유리창으로 보면 담배 색깔이 노랗게 될 때까지, 사흘을 불을 땔 때, 아버지는 건조실 불 앞에서 주무셨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불을 지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고래에서 연기가 새면 흙으로 메워붙인 출입구를 다시 열고 들어가 손을 봐야 합니다. 다른 농사는 호미시시를 지나 추수를 하기 전까지, 아직 누에치기 전까지니까 별로 큰일은 없을 때입니다.
겨울에도 많이 두지만, 이 때가 또 장기를 많이 두는 시기입니다. 더욱이 비가 오기라도 하면 건조실 아궁이 앞에서 장기 두는 소리가 쏠쏠히 재미있습니다. 장기도 담배를 꿸 때하고, 누에를 주울 때와 똑같습니다. 한 곳에만 눈을 모았다가는 지고 맙니다. 잠박 전체를 보듯 판 전체를 한 눈에 보고, 차 갈 길과 포 갈 길, 마 갈 길, 궁이 피할 길을 한꺼번에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포가 넘어 오고, 궁이 외통수에 걸릴지 모릅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전체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