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농사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논농사가 제일입니다. 그런데 논이 적어서 탈입니다. 문전옥답이라는 말은 책에서나 보았습니다. 여주로 시집간 이종사촌누나가 농사는 짓는데, 네모반듯한 논에 벼만 심는 것이 농사지 밭은 없다고 하는 말에, 어디 그런 곳이 있나 싶었습니다. 세상에 네모반듯한 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동네는 뱀재를 넘으면 풍기장을 단양장보다 더 쉽게 볼 수 있는, 버스가 들어 어기 전까지는 당연히 풍기장을 보았고, 버스가 들어 와서도 타고 다닐 돈이 없으면 몇 명이 함께 재를 넘어 걸어서 풍기장을 다녀오던, 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비탈에 밭이 많았지 논은 별로 없었습니다. 논이 있어야 우리들 키가 넘는 두렁을 쫌쫌히 갈라 붙여야 물이라도 가둘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논은 양지말 지나 양물래기 위에 세 두렁, 학교 가는 길 옆 개울 위에 한 두렁, 남조 가는 길 아래 네 두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뱀재 아래 남의 논을 도지주고 다섯 두렁을 붙이기도 하셨습니다. 봄이 와서 논을 갈려면 아버지는 쟁기를 지고 소를 몰고 아침나절에는 약물래기로 가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는 저녁나절에는 학교 가는 길에서 갈았습니다. 그 아래 남조길 아래서 일을 마치곤 하셨습니다. 이튿날 뱀재 아래 논은 감자 섞인 밥에 고추장반찬을 싸서 지게 아래 달고 소를 모셨습니다. 거름을 낼 때도, 비료를 낼 때도, 논두렁을 붙일 때도, 써래질을 할 때도, 마을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 흩어진 다랭이 논을 찾아 지게지고 바듯 걸어갈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모를 심을 때는 오랫만에 비린 생선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날입니다. 동네 어른들이 품앗이로 오니까 미리 장을 봐왔다가 반찬을 여러 가지 준비해서, 밥도 이밥을 하얗게 해 논으로 날라 옵니다. 나와 동생 영구는 논에서 주로 못줄을 잡았는데, 큰 싸리함지에 먹을 것을 가득실어 이고, 엄마와 작은 엄마와 현숙이 엄마 셋이서 멀리 논을 찾아오는 것이 그렇게 반가웠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먹고 일어서면 우리와 이고 온 엄마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모를 심을 때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것은 모춤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못자리에서 쩌서 단을 묶어 지고 온 모춤을 심을 논에 골고루 던져 넣는데, 어른들은 어쩌면 그렇게 던지는 대로 착착 서는지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던지면 모춤이 옆으로 눕든지 거꾸로 처박혀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빠지는 논을 걸어 들어가 바로 잡아 놓아야 합니다. 논에 들어서는 발은 물론 바지가랑에 둥둥 걷어 올린 맨발이었습니다. 긴 논에 심을 때는 못줄을 따라 옆으로 몇 걸음씩 옮겨야 하지만, 좁은 다랭이를 심을 때는 허를 쭉 펴 왼쪽으로 갔다가 발걸음을 떼지 않고 오른쪽까지 기울면 옆 사람이 심은 곳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뒷걸음만 치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심을 수 있는 넓이가 상당히 긴 것을 보고는 또 신기했습니다.
두렁농사
논두렁은 모를 심기 전에 논흙을 퍼 올려 반들반들하게 삽으로 다듬어 놓습니다. 이 일이 또 쉽지 않습니다. 겨우내 었었다가 날이 풀리면서 논두렁 흙이 푸석해졌습니다.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속에 든 차진 흙을 한 삽 퍼 올려서, 지난해 밟고 다닌 두렁에 올려놓고, 삽 뒷면으로 눌러 반들반들하게 싸발라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세지 않고 벼 밸 때까지 밟고 다닐 수 있습니다. 물속 흙 한 삽을 뜰 때 삽질의 역학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왼손을 삽 목 깊숙이 잡고, 오른 손은 삽자루 끝을 잡고, 왼 쪽 무릎을 왼 손가까지 받히고, 오른 다리를 안으로 살짝 굽히면서, 지렛대처럼 한 삽 가득 흙을 떠 올리는 것이 기술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논두렁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삽질 하나 하는 것을 보면 농사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를 심고나면 이 두렁에 콩을 심습니다. 여기에 심는 콩을 두렁콩이라고 합니다. 종다리 다래끼에 콩을 담고 허리에 동여맵니다. 더덕 캐는 꼬치를 오른 손에 들고 두렁 바깥을 찌르면, 왼 손은 콩 서너 알을 흘려 넣고, 오른 손의 꼬치로 가볍게 때려 구멍을 막아 놓으면 됩니다. 콩 세 알을 심으면 하나는 벌레가 먹고,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여기서 생겼습니다. 두렁 가운데 심으면 다닐 수가 없을 뿐더러, 바깥두렁에 심으면 콩뿌리가 두렁을 튼튼하게 잡아주기도 합니다. 노는 두렁에 심을 콩도 거두고 나면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기도 하고, 콩은 또 아무 곳에 심어도 잘 자라서 심어 놓기만 하면 먹을 수 있습니다.
한 여름 소낙비에 논에 벼가 자라고 두렁에 콩이 자라면, 논물을 보러 갑니다. 논에 물이 잘 들어오는지 혹은 너무 많지는 않은지를 보러 갈 때 삽을 들어야 하는데 낫을 들고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두렁콩이 웃자라지 않도록 순을 쳐 주기 위함입니다. 순을 치면 웃자라 두렁 안이든 바깥이든 쓰러지지 않도록 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콩은 순을 쳐 줘야 가지를 많이 뻗어 열매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냥 힘들이지 않고 지나가면서 툭툭 장난하듯 낫을 휘두르지만, 시기에 적절한 순치기는 농사일을 순조롭게 하고 수확을 많게 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볏단지기
데게 콩을 먼저 베서 두렁을 비우고 난 다음에 벼를 벱니다. 그래야 두렁을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벼 베기 오래 전에 논물을 빼긴 하지만, 벼를 벨 때까지 물이 빠지지 않은 논이라면 두렁이 없으면 벤 벼를 놓을 장소가 없습니다. 이때만큼 일이 어려운 경우는 드믑니다. 장화를 신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부잣집이나 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날씨가 차도 무논에 들어갈 때는 맨발이어야합니다. 아무것도 신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들어갈 때는 정말 죽기보다 싫습니다. 그런데 몇 번 낫질을 하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 또 견딜만 합니다. 두렁 초입에는 돌아 서기만하면 벼를 두렁에 놓을 수 있지만, 몇 발짝 들어가면 왼 손 한 움큼을 낫으로 받쳐 들면 두렁까지 나와서 놓고 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습니다. 이때는 또 비탈 논이나마 좁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반대로 이런 논이 좋은 때도 있었습니다. 가물어 물을 댈 방법이 없이 바짝바짝 타 들어갈 때, 이런 무논은 논 바닥에서 물이나서 한 걱정을 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징글징글한 무논입니다. 농사 한 해 짓고 나면 나쁜 것이 좋아졌다가, 좋았던 것이 나빠졌다가, 딱히 좋기만한 것도 없고, 온전히 나쁘기만 한 것도 없고, 꼬리가 꼬리를 물고 물려서, 그냥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만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밴 벼를 논에서 바짝 말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지게로 져서 집으로 나를 수 있기때문입니다. 무논은 두렁에 세워 말리고, 마른논은 논바닥에 마주대고 삼각으로 세워 말립니다. 마땅히 덮을 것도 없어서 날이 좋아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핸가 가으내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벤 볏단을 나르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서리를 맞다가맞다가 눈이 쌓였습니다. 아버지뿐 아니라 동네가 다 볏단이 선 채로 다시 싹이 난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 때는 덜마른 볏단을 지면서 낱알 떨어진다고 조심조심 신주단지 모시듯 했습니다.
대게는 볏집이 다 말라 가벼워지면 지게로 져 나릅니다. 볏단을 나를 때도 품앗이를 해야 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논에서 한 짐씩 져서 나를 때는 앞에 가는 사람의 종아리만 보고 갑니다. 둥둥 걷어 올린 어른들의 종아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정맥이 꼬불꼬불 시퍼렇게 독이 올라 있습니다. 칼을 안 대도 어느 굽이에서 용수철처럼 뛰어 올라 바라보는 내 눈을 찌를지도 모를 것 같았습니다. 평생 지게를 지고 산 사람들의 계급장은 종아리에 붙어있습니다.
타작
집으로 지고 온 볏단은 마당에 촘촘히 쌓아 놨다가 다 날라 오면 가리로 쌓습니다. 이즈음에 마당은 손질을 해서 얼마나 깨끗한지 모릅니다. 이른 봄에 객토할 때 팠던 빨간 진흙을 져다가, 물에 개어 골고루 펴서 파인 곳은 매우고, 싸리비로 미장하듯이 싸바르고는, 딱딱하게 굳을 때까지 함부로 밟지도 않습니다. 탈곡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탈곡할 공간을 남겨두고 한쪽에다가 볏가리를 쌓습니다. 제일 바닥에는 작년 짚단을 한 켜 놓고, 비가 와도 벼가 적지 않도록 속에는 세우고 쌓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도 볏단에 물매를 두어 비스듬히 흘러내리도록 쌓아야합니다. 가장 꼭대기는 또 작년 짚단으로 초가처럼 지붕을 해 얹습니다. 탈곡을 하면 볏가마를 모두 집 안으로 들여 모르지만, 마당에 볏가리를 쌓아 놓았을 때는 어느 집이 얼마나 벼농사를 지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볏가리는 언제나 우리 볏가리 보다 컸고, 권씨네 집은 볏가리가 두개나 됐습니다. 타작을 하고나서 볏가리가 두 개였던 집에다가 도지까지 갖다 주는 것을 보면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타작을 할 때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날을 잡았습니다. 순번대로 타작을 합니다. 어제는 승옥이네가 타작을 했고, 오늘은 우리가 하는 날입니다. 타작은 탈곡기로 했는데, 둘이서 밟으면 와릉와릉 하면서 처음에는 천천히 돌다가 통에 삼각형으로 박힌 철사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리 돌아갑니다. 한 사람은 볏가리에서 가져다가 단을 풀어 두 손으로 잡을 만큼 갈라 주고, 다음 사람은 아시 털어 넘겨주고, 세 번째 사람은 넘겨받아 손잡은 데까지 가까이 알뜰히 털어 옆으로 밀어 넣으면, 네 번째 사람은 서너 번 모아서 다시 단을 묶어 뒤로 던져주고, 마지막 사람은 마당 끝에다가 다시 짚단을 쌓습니다. 볏단이 마당을 한 바퀴 돌면 짚단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사람은 나락이 날리는 탈곡기 앞에서 수건을 뒤집어쓰고 갈퀴를 들고 이삭 채 떨어지는 것을 따로 긁어모읍니다. 한 쪽에 모아 놓았다가 도리깨로 털어야 할 놈입니다. 벼가 그렇게 많지 않는 한 가마니에 담는 것은 탈곡이 다 끝난 다음에 합니다. 가마니에 담기 전에 풍구질을 합니다. 풍구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동네에 한 두 개가 있어서 집집이 돌려씁니다. 얇은 송판으로 만들었는데, 신기합니다. 기어에 기름을 치고 돌리면 위에서 벼를 붓는 대로 알곡은 가까운 구멍에서 나오고, 조금 덜 찬 것은 다음 칸에서 나오고, 티갑지는 반대편 옆으로 난 큰 구멍으로 바람에 날려 나옵니다. 어른들은 종일 일하면서 말이 없다가 이때서야 비로소 말을 합니다.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도 없고, 먼지도 덜 날리고, 티는 날아도 풍구 구멍을 바람 불어 가는 방향에 놓아서 사람에게 날라 오지도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도 먼지는 뒤집어썼는데, 웃으며 이야기 하는 모습이 우리가 보기에도 참 평화로웠습니다.
마당에서 가마니를 봉당이나 처마밑에 쌓으면 이삭 채 떨어진 것을 마당에 깔고 도리깨질을 시작합니다. 빨래장대보다 짧은 나무 끝에 도리를 달아, 물푸레 야문 나무 3가지를 반쯤 얽어 만든 날개를 붙인 도리깨는, '휙휙'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는, '퍽퍽' 하며 잘라진 이삭에 벼를 잘도 떨구었습니다. 넓은 마당에서는 셋이서 마주보며 돌고, 좁은 마당에서는 둘이 반 발짝씩 원을 그리면서 몇 바퀴 돌면 한차례 도리깨질이 끝납니다. 웬만큼 됐다 싶으면 다시 풍구에 넣고 부치면 타작이 끝이 납니다.
도리깨질을 섣불리 하다가는 자기 머리를 치는 수가 있습니다. 장대는 가로 잡지만, 날개는 내 몸 밖으로 돌게 해야 합니다. 착지도 잘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빨리 치면 장대가 먼저 땅에 닿아 손이 아프고, 너무 늦으면 날개가 먼저 닿아 털리지가 않습니다. 날개 면이 한꺼번에 닿게 하는 것이 기술입니다. 나는 도리깨질을 배워서 나중에 팥도 털고 콩도 털고 했지만, 어른들만큼 왼 도리깨질 오른 도리깨질을 번갈아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팽이를 칠 때 '휙' 돌려 '딱' 치는 소리만큼, 어른들은 서로 호흡을 맞춰 도리깨질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타작을 마무리 하는 일은 쭉정이를 모아 불을 놓는 일입니다.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 타작을 하고 나서 생기는 티갑지입니다. 티끌은 바람이 불면 날려 붙어서 거름더미에 던지지도 못합니다. 하는 수 없이 마당 구석에 모아 불을 놓아 태웁니다. 마당을 다 정리하고, 어른들도 모두 집으로 가고, 아버지도 티를 모아 불을 지피고는 수건으로 몸을 털고는 수도가로 가시고, 나와 동생들만 남아 막대기로 불을 쑤십니다. 티가 타는 것은 불길이 이는 것도 아니고, 연기만 고약한 것이, 불을 쬐자 말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타작을 다 끝내고 태우는 티끌 속에서 한 해 농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봄 향기에 심던 모도, 여름 장마에 보던 물고도, 가을볕에 익던 이삭도, 장차 조용할 겨울 들녘처럼, 티가 타는 냄새는 저녁연기와 같이 밤나무 밑을 슬금슬금 타고 사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