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지게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가 물을 지게로 져다 먹었습니다. 동네 가운데, 가유형네 집 앞, 뽕나무밭 아래에 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샘은 겨울에도 얼지 않았고, 여름이면 시원했습니다. 아버지 뿐 아니라 눈이 와 미끄러운 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차례로 물지게를 지고 와서, 양 쪽에 한 통씩 두통을 져 가곤 합니다. 추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자를 쓰시고, 수건을 목에 두르시고, 산에 오르는 덕석신발에 새끼줄을 둘둘 두르시고, 눈길을 헤치고 출렁이는 물지게를 지고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봄이 오면 우리가 겨우내 눈독을 들였던 시케토(썰매)날을 아래에 둘러 박은 함석물동이를 이고, 어머니가 물을 길러 다니십니다. 어머니가 물을 이고 오실 때는 누런 바가지를 엎었어도 물초롱 끝단에 맺혀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쓸어 내면서 대문을 넘어 오시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볏단이나 쌀가마를 지거나 이고 오실 때는 든든했지만, 물을 지거나 이고 오실 때는 예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자라 물지게를 질 수 있을 때에는 물을 긷는 것은 내 차지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씀하셔서 물지게 멜빵을 줄여 놓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나는 물지게를 지고, 빈 통을 이리저리 바위에 나무에 담벼락에 정신없이 부딪치며 샘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반도 안 되게 졌는데도 중심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몇 번 지지 않아서 물지게를 지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길이 높은 두렁일 때는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도 기울지 않았고, 비탈을 내려 올 때는 시소처럼 기울여 언덕위에 닿지도 않았고, 좁은 담벼력 옆을 지날 때는 옆으로 서도 발걸음은 바로 걸었고, 편편한 마당을 지날 때는 빨리 걸어도 물동이와 몸이 하나가 되어 한 방울 흘리지도 않았고, 대문 문지방을 넘을 때는 앞을 들었다가 뒤를 들었다가 장애물 선수 넘듯 했고, 독에 들어 부을 때는 지게를 벗지도 않고 양쪽을 차례대로 붓는 묘기도 부렸습니다.
농사철이 되어서 들에서 늦게 오시는 때면 물을 반드시 길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 밭은 너무 멀어서 부모님은 밭을 찾아 갈레도 논에서 일을 할레도 길이 멀어서, 해 있을 때 집으로 와도 집에 오면 날이 저물고 맙니다. 남들이 만들지 않은 곳에서 화전을 일구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왕 갔으니 할 수 있을 때 일을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안 보일 때까지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한밤중입니다. 농사철에는 낮에 해가 있을 때 집에 돌아오시는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습니다.
종일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지친 몸에 누가 밥상 차려 주는 사람도 없이, 쉬지도 못하고 저녁밥을 또 지어야 합니다. 그러잖아도 몸은 천근만근으로 밥을 지어야 하는데, 거기다가 길어다 놓은 물까지 없으면, 캄캄한 밤에 돌부리에 채이고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더듬어 물을 퍼이고 오시는 어머니는 거의 울상이셨습니다. 우리는 노느라고 정신이 없다가도 날이 벌써 저문다고 생각하면 물단지 먼저 확인했습니다. 나는 물을 져오고, 동생 영구는 소죽 끓일 준비하고, 그 아래 종구는 막내의 얼굴 씻기고 해서, 어머니가 힘들게 들에서 돌아와도 짜증내시지 않고 저녁밥을 지으시도록 만반이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상수도 놓기
마을에 수도를 놓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봅니다. 마을 가운데 안장 맨 앞 동산에 세운 스피커 탑에서 새마을 운동 노래가 힘차게 울려나오고 얼마 있다가, 동네 어른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초가를 걷어내고 스레트지붕을 얹은 이듬해였습니다. 당시 우리 어머니가 동네 부녀회장 일을 보시고, 작은 아버지가 이장을 하실 때입니다. 마을에서 회를 하고 오시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서 생전 처음 보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상수도를 설치하는 공사였습니다.
나라에서 우리 동네를 지원하려고 하는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답니다. 하나는 뱀재 논에 보공사를 하겠는지, 혹은 마을에 상수도를 설치하겠는지,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해서 결정하는 회의였는가 봅니다. 박정희대통령은 새마을 사업의 최우선사업으로 지붕계량사업을 마을 단위로 시행하게 했습니다. 초가를 걷어내고 스레트를 입히고, 성황당의 서당을 모두 헐어내고 불에 태웠습니다. 그런 일차사업을 잘 한 마을에는 상으로 다른 사업을 하나 더 하도록 나라에서 지원하는데, 우리 마을이 여기에 든 것입니다. 지붕계량사업을 잘 해서 점수를 땄던 모양입니다. 구데타를 일으키고 이런 식으로 국민을 길들여 갔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뱀재에 논이 있어서 논물을 대는 보공사를 하고 싶으셨는데, 어머니는 마을에 지원되는 자금으로 마을 사람이 모두 혜택을 보는 상수도 공사를 하자고 주장하셨답니다. 상수도공사 작업은 동네 어른들이 직접 했습니다. 먼저 길을 따라 어른 허벅지까지 좁고 깊게 파 파이프를 묻을 땅을 팠습니다. 물탱크에서 파이프를 연결하는데, 파이프에 나사를 파고 연결고리로 맞물려 돌리고 이어 나갔습니다. 나사를 낸 곳에 실을 칭칭 감아서 서로 맞잡고 돌려 안 돌아갈 때까지 돌렸습니다. 굽은 곳은 한 사람은 엉덩이를 내 대고 양쪽에서 붙들고 적당히 밀어 굽혀 바닥에 깔면, 뒤에서는 꼼꼼하게 되메워 갔습니다. 동네 위에서 끝엣집까지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끼리 척척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타작마당에 순서대로 볏단이 지나가면 나중에는 짚단으로 묶이어 짚가리로 쌓이듯이, 파이프를 나사내고 연결하고 묻고 밟아 다시 길이 되어 갔습니다. 세상 일이란 바로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로구나 짐작이 갔습니다.
우리 집은 마당을 가로질러 통과해, 대문 밑을 지나서, 안마당 가운데로 해서, 옆집과 막은 나무 울타리를 뜯어내고, 울타리 섰던 자리에서 지게작대기 반만 한 수도관을 빼 올려, 수도꼭지를 달았습니다. 수도 하나를 정태 아저씨네와 같이 쓰는 것입니다. 마을 꼭대기 물탱크에서 소안장 양쪽 두 줄로 내려가는 중심관은 지원금으로 매립하되, 이 중심관에서 각 가정으로 들어가는 수도관은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하였기 때문에, 우리처럼 두 집이 쓰도록 하면, 개인부담금을 반분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이웃이 정말 사촌처럼 가깝게 되었습니다. 담을 허물어 물을 같이 받아 먹으니까 한 식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수도가에 오기만 하면 옆집 아주머니를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아랫집인 정대형네는 중심관에서 두 걸음도 안 되는 곳에다가, 부엌에서 물을 받으려면 또 물동이를 이고 와야 하는 먼 곳에, 길가 던 사람도 빈 지게를 진 채로 기울여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에다가 수도를 설치했습니다. 물이 마당 끝에까지 온 것만도 충분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돈을 아끼느라고 더 멀리 끌고 갈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윗집인 훈장영감네 집과 함께 쓰는 것입니다. 다른 집은 시멘트로 받침대도 만들고, 물을 가두어 보관하는 통도 만들고, 쓰기 좋게 호스도 끼우고 하는데, 정대형네는 그냥 여전히 흙바닥에 수도꼭지만 달랑 처음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물이 집안까지 들어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물지게를 안 지는 것은 물론, 걸레를 빨러 개울에 안 가도 좋고, 한번 쓴 물을 그대로 휙휙 버려도 되서 좋고, 더운 날 등목을 집에서 할 수 있어서 좋고, 정말 물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내게는 세상이 한 층 더 생겼습니다. 보이는 땅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도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갈 때 머리 위 구름에서 쏟아지는 소나기가 마을 아래 계곡으로 꽂히는 것을 보았듯이, 이제는 한 층 아래 우리가 타작하고 콩을 털고 장정에서 주운 배구공에 짚을 넣어 축구를 하는 마당 속에서는 쉴 새 없이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탱크
수돗물이 나오는 물탱크는 창호형네 집 옆에 있습니다. 창호형네 집 위로도 한집에 더 있는데, 동네서 가장 위집인 용심이네 집입니다. 이 두 집은 물탱크보다 위에 있었으니까, 수도를 설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돗물을 펌프로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 설치해 놓고 위치에너지로 보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집에는 모두 수도를 놓은 셈입니다. 물론 부잣집은 밖에서 수도가 보이지 않도록 안마당이나 부엌에까지 수도관을 끌어갔습니다. 수도를 놓은 후로는 이런 집에서는 사람이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를 만큼 왕래가 끊어지고는 했습니다. 대신 수도를 두 집이 함께 써야하거나 집밖에 있는 집은 이웃과 왕래가 그래도 많이 남아 있는 집입니다.
수도가 없는 가장 높은 집 두 집은 대신에 물탱크에서 나오는 물이 다 그이들 물입니다. 물탱크의 물은 또 그보다 높은 개울에서 끌어 왔습니다. 어시레미에서부터 샘골 동네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입니다. 말하자면 지금은 명실상부한 샘골물입니다. 어시래미 개울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소백산 줄기 연화봉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어시레미 꼭데기 마을 사람이 부치는 논과 밭을 다 친다고 해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물을 모으는 집수정 작은 탱크를 만들었습니다. 바위로 덮어 놓아서 무심코 갔다가는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마는 정도였습니다.
마을에 물이 들어오고 그 이듬 이듬해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영구와 종구를 데리고 머루를 따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어시레미는 평소에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머루넝쿨이 있었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잊어버리지 않고 가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저 건너편에서 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도끼는 나무를 찍고 다시 드는데 그 때서야 탕 하는 소리를 들으면, 한참이나 멈춰 서서 행동과 소리를 맞춰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머루를 따러 올라가다가 큰 돌이 유난히 정리된 듯이 쌓여있는 작은 물탱크를 발견했습니다. 돌틈으로 가만히 들여다 보았더니, 줄로 매달아 물에 잠가 놓은 뭔가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줄을 살살 당겼더니, 요즘 말로 표현을 하자면 실리콘 통 같은 동그랗고 길쭉한 프라스틱 통이 달려 있었습니다. 물을 소독하는 약을 담아서 담가놓는 통이었습니다. 다시 물속으로 집어넣어 두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도 참 많았습니다.
마을 꼭대기 집수정에서 소독을 하고 보낸 물이 관을 타고 내려와서 물탱크에 모였습니다. 물탱크는 콘크리트로 네모지게 만든 방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탱크에 물이 가득차면 넘치게 되는데, 넘치도록 박아 놓은 관은 집집이 수도꼭지를 단 관 보다는 훨씬 굵었습니다. 우리들 팔뚝보다 더 굵은 관에서는 언제나 물이 옆으로 멀리까지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동네서 수도를 틀어서 사용하도고 남는 물이 지천이었습니다. 샘골은 역시 샘골이었습니다. 용심이네와 창호 형네는 여기서 물을 떠다가 먹었습니다.
물탱크는 물만 담아 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탱크 위를 콘크리트로 발라 놓아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앉아 쉬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마침 바로 옆에 밤나무가 있어서 한여름이면 매미소리도 나고, 아이들이 방학 숙제도 하고, 어른들은 호미시시를 하고 쉬는 동네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물탱크는 마냥 가만두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은 마을에서 어른들이 물탱크 청소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장마가 지면 토사가 흘러 들어갈 것이고, 물탱크에 토사가 쌓이면 수돗물에도 토사가 섞일 것이었습니다. 편편한 지붕 한 귀퉁이에 따로 떼어 열도록 해 둔 뚜껑을 들어 옮기니까 물탱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물이 비도록 조치를 하고 들어가는 것이었더랬습니다. 상류 집수정에서는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고, 들어있던 물은 수도를 틀어 다 흘러 빼고 난 뒤였습니다. 물탱크는 어른 키보다도 더 깊었습니다. 그런데 삽으로 흙을 퍼내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먹는 물은 깨끗하기만 할 줄 알았더니, 흙에서 나오는 물을 사람이 이때까지 먹었고, 또 사람이 앞으로 먹을 물을 맨발로 들어가 정검정검 밟고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냥 깨끗해야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샘골의 수돗물은 참 맛있었습니다.
현종이네 샘물
수도가 집에까지 들어와서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물이 한군데 있습니다. 우리 바로 아랫집인 현종이네 집 물입니다. 현종이네 집 옆에 바위로 된 벽이 있고, 그 벽 위로는 다른 집마당이 되는데, 그 바위벽 아래서 솟는 물이 별미입니다. 샘골의 샘이 바로 그 물을 말한다고 해도 그것도 또 틀린 말이 아닙니다.
현종이네 샘물은 겨울에는 가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지만, 여름에는 엄청 시원합니다. 샘이 깊지도 않고, 물을 바가지로 뜨면, 겨우 바가지 하나 잠길만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그치지 않은 것을 보면, 장마가 졌다고 해도 철철 넘치지도 않았던 모양입니다. 항상 맑은 물이 소리도 없이 조용히 흘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 바위에 이끼가 끼거나 풀이 돋아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깨끗한 바위에 맑은 물이 잔잔히 흘렀습니다.
아주 날이 더운 날 오이냉채국을 만들어 먹으려면 어머니는 주전자를 주면서 그 샘물을 떠오라고 하십니다. 오이와 미역을 양념한 그릇에 그 물만 부으면 바로 국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짐을 져오신 날이면 시원한 물을 좀 떠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또 주전자를 들고 물을 뜨러 갑니다. 바로 앞집에서 뒷집으로 오는 거리이지만, 벌써 주전자 몸통에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 방울로 모여 주르르 줄을 타고 떨어집니다. 냉장고도 없고, 그래서 얼음이라고는 더 없고, 상수도에서 나오는 물도 더운 것은 아니지만, 현종이네 우물물을 주전자 채로 드신 아버지는,
"어, 시원하다. 물맛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더러
"그 물은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고 물으셨고, 그렇게 물으실 때마다 어머니의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예요."
이 샘물집 딸 현종이는 나와 한 학년입니다. 위로 오빠가 하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그리고 할아버지를 모시는 부모님과 함께 여섯 식구가 살았습니다. 물을 뜨러 가면 그 집에도 점심 먹는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안채 마루에서 가족이 식사를 하는데, 나는 손에 든 주전자를 먼저 내밀어 보이면서,
“엄마가 물을 좀 떠 오라고 해서 왔어요.”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현종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번번이 웃으시면서,
“그래, 떠가라.”고 인사를 받으십니다. 물을 떠가면서 발자국이 더 조심스러웠던 것은, 현종이네 마당이 우리 마당에 비하면 훨씬 깨끗해서만도 아니고, 어른들이 마루에서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서만도 아닙니다. 집안 어디엔가 현종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종이네 샘물은 마시기에는 시원했고, 떠오기에는 달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