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나무는 밤나무였다.

by 기추구


박물장수


할아버지가 사는 작은 집은 비교적 동네 가운데입니다. 작은 집 앞에는 큰 밤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것도 큰 아름드리 나무가 두 그루 가까이 있어서 한여름이면 제법 그늘이 좋습니다. 호미시시를 하면 뜨거워 들에 나가지 못할 때면 동네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밤나무가 정자나무가 되는 셈입니다. 가을이 되면 열리는 밤은 엄청 굵었습니다. 봄에 밤꽃이 피면 벌들이 벌집처럼 몰려들었고, 밤꽃이 떨어지면 지렁이만큼 긴 꽃을 주워서 다람쥐를 만든다고 이아들이 모여 들었고, 농사를 쉬는 때는 시원한 밤나무 밑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어른들이 모였습니다.


새우젓 장수도 마을에 들어오면 이 밤나무 아래에 지게를 받쳐놓고 팔았습니다. 한 두 집이 새우젓을 사면 동네에서 가장 위에 있는 용심이네도 새우젓을 사러 밤나무 아래까지 오고는 했습니다. 어떤 때는 호미고기를 파는 장사도 옵니다. 어른 손가락만한 물고기를 새끼줄로 엮어서 지개에 주렁주렁 매달고 오면 한 줄씩 사고는 했습니다. 새끼에 엮어서 달아맸더니, 물고기가 호미처럼 꼬부라졌다고 해서 호미고기라고 부릅니다. 냄새는 궁궁한 것이 뭔가 상한 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찌개 그릇에 한 두 마리씩 넣어서 끓여 놓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뼈를 골라 낼 것도 없이 한 입에 다 넣고 깨물어 드셨습니다. 그런데 내 입에는 뼈를 씹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딱딱합니다. 나는 뼈를 골라내려고 했지만, 어른들은 아깝다고 다 먹으라고 합니다. 호미고기 뼈를 씹으면서 나는 세상에 내 힘에 부치는 일도 해 내야하는 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물장수도 들르곤 했습니다. 박물장수는 바지게에 온갖 신기한 물건들을 지고 옵니다. 냄비에, 파리 단지에, 바늘에, 실에, 참빗에, 벼라 별 것이 다 들었습니다. 파리단지는 요강처럼 생긴 것으로, 아래에 발이 세 개 달려있고 가운데 비어 있고 가로 물을 채워 놓아서, 파리가 들어갔다가 나오지는 못해 물에 빠져 죽는 파리 잡는 단지입니다. 나는 새총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고무줄에 가장 먼저 눈이 갑니다. 이 고무줄은 노란 색으로 된 동그란 고무줄인데, 동생들 기저귀를 채울 때 쓰는 것입니다. 새총을 만들 때는 가장 좋은 고무줄인데, 집에서 쓰는 것을 잘라서 만들었다가는 큰일 나는 일이어서 감히 잘라 쓸 엄두도 못내는 것입니다. 여기 박물장수의 지게에 어른 주먹으로도 한 주먹이 넘을 듯합니다. 군침이 돌았지만 눈으로만, 마음으로만 가지고, 생각으로만 새총을 만들고 말아야 합니다.


박물장수는 물건을 살 사람이 더 이상 없으면 지게를 지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지게 작대기로 받쳐 놓은 지게 앞으로 가기 전에 몇 번이고 지게 뒤를 돌면서 물건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그날도 지게를 지려다가 다시 지게 작대기를 받쳐 놓고, 서너 번을 지게 뒤로 돌아 단도리를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뒤로 돌아오더니 하는 말이,

“내가 지게를 지는 사이에 뒤에 서 있다가 물건을 집어 드는 사람이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기저귀 고무줄에 눈이 박혀 상상의 나라를 날고 있는데, 고무줄 하나를 가지면 세총을 하나만 만들까 두 개를 만들까 계산을 하고 있는데, 오늘도 고무줄을 보기만 하고 사지는 못한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물장수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 왔습니다.


박물장수가 지게를 지고 상진이네 논두렁길을 지나 남조로 걸어가고 있을 때도 박물장수의 말이 내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 와서도 온 내 머리 속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 어른들은 그러기도 하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성숙하고 분별이 있어서 그런 나쁜 짓은 하지 않겠지만, 동네에서 가끔 싸움도 하고 욕도 하고 돌아다니는 형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나는 전혀 그런 짓을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해도, 그런 내 마음을 사람들은 다 알아 주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얼마든지 있는 것을, 행동이 지게 뒤에 서 있는 한은, 의심을 받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아무 장수도 들르지 않아도 더운 여름에는 이 밤나무 밑에 할머니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날도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네 집에 왔다가 할머니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바위 옆에 앉아 땀을 식힐 때였습니다. 할머니 중에 가장 큰 소리를 내며 웃는 할머니는 서당집 할머니인데, 이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 보고 하는 말이,

“청구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데”

하시는 것입니다. 건너 바위에서 사까루(사카린) 탄 물에 고구마를 벗겨 먹던 할머니들이,

“그래? 다리 밑에서 주워왔데?”

하며 손뼉을 치며 웃어 제켰습니다.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놀랐습니다. 나는 엄마가 나를 낳았고, 그 후에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죽 길러오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할머니들은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것입니다.


다리는 두 개가 있습니다. 장정에서 신구로 가는 다리와 장정에서 사동으로 가는 다리입니다. 어른 두 발 쯤 되는 거리로 돌을 둥그렇게 무더기로 쌓아놓고, 그 위에 나무를 건너질러 엮고는, 나무 위에 솔가지를 깔아놓고, 그 위에 흙을 펴서 사람이 밟고 건너 다녔습니다. 섶다리입니다. 높이가 어른 키 높이는 되지만 작년 장마 때는 물이 불어나면 돌무더기는 그대로 있는데, 나무섶만 둥둥 떠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신구 다리가 그랬습니다. 다른 곳에 물을 건너는 곳에는 모두 징검다리입니다. 징검다리도 없는 개울은 건너 뛰어 다니면 됐습니다.

신구 다리는 장마철이 아니라면 아홉 개의 다리섶을 받치고 있는 여덟 개 다리발 중에 가운데 두 칸만 물이 흐릅니다. 양쪽 가로 대부분 다리 아래는 돌만 드러나 있습니다. 양쪽으로 첫 다리발 아래로는 물이 흐른지 오래 되어서 풀도 길게 자라 있습니다. 그런데, 글쎄, 날 이런 다리 아래서 주워왔답니다. 지금 엄마도 나를 낳은 엄마가 아니랍니다. 하도 기가 막혀서 할머니 말은 들은 생각도 안하고, 어머니 눈치를 살피려 했습니다. 이 엄마는 내 엄마려니, 주워다가 키우는 것은 아니려니, 눈으로나 표정으로 대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머니 얼굴을 쳐다봐도, 어머니는 '기다, 아니다' 아무런 표시도 주지 않으십니다. 눈만 한번 깜빡해도, '할머니가 나를 놀리고 있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나도 할머니들에게 아니라고 항변한번 할 텐데, 어머니는 웃고만 계셨습니다. 소리는 내지 않고 빈입만 한번 벙긋해도, '우리 엄마가 날 낳은 것이 틀림없다'고, '할머니들은 그런 말씀 마시라'고 할 텐데, 엄마는 여전히 웃고만 계셨습니다. 엄마의 반응 없음에 혹시 정말 그런 게 아니가 하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할머니들 모두 하는 것입니다. 바랑장수가 오는데 날 거기다가 담아 간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니까 짊어지고 다니는 큰 바구니에 나를 담아 갈 것이랍니다. 그 때는 큰 대나무 망태기를 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장수가 가끔 왔습니다. 새우젓장수나 호미고기장수나 박물장수 외에도 마을에 들르는 장수들이 더 있었습니다. 바랑장수는 큰 망태를 지고 무엇이든지 주워 담아 가지고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님도 가끔 들렀습니다. 스님들은 헝겊으로 된 가방을 메고 다녔습니다. 어떤 때는 손이 없고 손대신 쇠갈고리를 단 사람들도 왔는데, 마을에 오는 사람들 중에 이 사람들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다른 장수들은 혼자 다녔는데, 상이군인들은 여럿이 다녔고 또 어른들도 함부로 못하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들은 더 무서웠습니다.


장정에서 남천으로 곧장 온다면 성황당 지나 원예네 집을 거쳐서 마을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남천에 오는 손님들은 대게 남조에서 오는 길로 왔습니다. 남조에서 오려면 상진이네 논둑길로 걸어서 들어와야 합니다. 탁 트인 논들 사이에 가느다란 논둑을 구부정하니 걸어오는 것을 밤나무 아래서 바라보고 있으면, 저건 무슨 장수다 무슨 장수다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바랑장수는 큰 대나무 바랑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바랑에 나를 담아가려고 지금 오고 있답니다. 저기 남조에서 오는 것 보이지 않느냐고 손가락질까지 합니다. 나는 아무리 보아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것 같은데, 이 할머니 저 할머니 다 함께 온다 온다고 고개를 빼어 보고 있습니다. 나는 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제서야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신호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신호입니다. 다른 할머니들은 모두 남조에서 오는 논둑길을 쳐다봐도, 엄마는 아까처럼 웃고는 있었지만 내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남조길을 한 번 힐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금방 다시 눈길을 돌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을 보고 나는 알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나으셨지,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마터면 울뻔 했습니다. 얼마나 아슬아슬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눈물로 흥건했습니다. 할머니들만 보면 무서웠습니다.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피했고, 혼자 있는 것을 만나면 인사만 하고 얼른 피하고 말았습니다. 주워 온 다리가 그 다리가 아니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은 그 때 이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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