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불을 켜고 살았다.

by 기추구

호롱불


산골짜기 밤을 밝혀 주는 것은 호롱불 뿐입니다. 밤에는 늘 호롱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하얀 사기 호롱에 문종이 심지를 호롱 바닥에 닿도록 박고, 석유 기름을 넣고 조금 기다리면 호롱꼭지까지 기름이 맑갛게 올라옵니다. 문종이로 된 심지가 젖는 것을 보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면 불이 붙습니다. 처음에는 작았다가 점점 커져 방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그 호롱불 밑에서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고, 우리는 숙제도하고 실팽이도 돌리고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을 자려면 호롱을 올려놓은 등잔을 한쪽 구석으로 치워 놓아야 합니다. 누구라도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오줌이라도 마려워 나가다가 등잔을 차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긴 밤을 친구들끼리 모여 놀기도 합니다. 모이는 장소는 원경이네 집 사랑방입니다. 여기가 우리 아지트입니다. 겨울 긴긴 밤을 텔레비전도 없이, 라디오는 어른들이나 듣는 재미없는 것이고, 또래 친구들끼리 화투 놀이를 하러 모였습니다. 화투라고 해봐야 껍데기는 빼 내고 알맹이를, 1에서부터 10까지 20장으로, 똑같은 것 두 장씩 세 짝을 먼저 맞추면 이기는 것입니다. 꽃맞추기입니다. 각자가 뽑은 한 장을 오른쪽으로 동시에 돌리면서 넘겨받아 내 꽃을 맞추는 것입니다. 먼저 맞추는 사람은 기다리고, 몇 번 꼴지를 한 사람은 술래가 되어 무를 훔쳐오면 됩니다. 아무리 밤이 늦도록 해도 질리지도 않게 재미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놀다가 초저녁 잠이 많은 상건이는 구석에 골아 떨어져 잠이 듭니다. 그러면 짓궂은 아이는 성냥을 호롱불에 대고 길게 태워 숯을 만듭니다. 오늘은 용삼이가 앞장을 섰습니다. 성냥개비 숯에 침을 발라 양말을 걷어붙인 발목에 세우고 불을 붙였습니다. 불이라고 해야 활활 타는 것도 아니고 호롱불에 대 빨개진 성냥개비로 숯에 옮겨 붙이는 것입니다. 빨갛게 타들어 갑니다. 마치 쑥뜸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잠을 자던 상건이는 '아 따거, 아 따거' 하고는 기겁을 하고 일어났습니다.


모여 노는 날도 여러 날이 되면 화투 놀이도 시들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놀이가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평소 엉뚱한 말을 잘하는 덕화가 호롱불에 방귀를 뀌면 파란불이 난다는 것입니다. 불은 다 붉었지 파란불은 본 적이 없다고, 세상에 도깨비불 말고 파란 불이 어디 있느냐고, 이구동성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호롱에 심지가 너무 많이 올라오면 불은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검은 그으름이 나면서 검어 지는 것은 볼 수 있습니다. 소죽솥에 불을 다 때고 빨간 숯이 타오르면 분홍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이 파랗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너도나도 자기가 본 불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처음 방구불 이야기를 꺼낸 덕화는 파란불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방구 마려운 사람은 말하라고 했습니다. 너도 나도 얼굴을 서로 바라보면서 뱃속으로 방구를 만들어 냈습니다. 드디어 용삼이가 방귀가 마렵다고 했습니다. 엉덩이를 까고 호롱불 가까이 대고, 뿡하고 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파란 불꽃이 났습니다. 바람이 셌는데도 호롱불은 꺼지지도 않았고, 파란불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우리 몸에서도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작은 집에서는 호롱불 때문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집을 다 태울 뻔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가운데, 밤나무 정자나무 옆집에 살 때였습니다. 호롱불을 켰는데 기름이 떨어져서 기름병에서 더 채워 넣을 때였습니다. 안전하게 하려면 호롱불을 끄고 4홉들이 정종병에 담아서 보관하는 기름병에서 따라 부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을 끄면 어두워서 넣을 수가 없습니다. 성냥을 그어서 비추면 되기는 하지만 성냥도 아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 호롱 꼭지를 살짝 옆으로 빗겨 놓고 기름을 채우고는 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기름을 붓는데 갑자가 호롱에 있던 불이 따르는 기름으로 당겨 붙더랍니다.


작은 아버지네 집은 우리 집과는 달랐습니다. 안방이 우리집 안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 안방에는 들어가면서 문 위로 실겅이 천정 아래로 달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반이 셈인데, 여기에는 방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물건을 올려 두는 곳입니다. 윗목 한 귀퉁이에는 횟대를 걸어 둡니다. 구석진 부분에 나뭇가지 하나를 양쪽 중돌이에 못을 박에 고정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금방 입는 옷을 척척 걸쳐 두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아랫목 안쪽 구석으로 휘장을 늘어트려, 그 휘장 안에다가 가림옷을 먼지 쌓이지 않도록 걸어 두었습니다. 우리집은 이 휘장이 우리 발로 한 발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은집 휘장은 안방 아랫목 전면을 큰 휘장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그 안에 가림 옷이 가득 차 있습니다. 휘장은 하얀 광목천에 학과 소나무와 해를 멋지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번 불로 이 휘장에 옷에까지 불이 옮겨 붙었답니다. 그 고운 옷들을 얼마나 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안방에서 번지지 않게 다 끄길 다행이지, 그 큰 집에 불이 다 붙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습니까?


작은 아버지 말씀으로는 석유에 휘발유가 섞여 있어서 그랬다고 하셨습니다. 기름이면 먹는 기름하고 호롱에 부어 불을 붙이는 기름하고 이름이 같다는 것도 이상했는데, 불이 붙는 기름도 석유 말고 또 다른 기름이 있다는 것이 또 이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장죽을 재떨이에 때리면서 '그만하길 다행이다'고 하시며 하늘을 져다 보셨습니다.





호야불


호야도 있었지만 집에서 켜지는 않았습니다. 여느 집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마실이라도 가려고 마을에서 가장 부자집 옆을 지나다가 안마당에서 들고 다니는 것을 가끔 보고, 저게 호야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주 캄캄한 밤만 아니라면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에 갈 때도 그냥 갑니다. 화장실에 다 들어가서 성냥을 한번만 켜면 발판을 찾아 쪼그려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구름 낀 밤이라면 비료부대를 가늘게 쪼개거나, 비료부대도 없으면 짚을 한 움쿰 묶어서 불을 붙여 화장실 까지 갔습니다. 볼일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올 때는 대게 그냥 올 수 있습니다. 캄캄한데 앉아 있는 동안에 눈에 적응이 되어 위치는 짐작할 수 있을뿐만 아니고, 방에서 비취는 창호지 불빛이 있어서 등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호야는 교회에 가면 실컷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호롱불을 켜지 않고 전부 호야를 켰습니다. 천정에 못을 박고 철사를 늘어트려 호야를 켜 달았습니다. 전도사님이 서는 강대상에는 호야 하나에 혼자 보셨고, 회중석에는 바닥에 앉은 사람의 어깨 높이만큼 달아, 뺑 둘러 넷이나 여섯이 환하게 책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교회 안에 대여섯 개만 달면 환했습니다.


호롱불을 켤 때도 그렇지만 호야불을 켤 때는 그을음이 더 납니다. 불의 크기를 적당히만 하면되는데, 어두워서 더 밝게 보려고 심지를 올리기라도 하면 그을음이 시커멓게 올라왔습니다. 바람이 불면 심지를 높이지 않아도 불이 휘둘려 호야를 까맣게 그을렸습니다. 그을음만 생겼다하면 호야는 금방 시커멓게 됩니다. 호야가 시커매지면 더 밝게 보려고 심지를 더 올리고, 심지를 올리면 올릴수록 호야는 더 빨리 시커매져서 볼 수가 없게 됩니다. 호야를 자주 닦는 수밖에 없습니다. 호야는 다음 예배시간까지 닦으면 되지만, 금방 닦아내야할 것은 콧구멍입니다. 한 두어 시간 집회를 마치고 나와 코를 풀면 시커먼 코가 나왔습니다.


호야를 닦는 일이 보통 손 가는 일이 아닙니다. 호롱불은 그렇게 밝지는 않지만 켜고 끈 다음에 뒷손질이 필요 없습니다. 기름만 채워 넣으면 됩니다. 그러나 호야불은 켤 때는 밝아서 좋지만 뒷손질이 만만치 않습니다. 수시로 호야를 닦아 주어야 합니다. 호야를 닦으려면 먼저 기름 통 옆에 붙은 누름쇠를 눌러서 호야를 잡고 있는 연통을 들어 올려야 합니다. 뺀 호야는 비누를 풀은 대야에 담가서 불려야 잘 닦여집니다. 호야를 닦을 때는 수세미에 비누를 묻혀서 닦아야지, 맹물로 닦으면 잘 지지도 않습니다. 기름이 섞여서 그런가봅니다. 그을음을 다 닦았으면 행굴 때도 깨끗한 물로 잘 행궈야 합니다. 행구기를 잘 못하면 얼룩이 져서, 닦고도 욕먹는 일이 발생합니다.


한번은 일요일에 예배를 마치고 저녁예배를 드리기 전이었습니다. 신구에 사시는 성윤이 아버지셨입니다. 아직 해가 남아 있었는데 예배당 마당가에서 호야를 닦고 있습니다. 호야의 가장자리는 유리를 자른 것이라서 잘못 다루었다가는 손을 베기 일수입니다. 그런데 호야는 이렇게 닦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비눗물에 담궜던 수세미를 호야 유리 속에 넣더니, 손으로 아래 위를 막고는 뱅글뱅글 돌렸습니다. 비누만 돌 때는 안 지워지던 것이 수세미가 지나가니까 깨끗하게 지워졌습니다. 행구기도 잘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호야 닦는 것을 구경만 했는데도, 그날 저녁에는 호야를 여러 번 쳐다보면서 기분 좋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깃불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72년에 중학교를 다니느라고 단양에서 살다가, 어느 토요일인가 반찬을 가지러 집에 와 보니까,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단양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장정에 도착합니다. 나는 또 30분을 걸어서 산길을 올라가야 집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버스를 타면이야 아직 날이 저물지 않을 때 집에 올 수 있지만, 차비가 없어 단양에서 장정을 걸어가는 날이면 해가 기웃해야 집에 들어섭니다.


그날은 다행히 차를 타고 온 날입니다. 일주일을 밥을 해 먹으면서 살고도 차비가 남았는가 봅니다. 놋재 꼭대기에서 장정 가는 버스를 타고 장정에 내렸습니다. 남천으로 올라가는데 길 가에 못 보던 전봇대가 전선 줄을 받쳐들고 남천까지 이어졌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사랑방 소죽 솥 위에 알전구가 하나, 어머니가 밥을 하는 부엌에도 알전구가 하나, 마루와 방에도 알전구가 맑간 유리전구 안에 꼬불꼬불한 필라멘트가 보였습니다. 변소에도 하나 달렸는데 소켓트에 네모진 손잡이를 돌리면 밝은 빛이 눈을 찌를 듯해 바로 보지도 못하고 눈을 피해야 했습니다.

그날 저녁을 먹고 중학교에 간 나는 전기에 대하여 아는 채를 했습니다.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말하자면 전봇대와 전봇대의 거리가 50m씩이라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거리 측정할 때 전봇대의 개수를 세어서, 거기다가 50m를 곱해서 계산을 한다고, 그러니까 쉽게 계산 하면 전봇대 세 개 사이가 100m라고, 선생님에게 들은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영구가 듣더니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중학교에 간 형이 그러면 그런 줄 알아야지, 맞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은 장정에서 남천으로 오는 전봇대 중에 개울을 건너오는 전봇대 사이는 엄청 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았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다시 단양으로 가려고 내려오면서 전봇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남천에서는 일정한 거리로 전봇대가 서있는데, 한군데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가 있었습니다. 과수원 근방인데, 장정에서는 논에 전봇대가 서서 오다가, 마지막 전봇대에서 남천으로 오는 다음 전봇대는 개울을 지나 언덕에 꼽히느라고, 엄청 먼 거리에 전선이 하늘을 날아 걸렸습니다. 논바닥에서 개울 건너 높은 언덕에 올라앉은 자리라 거리가 멀어도 높이는 넉넉했습니다. 맞았습니다. 거리는 다른 전봇대 사이보다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단양에서 버스를 타고 놋재를 넘으면 내리막길로 단숨에 북하리에 다다릅니다. 북하리에서 대강까지는 남한강 지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평평한 땅이 나옵니다. 길도 어쩌면 그렇게 똑바른지, 길따라 옆으로 늘어선 나무에 검은 기름을 먹인 전봇대는 아침 조회때 운동장에서 줄을 맞춘 것처럼 한 줄로 똑바르게 서 있습니다. 북상리가 끝나고 대강으로 굽어들 때는 줄을 맞춘 전봇대가 하나로 보이기도 합니다. 전봇대도 이런 평지에서는 50m 간격으로 일정하게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곡을 건너고 언덕을 넘을 때는 얼마든지 간격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도 틀릴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들어서 배운 것이라도 곧이곧대로 말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전기공사


이튿날 일요일에는 할아버지가 사는 작은 집에는 어떻게 전기불을 달았는지 작은 집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참 신기한 세상이 왔다고 아직도 감탄하고 계셨습니다. 평소에 우리 방과는 사뭇 다른 작은 아버지가 사는 방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우리 집은 누우면 석가래가 보이고, 석가래 사이에 드러난 흙은 마분지로 바르고 살았지만, 작은 아버지 방은 신혼방이라 천정을 평평하게 도배를 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전기불을 어떻게 달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 방의 천장은 길게 잘려져 있습니다. 벽을 뚫고 전선이 들어 간 곳에서 소켓트가 달린 천정 중앙까지 돼지를 잡을 때 가른 배처럼 갈라져 늘어졌습니다. 돼지 뱃속에는 온갖 부속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천정 속에는 우리집 천정처럼 석가래만 드러나 있고, 도배를 하느라고 건너맨 철사 세 가닥만 칼이 지나간 곳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작은 집 방을 구경하는 사이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소죽을 끓여주고 난 빈 가마솥에 구정물을 부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놈들이 방에 신발을 신고 점검거리고 다니더라. 네 작은 아버지는 들에 나가고 나만 있었는데, 그 방 천정을 칼로 사정없이 북 째고는 전기를 달더라고.”

하셨습니다. 전기줄이 방으로 들어가는 곳에 작은 구멍을 내고, 시골집에 어렵게 도배한 것을 훼손하지 않도록 전구 달 곳만 째서 소켓트를 달면 될 것을, 시작부터 끝까지 크게 째고는 전구하나 달고 가더랍니다.


옛날 집 천정공사는 오늘날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요즈음은 각목으로 틀을 걸고 석고보드를 치면 편편한 바닥에 바로 도배를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우리집은 흙으로 된 벽에 신문지만 구해다가 발랐습니다. 천정은 석가래가 다 드러나 보이고, 석가래 사이는 흙이 금이 간 채로 드러나 있습니다. 거기다가 신문지나 마분지를 발라서 흙먼지가 일어나지만 않게 하면 충분했습니다. 안방에는 깨끗한 마분지로 도배를 했습니다. 물론 천정은 석가래가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채도 붙여 놓았습니다. 사랑방에는 신문지로 벽과 천정을 다 발라 놓았습니다. 그래서 동생들과 함께 방바닥에 누워서 단어 찾기 놀이를 아주 재미있게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 혼자 몰래 구석진 곳에서 ‘무장공비’라는 단어를 보아두고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면서 ‘무장공비’를 찾아보라고 문제를 내는 것입니다. 영구와 종구는 ‘무장공비’를 찾느라고 사방 벽을 읽어서 뒤지고, 천정도 멀리서 가까이서 보기도 하고, 누워서도 보고 서서도 보고, 찾을 때까지 뒤집니다. 문장을 쓰는 아주 작은 글씨를 빼고는, 작은 글씨를 정하는 것이 이길 확률이 많았습니다. 이런 집에 전기공사는 벽에 구멍을 뚫고 애자를 석가래에 박아 전선만 끌어 걸면 됐습니다.

작은 집은 달랐습니다. 도배지를 사다가 일정한 무늬로 된 그림을 맞춰서 벽과 천정을 한가지로 발랐습니다. 천정도 석가래를 숨기고 평평하게 도배를 제대로 했습니다. 작은 집 안방에 들어가면 네모반듯한 되박에 들어간 기분입니다. 작은집에 불이나고 도배를 새로 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께 심부름을 갔다가 도배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철사를 도배지 넓이보다 조금 좁게 방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겁니다. 다음은 철사 두 개를 걸쳐서 얇은 마분지를 붙입니다. 양쪽에서 철사를 싸고 감아서 붙이는 것입니다. 칸칸이 다 붙일 수는 없고, 한 칸 걸러 한 칸씩 붙이는 것입니다. 이 마분지가 마르면 그때야 도배지를 붙입니다. 도배지를 붙일 때는 마분지를 붙이는 방향과는 달리 격자무늬로 붙여야 합니다. 마분지가 띄어진 칸을 가로질러 무늬를 맞추어 도배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 팽팽하게 당겨 건 철사가 전체 천정을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천정에 전기공사를 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마루에서 전선이 들어가는 구멍을 뚫고, 천정 위로 전선을 가로질러가, 천정 가운데 애자를 걸어 백열등 소캣트를 늘어트려야 합니다. 공사자가 까짓것 천정을 칼로 '북-' 그어 찢고 전기공사를 한다면 얼마나 손쉽겠습니까? 그런데 이 천정을 보존하려면 얼마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공사가 되겠습니까? 할아버지만 계신 것을 알고는 천정은 무슨 천장이냐는 듯이 사정없이 칼로 긋고 공사를 한 것입니다. 전기가 들어와 신기하기는 하지만, 신혼방을 꾸민 아들의 노고를 아시는 할아버지는 못내 속상하셨던가 봅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소리를 하셨고, 작은 아버지는 찢어진 천정을 손도 못 대고 살고 계셨습니다. 소죽 솥 위고 부엌이고, 마루든지 방이든지, 알전구에서 나오는 빛은 부채살처럼 눈을 찔러 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 깔아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가 변소에서 만난 3학년 형들이 가끔은 '눈 깔아, 세끼야.' 하는데, 알전구 앞에서 우리는 모두 눈을 깔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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