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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Dec 15. 2024

서울장이 세월호의 3.0 버전이다.



조부장과 함께 다니는 일은 참 즐겁다. 눈이 하나씩 열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기에 대해 알게 되니까, 전기에 대해 무심코 지나던 것이 드디어 보인다. 물론 시험을 볼 때는 어디선가 한번은 읽었고, 문제로 나오면 풀어 봤던 것인데도, 실전에서 조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실물을 보면 새롭게 들린다. 서울장에 갔을 때가 그랬다.


  점심을 신륵사 근처의 순두부집에서 함께 먹었다. 강릉 초당두부라는데, 단순하고 깔끔해서 나는 자주 가는 곳인데, 조부장은 처음 간단다. 들깨를 듬뿍 넣더니, 고지혈이 있는 자기는 들깨가 좋다더란다고, 만족해했다. 차를 마시러 신륵사 관광지 경내로 들어섰다. 가는 도중에 서울장이 보였다. 아직 공사중이다.

  “부장님, 내가 여기 안전관리자라고 하던데, 한번 같이 들러 보실래요? 아마도 부장님에게도 배울 것이 많을 겁니다. 공사가 다 된 것 말고, 공사 중에 있는 것을 보면, 공사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아마 다른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래요? 갑시다.”

아직 천장에 전선이 매달려 있고, 텍스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천장이 훤히 드러나 있다.

  “전선관을 금속관을 썼네요. 이건 아주 잘 하는 일입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요.”

  “전선관에서 전등까지도 금속주름관을 썼네요. 내가 관리하는 군부대 숙소에도 이렇게 하더라고요.”

  “소방관련 전기선도 모두 금속관을 썼습니다. 좋아요. 소방전기도 전기니까요.”


  전기 판넬에 나사를 박던 인부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지 나간다. 그 사이 우리는 판넬에 손전등을 비추면서 살폈다.

  “부장님, 여길 보세요. 우선 제 눈의 띄는 것부터 지적을 해 볼게요. 인입선에서 여기 주 판넬로 오는 1차 전선이 절연테이프로 동여 진 것이 보이네요. 이게 뭐겠어요.”

  “뭔가 손상이 갔다는 말이구먼.”

  “그렇지요. 전선을 중고로 썼어요. 새 걸로 써야 해요. 겉에 절연물이든, 안에 전선이든 손상이 된 걸 쓰면 안 됩니다.”

판넬 상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절연테이프로 감은 부분을 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듯하다.


  보이지도 않는 판넬의 위를 손전등으로 비춰보더니, 계속한다. 

  “벽에 묻힌 전선관을 보세요. 기존에 쓰던 전기에서 많은 승압을 했는가 봐요. R, S, T, N선으로 네 선이 왔는데, 전선관이 가득 찼어요. 이걸 어떻게 밀어 넣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전선관은 최소한 절반은 비워 둬야 해요. 전선에서 열이 나는데, 전선관 안에서 열이 축적이 됩니다. 이걸 어떻게 해소할지 모르겠어요. 이것부터가 불합격입니다. 내가 감리를 한다면 단단히 싸우는 수밖에 없어요. 이걸 공사로 했다니, 참 한심합니다. 완전히 딸딸이 공사에요.”  

  “딸딸이 공사? 그게 뭡니까?”

  “동네 마실 가듯이 딸딸이, 그러니까 슬리퍼 딸딸 끌고 와서 공사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요? 야매라는 말 보다 떠 싼 느낌이 드는구먼.”


  아래로 내려오면서 전선을 살핀다.

  “전기선 굵기는 아시지요? MCCB(Molded Case Circuit Breaker, 배선용 차단기)는 20A(Ampere)는 4SQ(Square), 30A는 6SQ, 50A는 10SQ, 75A는 16SQ, 100A는 25SQ이고, 전류량에 비해 전선이 굵으면 굵을수록 좋습니다. 전선은 잘 썼네요. 2022년에 내선규정이 바꿨어요. 바뀐 규정대로 잘 썼어요. 관급공사는 이래야 해요.”

  “그래요? 잘 했네요.”

  “부장님, 그런데 여길 보세요.”

전선을 배선용 차단기에 연결하는 터미널을 접촉부위의 절연카버를 벗겨낸다.

  “터미널 연결 상태가 아주 안 좋아요. 여길 보세요. 압착단자가 제 규격도 아니에요. 딱 맞는 걸 끼우려면 시간도 더 걸리고 품이 드니까, 작업하기 쉬운 대로 한 치수 큰 걸  쉽게 끼우고는 꾹꾹 눌러 놨어요. 거기다가 배를 눌러야 하는데, 등을 눌렀어요. 배에 용접부위가 터졌어요. 여길 보세요. 작업 상태가 엉망이에요.”

  “그러네. 배에 용접이 갈라졌네. 하기야 등을 찍는 것이 배를 찍은 것보다 더 쉬워요. 일일이 배를 찍으려면 작업 속도가 느리니까, 누가 보랴 싶어서 등을 찍고는 절연피로 덮어 버렸네. 이걸 전문가가 와서 일일이 열어 봐야 알지 누가 알겠냐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부장님, 여길 보세요. 또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걸 보여 드릴게요. 이 작업자가 그러면 안 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가장 위에 있어서 벗겨보기 좋은 접지단자에 연결한 터미널은 제 규격에 맞는 걸 썼어요. 그런데 그 밑에 Sub MCCB에 연결하는 단자는 한 치수 더 큰 걸 썼어요. 전기설비규정에는 뭐라고 한지 아세요? ‘완전하게 접속해야 한다’고 아주 규정에 나와 있어요. 더 큰 규격의 접속단자를 물려서 틈이 이렇게 벌어졌는데, 이게 완전한 접속이에요? 내가 이런 걸 볼 때 마다 아주 미쳐버려요.”

  “다 그런데? 이 판넬에 터미널은 다 그래요.”

  “다른 판넬은 뭐 다르겠어요? 여기 공사한 모든 판넬이 다 그렇겠지요.”


  2층은 숙박시설인 모양이다. 원룸에 화장실이 하나씩 달려 있다. 출입문 안에 분전반을 열었다. 

  “부장님, 여기를 잘 봐야 해요. 화장실에서 쓰는 누전차단기(ELCB)는 감도전류가 15mA 짜리로, 0.03초 이내에 반응하는 걸로 끼워야 해요. 사람이 젖은 손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잖아요. 만일의 감전에 대비해서 감도를 민감하게 한 거예요.”

  “아, 누전차단기 15mA는 하나씩 있네요. 여기 있어요.”

  “그런데 여기 문제점이 또 하나 있네요. 각실 메인차단기가 30A 짜리인데, 1차에 오는 전선은 6SQ로 맞게 왔어요. 그런데 2차의 전선은 그렇게 굵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10SQ를 썼어요. 수도관이 앞에는 가는데, 뒤에는 굵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과 똑같아요. 이런 규격품으로 터미널까지 아주 달린 것이 시중에 나와 있는데, 그걸 그냥 사다가 썼어요.”


  옥상으로 올라갔다. 주변 건물의 높이가 고만고만하다. 서쪽으로 주차장이 있고 반대쪽으로는 관광지의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건너뛰어도 될 만큼 가까이 있다.

  “부장님, 여기서 문제점을 찾아보세요.”

  “여기, 인입선을 여기다 연결할 모양이네. 케이블 둥치가 있네. 아직 연결을 안 했어요.”

  “그건 연결 공사를 아직 안 한 것이고, 이미 공사가 끝났어야할 피뢰침이 없어요. 피뢰침은 보호각이 60˚입니다. 저 옆 건물에는 피뢰침이 있는데, 저건 그 건물의 끝부분까지 각도 계산을 해서 세운 거예요. 저걸로 이 건물까지 낙뢰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단독으로 세워야지요.”

  “그러네. 없네.”

  “더군다나 이 건물은 관공서가 관리하는 건물이잖아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워야 마땅하지요. 개인이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돈을 아끼려고 세우지 않는다고 처요. 관공서는 아니잖아요. 국민의 세금으로 세우는 것인데, 왜 안 하냐고요. 아마도 설계에는 들어 있을지도 몰라요, 이게 설계에 빠진다면 기술사가 문제인 거고요. 아마도 그런 기술사를 관급공사에서 고용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시공단계에서 빠진 거지요.”
 나는 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마도 내 직업병인 것 같다. 내가 관리하는 시설에서도 문제점만 보이면 사진을 찍는다. 컴퓨터에도 저장을 해 놓아야 한다. 언제 어떻게 다시 꺼내 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러보고  근처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사서 마시려고 야외 탁자에 앉았다. 조부장이 또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열변을 토한다.

  “저 공사에 감리가 누군지는 몰라도, 한 번도 안 나와 본 것이 틀림없어요. 참, 5,000만원  미만의 공사는 안전관리자가 자동으로 감리가 되요. 그런데 사장이 내가 안전관리를 맡을 거라고는 했는데, 감리를 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요. 저게 5,000만원 이상의 공사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날 보고 감리라고는 안 하지요.”

  “그래요? 우리가 감리도 해요?”

  “아까도 말 했잖아요. 5천만원 이하의 공사는 우리가 자동으로 감리에요. 감리가 정말로 중요해요. 잘못 된 공사는 지적을 해야 하잖아요. 시공업자는 목표가 뭐예요. 공사하고 돈 받는 거잖아요. 돈을 아끼기 위해서 공사를 제대로 안 해요. 아까도 보셨잖아요. 터미널 끼운 거, 전선 엉터리로 끼운 거, 피뢰침 설치 안 한 거, 이걸 모두 감리가 지적을 해서, 제대로 공사를 하라고 해야 해요.

  “그런데 감리는 임시감리라는 것이 없어요. 언제나 상시감리에요. 공사장에 아주 상주해야 해요. 한번 왔다가 가는 일이 아니에요. 설계도부터 감리해서, 공사시작부터 끝까지 남아서 꼼꼼히 살펴야 해요. 사용전검사를 받을 때 감리의 싸인이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건물을 사용할 수가 있어요. 아주 중요한 게 감리인데, 이 건물 보세요, 감리가 지적한 흔적이 없잖아요. 누가 감리인지는 모르지만 관급 공사를 이렇게 하면 나중에라도 책임을 져야 해요. 질 겁니다.”

조부장은 애꿎은 것이 담배다. 나는 배 뿜은 담배연기를 피해 바람을 등지고 앉았다. 마치 조부장이 열변을 토해도 소용없다는 듯이 담배연기가 뒤로 사라진다. 


  투덜거리는 조부장에게 맞장구를 치느라고 내가 또 열을 올렸다. 

  “맞아요. 우리나라가 엉망인 것이 아직 어느 구석이든지 감리가 제대로 안 돼요. 세월호도 일본에서 폐기한 배를 사 와서 증축을 했는데, 증축과정에서 감리가 한번이라도 제 역할을 했더라면 그런 배를 바다에 띄워 타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LH에서 순살 아파트를 지었는데, 감리가 설계도를 가져다가 공사장에서 철근을 대조를 해 봤다면 그렇게는 안 됐을 겁니다. LH퇴직자에게 감리를 주고는, 감리는 돈만 받아먹고 나가보지도 않았어요.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다지만, 아직 정치적인 민주화만 조금 됐지, 경제민주화나 문화적 민주화를 아직 멀었어요. 정치민주화도 그래서 아주 취약해요. 언제든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어요. 경제민주화와 문화적민주화가 뒷받침이 된다면 정치적민주화가 퇴행하려고 해도 서로 견인해서 퇴행하지 않도록 사회적 기반이 되지요.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감리가 재 역할을 해야 경제적민주화가 실현 되지요. 어디에선가 감리는 정해져 있고, 그 감리의 비용은 지불이 될 텐데, 현장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어딘가에서 검은 돈이 흐르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경제적으로 아직 후진국입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감리가 정해 졌으면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기의 역할은 다 해야지, 왜 안 나와요? 시스템 한 구석이 무너졌어요. 아직도 세월호가 침몰했던 그 때의 그 시스템이에요. 이태원 사고의 그 시스템 그대로에요. 이걸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맞아요. 관급 공사가 그런데 일반 개인의 공사는 오죽하겠어요.”

둘이 앉아서, 죽이 잘 맞는다. 


  “보세요. 옛날에는 물동이를 나무판자를 대서 물을 길었어요. 그 나무판자의 길이가 똑같아야 그 높이만큼 물을 담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짧다고 생각을 해 봐요. 짧은 높이만큼 밖에 물을 담을 수가 없어요. 정치적 민주화는 높아졌어요. 경제적 민주화는 짧아요. 문화적 민주화 즉 정신적 민주화는 바닥이에요. 국민들의 인식은 전근대적이에요. 그러면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됐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부장님, 여기에 만약 내가 감리였다면 다 뒤집어 놨을 거예요. 난 이런 꼴 못 봐요. 관급공사는 개인 사업하고는 달라요. 이 건물이 존재하는 한 내가 사인한 것이 남아 있어요. 10년이든 20년이든 후에 화재가 나면 감리부터 서류를 싹 다 뒤져요. 그래서 무서운 거예요. 관급공사가 돈 잘 나오고 깎지 않고 지저분하게 구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고 하지만, 서류가 영원히 가니까 무섭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둘이 앉아 쓴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한국 정치도 한판 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내가 오늘 다니면서 점검한 기록표를 파일에 정리하고, 자동차의 운행기록을 적고, 내일 일정을 미리 팀장에게 보고를 한다. 한참 각자 정리하고 있는데, 대표가 조부장을 찾아온다.

  “조부장님, 내일 서울장에 시공업자를 만나세요. 이제 사용전검사를 받아야 한데요.”

  “내가 왜요?”

  “조부장님이 거기 감리에요. 거기 전기공사비가 1,000원짜리라서 안전관리자가 자동감리가 돼요.”

  “그건 맞는데, 그게 나라고요?”

  “예, 내일 서울장에서 시공업자를 만나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하고 오세요.”     

조부장이 나를 쳐다본다.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겠는지, 어리둥절한 눈치다.


  6시가 되어서 각자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은 했다. 중간쯤 왔을 때다. 조부장의 전화가 왔다. 

  “부장님, 나 내일부로 그만 둘지도 몰라요. 내일 출근을 하면 제가 없을지도 몰라요.”

  “왜요? 부장님이 없으면 난 어떡하라고요?”

  “아까 서울장에 감리가 나라는 말 같이 들으셨지요? 내가 그걸 감리를 한다면 큰 싸움 나요. 싸움이 나면 난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아요. 끝까지 가요. 제가 군무원을 했다고 했잖아요. 모르면 몰라서 어설프게 싸인을 하고 넘어갈지 몰라도, 아는 한 거기에 싸인을 하고는 제 양심상 견디지를 못해요. 전기기술인의 양심으로는 거기에 싸인 못해요. 그래서 지금 대표에게 그 이야기를 할 텐데, 대표가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는 그만 둘 거예요. 먼저 부장님에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 그러네. 아까 낮에 서울장에서 보고 이야기 한 것이 아직도 펄펄 살아있고, 아직 떨어져 고물도 묻지 않았네. 내 마음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걸 모두 못보고 말 안한 걸로 치고 싸인하고 넘어갈 수는 없네. 나도 이해해요. 알았어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또 조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10분, 15분 사이다. 

  “부장님, 금방 대표와 전화로 이야기를 했는데, 나에게서 넘긴데요. 전기 30년 일하고, 공무원까지 7년을 했는데, 양심상 못 하겠다고 했어요. 더욱이 아까 낮에 김부장님과 함께 다니면서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전기교육 차원에서 말이에요, 잘 못된 지점을 찾아내고, 감리의 중요성도 이야기를 해 줬는데, 내가 거기에 싸인을 하면 부끄러워서 부장님 얼굴을 어떻게 보고 살겠냐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두 말 않고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잘 됐네요.”

  “그런데 걱정이 하나 더 늘었어요. 만일 다른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에게 서울장을 맡기면 별 문제가 아닌데, 만에 하나 부장님에게 하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에요.”

  “그러면 나도 똑같지. 나도 부장님에게 들은 게 없어서 몰랐으면 혹시 싸인을 할 수는 있어도, 낮에 다 보고, 다 듣고, 다 알았는데, 나는 거기에 싸인을 할 수 있겠어요? 설마 나보고 하라고 하겠어요? 날 물로 보지 않는 한 그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나도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튿날 아침이다. 어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평소보다 출근이 좀 늦다 싶었는데, 조부장이 대표를 먼저 만나고 오는 길이란다.

  “부장님, 큰일 났어요. 서울장을 부장님에게 인수인계하래요, 대표가. 그 분도 어제 나하고 같이 있어서 다 알고 있다고, 그 분도 할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 했는데도, 사장이 그러란다고 통보하고 파일을 주래요. 어떡할까요?”

  “당연하지. 나도 못하지. 이제는 내가 나가야지. 파일 이리 줘요. 내가 못 한다고 사장에게 말 할게.”

파일을 넘겨받고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 뒤에 있단다. 파일을 들고 찾아 갔다.


  “대표님, 조부장에게서 연락 받았습니다. 서울장을 날 보고 감리를 하고, 안전관리를 하라고요?”

  “예, 하세요. 내가 인수인계하라고 했어요.”

  “나도 어제 조부장에게서 이야기 다 듣고, 보고, 문제점을 알았는데, 문제없다고 싸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는 싸인 못 하겠는데요.”

  “부장님이 보는 대로 하세요. 잘 못 된 것이 있으면 그대로 적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시공업자에게 지금 전화할 테니까, 서로 통화하는 것을 듣고, 고대로 하세요.”

대표가 시공업자에게 전화를 걸고, 스피커폰으로 나도 들을 수 있게 소리를 키웠다.

  “사장님, 지에스전기입니다. 우리 안전관리자를 정했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세요. 아셨지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통화 하겠습니다.”

저 너머에서 시공업자가 대답한다. 내게도 시공업자의 전화번호를 준다. 이 분을 만나 보란다.

  “부장님, 이건 관급공사니까 걱정 안 해요. 나는 그걸 그냥 공무원에게 주면 그만이에요. 공사를 되물리는 건 공무원이 할 일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적어 오세요. 그러면 돼요.” 


  그로부터 20일이 지났다. 시공업자는 만날 날짜를 미룬다. 난 그 사이 11월 점검을 했다. 점검도 이제는 ‘정기점검기록표’가 아니다. ‘감리점검기록표’다. 11월이 다 가기 전에 시공업자는 만나지 못했어도 점검을 해야 시에서 전기안전점검비를 탈 수 있다니까, 점검을 했다. 월 마지막 날이다. 감리점검기록표에는 이렇게 적었다.


   “1. 전압전류 측정 점검. 정상.(임시전기).

  2. 감리점검결과

     ① 판넬의 압착단자의 규격이 맞지 않음.

     ② 피뢰침이 설치되지 않음.“


그리고는 상부 표에 기록된 점검사항에 공사가 되지 않은 지점에 ‘부적합’하다고 ‘X’를 쳤다. 6가지다.    


  한번은 퇴근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그날 점검한 파일을 정리하는데, 서울장의 파일이 완전히 꽂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뭐,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넘어갔다. 일 주일, 이 주일, 시공업자가 만나기를 미루는 것을 보고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날 피하고 있구나.”

  “대표와 시공업자가 뭔가 내통하는 건 아닌가? 내가 점검한 파일을 뒤져보고는, 저렇게 적었다가는 안 될 것 같으니까, 우선 시간을 벌고 보자고 피하는 건 아닌가?”

1,000만 원짜리 공사에 압착단자를 풀 다시 공사를 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와서 피뢰침 공사를 한다는 건 남는 게 없다는 엄살이 나올만하다. 그래서 벌써 몇 주째 약속 날짜를 마루기만 한다. 


  지난 화요일이다. 시공업자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서울장의 콘테이너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공업자가 어제 전기안전공사를 찾아가 사용전검사에 필요한 요건을 적어 왔단다. 맨 아래에 적힌 문구가 내가 할 일이란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자체감리의 감리확인서’

  “감리확인서를 해 주시면 됩니다.”

  “감리확인서요? 우선 내가 감리라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적었어요. 먼저는 이 건물에 피뢰침이 없어요. 그리고 압착단자가 규격에 맞지 않아요. 두 가지가 보이더라고요.”

피뢰침에 관해서는 기술사에게 전화를 해서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달았다. 언덕에 단독이라면 당연히 설치해야하겠지만, 도심 속의 건물로 다른 건물에 인접해 있고,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이라면 피뢰침이 없는 것을 신설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압착단자는 모두 규격에 맞는 것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작업자가 압착단자함을 들고 나갔다.

  “그러면 이제 감리확인서를 써 주시지요?”

  “제가 쓰는 것은 이 전기설비점검기록표 밖에 없습니다. 이걸로도 되겠습니까? 왜냐하면 제가 감리라고는 하지만, 감리에 필요한 설계도를 받은 적도 없고, 감리를 한 번도 한 적도 없어요. 쓸 게 없습니다.”

시공업자가 여기 저기 전화를 한다. 안전공사에다가 하는지, 시청에 하는지, 기술사에게 하는지, 우리 대표에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몇 분을 기다리다가 한마디 하고 나왔다.

  “사장님, 알아보시고, 뭐 확인이 되면 전화 주세요.” 


  그 사이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고, 그 주 토요일에 탄핵안 표결에 투표인 부족으로 탄핵이 되지 않았다. 좀 선진화했다는 정치적민주화도 과거로 단번에 되돌아갔다. 지금 이 시대에 계엄이라고 해도, 놀랍지도 않다. 경제민주화는 본래 그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노동자가 아직도 주인이 되지 못한 상태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적용도 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사업주가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일 하다가 죽어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문화적민주화는 감리가 없는 사업장을 보라. 내가 서울장의 전기시공 감리란다. 공사는 서 너 달을 했는데, 사용전검사를 앞두고 자체감리확인서나 써 주란다. 서울장이 세월호의 3.0 버전이다. 오늘은 국회 앞에 가야겠다. 윤석열 탄핵 2차 표결이 몇 시간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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