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지 아니한 날

모든 게 뜻대로 되소서 라는 말에 감사함을 느낄 때

by ZHTU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다 없었던 것으로 뒤돌리고 싶은 그런 날.

생각해 보면 우리의 존재는 없는 것 같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더 작은 양자 단위로 간다면 쿼크, 그리고 사실상 작은 점도 아닌 빈 공간까지.

빈 공간에서 시작해서 무언가 아등바등 사는 나.

즉, 없었는 데 있다.


그런 날이 있다.

내가 하는 게 너무 허무해서

노력과 열정만으로 부족하여 결과물이 너무 안 좋아 가슴앓이하고 그냥 슬픈 날.

분명 움직이고 있고, 숨 쉬고 있으며, 그리고 글도 적고는 있지만

그 세상 어느 누구도 날 모른다.

있었지만 없으므로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없다.


그저 컴퓨터에 있는 작은 픽셀이란 단위가 모이고 모여,

하나의 비트가 되고 비트가 모여 어떠한 글이 완성되어

아무것도 없었던 백지를 검게 물들이는 그런 작업을 하고 나서

간절히 바란다.

이것만큼은 그대에게 닿기를.




사람은 기분 좋은 날이 있고 기분 나쁜 날이 있다.

내가 힘을 써도 되는 순간이 있고,

힘을 써도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요즘처럼 힘들고 괴로울 땐, 무엇을 해도 결과는 나쁜 결과만 생긴다.

노력을 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결말이고

포기를 하자니 자꾸 머릿속에 그런 기억들만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무엇을 해도 괴롭다.


내가 기분 좋게 산 피자 앞에서 지금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싸움이란 이성보단 감정이라 모두들 멈출 의향이 없다.

그저 분노와 서로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 주고 괴롭힌다.


그리고 이게 내가 달리기 하는 내내 신경이 쓰인다.

근력 운동을 하면서도 한숨만 나오고,

이게 과연 본심일까?

아니 나는 진심이었을까?

의심을 한다.


기분 나쁘게 시작한 러닝,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러닝백에 핸드폰 넣다가 떨어지고,

떨어지는 핸드폰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런 단순한 것조차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가?

이번엔 워밍업이고 뭐고 없다. 그냥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뛰다가 갑자기 열받아서 속도 내고

지쳐도 열받으니 또 뛰고.

원치 않게 인터벌을 했다.




이게 달리기의 매력인가?

아무리 화가 나도

아무리 억울해도

난 사람이기에 체력에 한계가 있다.

첫 1킬로는 미친 듯 달렸지만 가면서 지치기 시작하니 강제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린다.

마치 제풀에 지친 화난 강아지처럼

다시 호흡법을 집중하여 숨을 크게 한번 마시고 한번 내뱉으니 의외로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존재는 때로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는다.

오늘도 나는 달렸고, 적었다.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이 글은 존재하니

고요한 일요일은 이렇게 차분히 끝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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