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찾아 올 그날

그 날을 위해..

by 유혜진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대한민국이 만든 한국어 영화가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감격의 시간 말이다. 나는 곱슬머리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인 영화의 거장들 앞에서 멋들어지게 수상소감을 말했을 때 야릇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 내 가족이, 내 형제가 오랜 싸움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부를 때와 같이 이유모를 쾌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것을 아마도 모국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할까 아니면 밑도 끝도 없는 민족성일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의 욕구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몹시 이기적이기도 한 민족성과 자기중심성 때문이라는.... 조금은 과한 생각으로 오스카를 즐겼던 2019년이었다.

그러나 그 해 그 어떤 순간들보다 나를 가슴 뛰게 한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생충 영화에서 시대의 악역이자 상실의 대명사, 그리고 복수의 화신처럼 등장했고 또 장렬하게 죽은 배우 이정은씨의 수상 소감이었다. 그녀는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을 물어 본 외국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그녀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당시 SNS에서 화두가 되곤 하였다. 그녀는 무명 시절이 꽤 길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부터 영어공부를 꾸준히 해 온 것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영어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그녀에게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위함이었다. 그녀는 그 날, 그 기회를 꿈꾸며 그 날을 위해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언젠가 찾아 올 기회’ 라는 대목에서 뭉클함이 목에 걸려 잘 삼켜지지 않았다. 그리곤 잠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회를 꿈꾸며 사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언젠가’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그런 희망고문은 고달픈 것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 끝에 나는 결국 ‘언젠가’보다 그 이후, 그 다음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찾아 올 기회를 꿈만 꾸며 이정은씨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오스카를 수상하고 인터뷰를 그렇게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그 날을 그리며 실제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저 이상과 꿈으로만 끝났을 것이다. 꿈만 꾼다면 그것은 그저 무지개와 같은 허상을 잡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러나 그 기회를 그리며 그 날을 위해 실제 준비를 하는 것은 다르다. 그 꿈은 허상이 아니다. 그 꿈은 실제다. 혹여 실패하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꿈을 꾸며 걸어가는 동안 이미 이루어가는 것이다. 사과라는 열매를 직접 따서 먹고 싶은 사람은 사과 씨앗을 심어야 하듯이, 또 그렇게 심고 가꾸고 열매맺어가는 과정에서 이미 배우고 이룬 것들이 많듯이 말이다. 그렇게 애쓰는 시간들은 결코 버릴 것이 없다.

사는 동안 기회의 장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날을 위해 준비한 사람이다. 언젠가 찾아올 기회, 할리우드 진출할 날을 꿈꾸며 오래 전부터 영어를 공부했던 이정은 배우처럼 우리는 우리 분야에서 꿈을 꿀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다. 날려버리지 않을 꿈을 이루려면 결국 그것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자신을 위한 보물이라고. 오늘 또 하나의 보물을 캐내어보자. 그 모든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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