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두려움은 희망을 삼켜버린다. 때로 두려움이 커지게 되면 어떤 일을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본래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이다. 대체적으로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다. 세 가지 두려움을 모두 합쳐놓은 것이 죽음으로 인한 상실일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상실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큰 슬픔을 안겨준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는 상실을 겪으신 분들이 많다. 자녀를 죽음으로 잃고, 또는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나서 그 슬픔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우울감이 깊어져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다. 충격과 슬픔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갖게 되기도 하고, 비탄에 잠겨 헤어 나오기 어려운 아픔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있는 분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가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상실의 아픔은 또 다른 두려움을 가져온다. 이별 자체만으로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전 어머니께서 사주신 카세트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카세트는 어머니의 수고와 땀이 들어있는 그 당시 내겐 너무도 귀한 선물이었고 보물이었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학예회 연습을 하였던 날. 하교 후 교실에 가방을 두었는데 누군가 가방에서 카세트를 훔쳐간 것이었다. 끝끝내 카세트는 찾지 못하고 며칠 밤을 속상해하며 그 때 그 연습 시간으로 나는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돌아갔다. 어머니께 미안함이 컸다. 남는 건 후회와 안타까움 뿐이었다. 그 때의 상실감은 훔쳐간 도둑을 향한 화난 감정보다 더 깊고 슬펐다. 소중한 보물을 잃었던 것이기에... 그 때의 소녀 나에게도 상실 이후 애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암투병을 하던 젊은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낸 뒤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유가족과 상담을 하였다. 그는 남은 세월을 홀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홀로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내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아프고 그렇게 떠난 뒤 슬픔이 가시질 않았다. 그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외로움과 슬픔으로 울 수밖에 없는 그의 곁에 묵묵히 있어주는 것. 어떤 기념일이 되면 그의 아내에 대해 추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들어주는 것. 때로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 느껴질 때면 작게라도 그 필요를 채워주는 것. 그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애도 시간에 이렇게 동반하는 것만큼 가장 절실하고 적절한 것은 없었을 터이다. 그저 함께 나란히 걷는 것. 슬픔의 골짜기 무수히 많은 눈물을 함께 흘리는 것. 그것 말이다.
나는 오늘도 두려움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분들과 만난다. 두려움의 심연에는 타인이 알 수 없는 고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히 자신만의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 두려움 앞에서 아주 조금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내딛는다면 우리에게 빛나는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던 내 안에 날개, 그 날개로 새롭게 비상하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허우적대는 누군가를 구해내는 구원의 날개로 승화한다. 아름답고 경이롭다. 상실하였으나 채우는 자, 넘어졌으나 일으켜 세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고자 다짐의 글을 적어본다.
두려움의 낭떠러지 앞에 함께 서 있는 자.
슬픔의 공간에서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자.
꺼이꺼이 함께 우는 자.
외로운 광야 길에 동행하는 자.
그렇게 함께 빛나는 날개로 날아오르는 자.
그건 두려움을 이겨낸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