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것이 당연해요

그러니 슬프면 슬픈대로..

by 유혜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앞서 떠나보낸 분이 있었다.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꽃보다 아깝고 이쁜 아들이었다. 그 사고는 이런 식으로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하늘이 원망스럽고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다.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은 아들,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많은 아들, 아직 받을 사랑도 많고 아직 이루고픈 것들도 많은 아들이었다. 쪼그맣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그것도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늘나라로.

가슴에 묻을 수 있을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도 같이 따라가면 안 되는 것일까. 이대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작고 작은 아들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운.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은 그러나 모든 것이 그대로인 세상.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이런 세상은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과 같았다. 그리고 주변인들의 위로는 한결같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살 수 없는데 어찌 살라는 말인가.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닌데 어찌 살라는 말인가. 이 엄마는 처음엔 분노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온 몸이 얼어붙었다.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쓰러졌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아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가슴 어디에도 묻을 수 없는 너무도 깊은 슬픔이다. 더군다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렇게 떠난 상실은 충격을 안겨준다. 삶과 마음이 얼어버리고 만다. 슬픈데 슬퍼할 수조차 없게 만든다. 그렇게 쓰러지고 기절하기를 몇 번...일어나면 현실에는 내 자식이 없다. 저만큼 사라져가는 내 아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을까. 이런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수십 번도 넘게 죽이고 또 죽인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상실과 슬픔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자식을 보낸 엄마도 그렇고, 부모를 보낸 자녀도 그렇고, 배우자를 잃은 경우도 그렇다. 모든 소중한 대상을 잃은 경우 다 그렇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 받아들인 후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슬픈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울고 싶을 땐 울어도 괜찮다. 내 가슴 멍든 자국을 다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상실을 여전히 우리에게 큰 생채기를 남기지만 슬픔의 눈물은 흘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슬픔을 다 토해내고 토해내어 내 속에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을 만큼 그렇게.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는 매일을 슬퍼한다. 슬픈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었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지극히 당연한 슬픔이라고. 아이생각이 나면 나는 대로.. 아이가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울어도 된다고 말이다. 내 그리움이 별이 되어 아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수천 번 수백 번 그리워할 것이다. 내 눈물이 빛이 되어 아이를 비출 수 있다면 내 장부를 쥐어짜서라도 눈물을 낼 것이다. 내 슬픔이 지나가 이 터널 끝에 가닿게 되면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슬픔의 끝자락에 슬픔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희미한 소망, 슬픔 이상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것이 내 고개를 들게 한다.

기쁨이 아니어도 괜찮다. 비록 환하게 웃어주는 아들이 없다고 할지라도 받아들일 힘이 깊은 샘에서 작은 샘물이 퐁퐁퐁 솟아나듯 우리 마음에서 조금씩 솟아오를 것을 믿는다. 당연한 것의 힘을 믿어본다. 당연한 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위로다. 슬픈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위로를, 그리고 그 당연한 인생의 여정과 슬픔의 터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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