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인데 언니 같은 사람이 있다. 후배인데 한 참 선배인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아이인데 어른인 것 같은 아동도 있다. 그런 이들을 보면 나는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왠지 짠한 마음이 든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언제나 아팠던 모습으로 내 곁에서 돌봄을 필요로 했다.
내가 예닐곱 살 때, 어머니가 아프셔서 내가 직접 밥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가마솥에 밥을 해서 먹었는데, 나는 그 가마솥에 쌀을 한가득 붓고는, 고사리 같고 꼬막 같은 손으로 아궁이 불을 지펴가며 어머니를 위해 밥을 해서 상을 차려냈다. 그것은 나의 소중한 첫기억이다.
어머니는 그런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오고가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효녀 장금이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입이 닳도록 자랑하기를 수십 번. 이러한 나의 첫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여서 내 삶의 원형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현상?중 하나가 나는 아직 아이였는데 언제나 엄마를 돌보는 자로, 또 속이 꽉 찬 아이어른으로 자라게 되었다. 자라면서도 줄곧 그런 칭찬과 인정은 나를 더욱 철 든 사람으로 강화시켰다. 착한아이 콤플렉스. 어머니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는 착한 아이로 성장하였다. 일찍 철이 들고, 일찍 나이가 들어버린 애늙은이로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속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왜 저리 속이 없지?’ 라며 나도 모르게 비판하였다. 내 왜곡된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매정한 비판자요 재판장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는 채 말이다.
그런 내게 심리적 부작용이 찾아왔다. 내 안에 있는 기본 욕구들마저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 발달단계에서 응당 가지고 싶던 것들, 그것을 표현하는 일들, 울고 싶을 때 우는 것들, 또 때로 웃는 것마저 나는 자연스럽게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마치 깎이고 깎여 몇 번이고 공장에서 만들어낸 설탕이나 밀가루처럼.. 나는 몹시도 정제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꾹 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말해야 되는 것들도 말하지 못하게 되고, 표현해야 할 감정들도 표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창살 없는 감옥에 나를 점점 가두게 되었다. 그런 자신을 속이 꽉 찬 사람, 소위 성숙한 사람인양 살아왔다. 철이든 사람의 가면을 쓰고, 속이 꽉 찬 사람의 가면을 쓰고 진짜 나를 외면한 채로 수십년을 보냈다. 그런 세월의 장점도 있었다. 모든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좋은 점도 고마운 점도 있었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가 많이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친구는 생각이 참으로 깊은 아이여서 자신의 마음과 고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힘들지만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친구는 충분히 아파했었다. 나는 이토록 아픈 친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돌보는 것에 특화된 사람 아니던가. 또한 나름 의리도 있고, 내 마음을 다해 친구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당시엔 휴대폰도 없고 편지로 소통하던 때였기에, 나는 친구에게 매번 사랑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써주었다. 그리고 친구네 집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친구가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퉁퉁 부은 얼굴로 대문을 나오면 아무 말 없이 친구 곁에 그저 있어주었다. 별이 질 때까지.. 달빛이 흐릿해질 때까지 친구 곁에 나는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 때 나는 ‘친구야 네 곁에 있을께. 너의 힘들고 아픈 마음 나눠주어도 괜찮아’ 라고 마음으로 이야기하였다. 나의 진심이었다. 나의 우정이었다. 나의 사랑이었다.
그 친구가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혜진아.. 너도 힘들잖아. 저도 아프잖아. 너도 위로가 필요하잖아” 아팠던 어머니 곁에 머물렀던 내게, 살아오는 내내 아픈 것도 꾹 참던 내게, 슬픔도 고통도 표현할 줄 모르고 살았던 내게 이토록 날카로운 위로가 있을까. 비수처럼 바늘처럼 내 마음에 꽂힌 친구의 말이었다.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풍선같은 내 마음이었는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위태로운 마음이었는데 친구가 바늘로 살짝 구멍을 내준 것 같았다. 슬슬 바람이 빠졌다. 쪼글쪼글해졌다. 그런데 가볍고 자유로웠다. 친구가 고마웠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무언가를 해주고 돌보는 일을 한다고 그 곁에 있지만, 그 곁에서 따듯함을 입게 되는 사람은 결국 나였다. 친구 곁에 있어야지 했던 사람은 나였지만 그 곁에서 사랑을 입은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속없이 철없이 웃을 수 있고,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이 그 따스한 돌봄이 돌고 돌아 내게로 온다는 것을 안다. 봄바람처럼 그에게서 돌아서 내게로 온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우리는 순환이라고 한다. 따뜻한 사랑의 순환. 매일 따스한 순환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기를.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고, 또 그 위로가 돌아돌아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