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엄마를 놔줘

by 유혜진

몇 달전 엄마를 천국으로 떠나보낸 이가 있었다. 내가 아끼는 후배이자 동료였던 그이는 엄마를 보내기 전부터 나를 찾아오곤 했었다. 나와 주로 나누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알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이야기로 한참을 울다가 가곤 하였다.

그이의 엄마는 오래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재활치료를 받고 계셨다. 거동은 할 수 있었지만, 활동이나 일은 하기 어려워 주간보호시설을 다니셨다. 엄마의 곁에는 아버지와 두 딸이 있었다. 아침에 주간보호시설로 아버지가 모시고가면 엄마는 종일 그 곳에서 지내시다가 다섯시쯤 집에 돌아오셨다. 엄마는 아이처럼 가족들의 돌봄과 보살핌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셨다.

그런데 몇 달 전, 그이의 엄마께서 자꾸 아프다고 하셨단다. 딸은 엄마가 충치가 있어서 아프신가 하여 치과치료를 받아야하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 고통이 암이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하였다. 그이의 엄마는 구강암이었다. 그것도 치료가 어려운 말기였다. 암이라니... 암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였다. 가족들은 모두 항암치료나 수술 등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그이는 엄마를 보내야만 했다. 엄마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보냈던 후배는 병실 엄마의 침대에서 마지막 온기로 엄마를 꼬옥 안아주었다고 했다. "엄마, 내가 엄마 잘 돌봐줄께. 걱정하지 말아요"라며 엄마의 마지막 숨결까지 함께 하였다.

후배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였다. 곁에서 오랜 시간 보면서 그이와 나는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나 엄마에 대한 슬픔의 모양도 비슷하였다. 후배에게 엄마란 어쩌면 한동안은 그의 전부였고, 희망이자 소망이기도 했고 아픔 중 아픔이었다. 해결할 수 없는 삶의 짐이자 십자가이기도 했다. 벗어나고 싶은 인생의 굴레였다가 안쓰러운 청춘이자, 영광의 깃발과도 같았다. 나에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떠나고 난 뒤 후배는 또 날 찾아왔다. "그래도 엄마를 잘 보냈어요.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고요. 다행이고 감사가 되어요.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어요.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도 했어요.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덤덤하게 말하는 후배의 눈이 울고 있었다. 가득가득 눈물이 곧 땅으로 쏟아질것만 같았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거니까.. 그 땐 건강한 엄마를 볼 수 있겠지요?" 나는 말없이 후배를 지그시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물었다. "천국에서 엄마 만나면 무슨 말 하고 싶어?" "..........흑흑"

"엄마.. 나도 돌봄을 받고 싶었어.. 나도 엄마가 필요했어" 라고 말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헉....흑흑... 맞아요.. 그게 맞아요. 나도 돌봄을 받고 싶었는데, 내내 그랬는데...그럴 수가 없었어요" 후배의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었던 숨겨두었던 자신의 진짜 마음이었다. 엄마에게 그저 딸이고픈 사랑도 받고 챙김도 받고싶었던 딸의 눈물을 어느 누가 알까. 자나깨나 엄마 걱정에 자신을 잘 돌보지도 못하며 그저 열심히 살아왔던 순하디 순한 딸의 인생을 누가 알아줄까. 그 때 처음으로 후배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마치 가장 약한 부분을 누가 건드린 것처럼. 꾹 눌러왔던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지듯이.

화장지를 여러겹으로 얼굴을 닦고 주변을 정리하는 후배에게 나도 꾹 눌러왔던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더했다. 너도 나도 필요했기에. "00야....이젠 엄마를 놔줘.. 엄마를 보내드리자".

내내 할 수 없던 이야기. 그러나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는 우리의 아집이자 이 미련을 보내야 했다. 엄마는 떠났으나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엄마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나 이 세상 모든 곳에, 모든 공간에 존재하였다. 문득 문득 죄책감으로 나의 마음을 휘감았고, 또 어느 날은 그리움으로 하늘만 보게 만들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난 그렇게 엄마와 함께 숨쉬고 먹고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떠난 엄마는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건 그저 나의 미련이었다. 그저 나의 죄책감이었다. 스스로 내게 벌을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엄마가 슬퍼하는 일이었다.

애도의 긴 터널에서 캄캄한 나로 살고 있을 때 하늘에서 엄마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혜진아...이제 이 엄마를 놔주렴. 나를 보내주렴.. 너의 삶을 사렴..나는 이제 괜찮단다"

"엄마...안돼.. 가지말아요. 나 두고 가지 말아요"

그 때 나는 끝내 엄마를 놓지 못했다. 한 참... 정말 한참을 지난 후에 엄마의 유골함에 있는 곳에 가서 나 혼자만의 의식을 치뤘다. 그리고 그제서야 말할 수 있었다.

"엄마,.. 잘 가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든다. 그러나 놔주어야 할 때가 온다. 그 때 움켜잡았던 그 손을 놓아보내자. 그래 그렇게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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