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때가 있다는 것을...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서 낙방한 청년이 상담실에 찾아왔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하면 이번 시험에는 붙을 줄 알았다. 그런 희망으로 몇 년을 내내 공부만 하였단다.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팬티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런데 나이를 점점 먹고 실패를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지쳤다고 힘이 든다고 한 숨만 내쉬었다. 그만 다 내려놓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가장 컸다. 불효자 중 이런 불효가 있을까.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을 매년마다 절망으로 바꾸어버리는 마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인생의 낙오자같은 몰골로 부모님을 뵐 자신이 없어져갔다. 부모님은 한없이 기다려주셨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의 깊은 한숨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부모님의 깊은 주름을 우물처럼 파놓은 이도 자신이라는 것을.
고향친구들은 제법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은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을 볼수록 자신이 사라져갔다. 친구들과 비교하는 마음은 비참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저 친구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보았다. 아무리 훑어보아도 자신이 가장 못나보였다. 세상 기준이 그랬다. 학벌이 좋아야하고, 직장이 반듯해야 하고, 결혼 대상을 잘 만나야 했다. 자신에게 그 어떤 미래가 있을까. 그 기준에 자신은 언제나 미달. 언제나 대기번호 5번. 그리고 이젠 아무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불’합격의 ‘불’이라는 한자어.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자 리얼리티였다.
자꾸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뿐. 그에게 자신은 실패자일 뿐이었다. 그의 어깨는 한없이 움츠려 있었다. 참으로 가여운 어깨였다. 참으로 가여운 가슴이었다. 볼수록 가여운 등이었다.
성경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이란 왕이 인생의 때에 대해 쭉 나열한 부분이 나온다. 날 때와 죽을 때, 울 때와 웃을 때, 심을 때와 거둘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찾을 때와 잃을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잠잠할 때와 말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에 기한이 있고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하였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그 당시 최강의 국가를 이룬 역대급 지도자였다. 외교면 외교, 재판이면 재판, 그는 현명하고 분별력이 탁월하여 먼 나라에서도 그의 지혜와 위엄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그가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때를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수고로움이고 또는 선물이라고 솔로몬은 이야기한다. 과연 지혜자의 권면이다.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죽을 것 같이 힘든 때가 있다. 그러나 다시 힘을 낼 때도 있다.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의 작고 변변찮은 번데기에서 인고의 시간을 지나 완전한 탈바꿈을 하는 때가 오듯이... 거듭되는 실패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보일지라도 결국 날개를 펴서 날아오르는 때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번데기인줄 알았으나 실은 나비. 그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지혜자가 이야기하지 않는가.
결코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작게 보이는 때는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 때다. 나의 인생을 다른 인생과 비교할 때다. 우리는 실패자인 순간에도 실패자가 아니다. 그저 잔뜩 움츠린 상태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최대한 움츠릴수록 더 멀리 뛸 수 있다. 지금의 때가 지나면 또 다른 때가 올 거라는 것을. 먼지처럼 작아 보이는 지금은 실은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때라는 것을. 다 때가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