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만든 영화캐릭터 중에서 깊은 동질감을 갖게 되는 주인공이 있다.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에는 이유모를 동정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본질적 내면이 어떠한지, 과연 선한 것이 악한 것을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닥터 부르스 배너! 그 안에 사는 또 다른 자아는 헐크다.
영화의 스토리상 헐크에 대한 감정이 다소 연민같은 것이 흐르는 건 사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헐크는 미워할 수 없는 제2의 자아다. 나에게도 살아있는 자아요 세상 누구에게도 내면 깊은 곳에 헐크가 있다. 반대로 배너박사는 좋은 이미지의 지식인이자 세상 순하고 공격적이지 않은 얌전한? 캐릭터다. 그는 말이 없다.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순하디 순한 배너 안에 세상을 다 부숴버리고 싶은 다이나마이트급 공격성을 가진 헐크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헐크도 배너도 같은 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내게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종종 화가 꽉 차있는 분들이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화로 인해 심장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분도 있고, 배가 아리다고 고통스러워하시는 분도 있다. 때로 우울과 함께 찾아 온 분노는 심한 두통을 유발하기도 하고 수면 부족으로 인하여 수면장애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이 분들 가슴에는 다 풀지 못한 응어리가 있다. 화와 분노가 마음의 항아리에 가득 가득 차올라 있는 것을 본다.
‘화’라는 감정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안에 화가 있는 경우라면 조금 면밀히 살펴봐야 할 우리의 정서이다. 언제, 어떤 경우에 또는 어떤 대상에게 화가 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분은 자신이 무시당할 때 화가 난다고도 하고, 어떤 분은 거짓말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난다고도 한다. 어떤 분은 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볼 때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고, 어떤 분은 무책임한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화가 있다고 호소한다.
우리는 이렇게 화가 나는 어떤 시점과 어떤 대상이 이와 같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나는 이런 사람에게 화가 나는 걸까?” “왜 나는 이 시점에서 화가 올라오는 걸까?”
타인에게 화라는 감정을 던져버리게 전에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탐색이라고 한다. ‘자기 탐색’
그러한 자기탐색은 자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기성찰을 가져오게 된다. 깊은 생각과 성찰 끝에 자기의 화, 즉 응어리를 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화가 나는 상황에서 조금씩 화를 다스리고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 안에 헐크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교통사고로 어여쁜 딸을 잃은 부모님은 깊은 우울과 상실에서 헤어나오기 힘이 든다. 하나뿐인 자녀를 잃은 것은 상실보다 깊은 상실이다. 생의 바닥이 있다면, 그 곳이 지옥이라면... 그 곳까지 내려가 불 속을 헤매다 지쳐 쓰러지는 슬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살아낼 수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교통사고 같은 경우에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실과 죽음으로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사고 가해자가 음주를 했거나 어떤 반성과 사과가 없는 경우에는 해결할 수 없는 분노만이 남은 가족들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버린다. 자녀를 잃고 난 이 분노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아픔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삶이 영화라면 배너를 버리고 헐크를 택하고 싶은 순간이다. 조절하고 싶지 않은 우리 안에 화 그리고 그 화가 응축된 응어리를 폭발하고 싶은.. 아니 폭발해도 상관없는 헐크로 살고 싶은 것이다. 내 소중한 존재를 빼앗아간 대상에게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슬픔을 안겨준 대상에게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일 것이다. 벌어진 일을 되돌일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슬픔의 긴 터널을 걸어야 될테니까. 그리고 그 몫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것이므로.
그러나 우리는 배너를 버리고 헐크로만 살 수는 없다. 배너도 헐크도 다 우리의 것이고 우리의 내면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자기를 이해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알아주는 것 아닐까. 타인이 나를 다 알아주지는 못할 것이니 내가 나를 알아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응어리를 알아주고, 나의 화를 알아주고, 그만큼 화가 나 있는 나를 꼭 안아주는 것.
그러므로 화가 날 때 그냥 화라는 감정에 자신을 점철시켜버리지 말고 숨을 깊게 쉰 다음 자기를 들여다보자. 내 안에 헐크와 이야기를 나눠보자.
“알아..너의 마음을. 네가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 알아. 지금 너의 마음을 내게 이야기해줄래.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마음의 항아리마다 가득 들어있는 응어리를 풀어내도록 내 안에서 아우성치는 헐크와 이야기해보자. 폭발하여 누군가를 해치는 공격이 되기 전에 그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