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
나의 생애 첫 기억은 어머니와 함께 한 여섯살의 기억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사람은 저마다 각자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는데 그 사람의 첫 기억을 탐색하는 것이 생활양식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하였다. 나의 첫 기억은 너무도 선명해서 이것이 꿈은 아닌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나의 어머니는 자주 아프셨다. 특히 깨질 것같은 두통을 매일 달고 사셨다. 날마다 뇌신이라는 (그 당시 가루로 된 하얀 종이에 담긴 진통제) 약을 드셨고 그것으로도 두통이 도통 듣질 않아 하얀 천을 둘둘 말아 이마에 꾹 싸매고 계셨다. 나의 기억이 그것이다. 그 장면 속에 어머니는 여전히 머리 이마부터 뒤통수까지 하얀천을 둘둘 말아 매고 계셨고, 그 날따라 유난히 아프셨던지 꼼짝 못하시고 방에 누워계셨다.
여섯 살의 나는 아픈 어머니가 가여웠다. 식사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는 것이 못내 안쓰러웠다. 그래서 이 작은 꼬마는 부엌에 가서 큰 솥에 밥을 지었다. 그 당시 시골 우리 집에는 무쇠솥이 가마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무거워서 들지 못했고 그냥 거기다 쌀을 붓고 물을 쏟았다. 곳간에서 하얀 쌀을 찾았는데 생각해보니 엄청난 양의 밥을 지었던 것 같다. 그리곤 가마 안에 불을 지폈다. 어떻게 불을 켰을까. 그것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불을 지피고 후후 입으로 불어 불을 살려냈던 기억이다. 그 속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로 인해 눈을 비벼가며 검은 눈물 뚝뚝 흘려가며 그렇게 밥을 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가마솥 아래쪽 밥은 다 타고, 위에는 설익고 다만 가운데 부분만 겨우 밥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긁어다가 그릇에 담고 집에 있는 김치와 나물을 꺼내어 상을 차려내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밥 먹어요”
두 발을 힘들게 끌고 나오신 어머니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아이고 내 새끼..시상에 니가 밥을 다 했냐~ 오메오메 꼬막같은 손으로 고사리같은 손으로 니가 밥을 했냐” 어머니의 감동어린 눈물이 꼬마의 어깨를 일으켜 세웠다. 집에 오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어머니는 나의 감동스토리를 들려주셨다. 더불어 나는 여섯 살 효녀 심청이가 되어 동네방네 소문난 딸이 되어있었다. 나의 첫 기억은 이리도 효녀스럽기 그지없다. 가을 날 속이 꽉찬 알밤같이 나는 이미 그 때부터 어머니의 보호자로 어머니를 돌봐야겠다는 신념가운데 내 일생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아픈 어머니를 돌봤던 여섯 살 꼬마는 이후 내내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살았다. 정서적인 독립이 필요했던 순간조차도 또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를 가여워하며 지냈다. 그 인생에는 나의 욕구, 나의 필요, 나의 소망은 없었다. 등에 메고 다닌 가방 맨 아래쪽에 그 모든 걸 넣어두고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요 돌보는 자로 살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생활양식이었다.
좋은 점도 많았다. 그런 나의 인격과 성품은 때로 또는 자주 긍정적 자원이 되어주었다. 세상 착한 아이로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속이 꽉 찬 아이라는 면류관을 쓴 채 살았으니까.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진짜 나이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벗어버리고픈 가면이기도 했다. 어머니 생각하면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어머니의 인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아픔을 헤아려보면 여섯 살 꼬마였던 어머니도 있고, 수줍음 많던 소녀도 있고, 어린 나이에 시집간 처녀도 있다. 그리고 자신도 어찌할 수 없던 삶을 살다간 비운의 여인이 노래를 하고, 술을 팔고, 눈물을 훔치는 그런 인생이었기에.
그러나 요즘 나는 그런 나로 살고 싶어진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런 나로 사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괜찮다고 여긴다. 속이 든 것도 철든 것도 좋지마는.... 속없이 철없이 웃어보고도 싶고, 내 욕구를 이야기해보고도 싶고, 떼를 써보고도 싶다. 다시 여섯 살 그때의 꼬마로 돌아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철 좀 늦게 들어도 돼.. 속없이 지내는 것도 괜찮아. 넌 아직 꼬마니까. 아픈 엄마 돌보는 것도 좋지만 너도 돌봄이 필요한 아이잖어. 그러니 그 때는 그냥 ..마냥,.. 받기만 해도 괜찮아”
실은 내내.. 나의 어머니도 고사리같은 꼬마의 어린 손을 보며 마냥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꼬마가 차려준 밥상이 마냥 자랑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 온 꼬마의 손이 가엽고 또 안쓰러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픈 자신을 원망하고 누워있는 자신을 탓했을 것이다. 어머니도 서글픈 밥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서로 그랬던 것이다. 우린 서로가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고 가엽게 여겨준 너와 나의 보호자로 살았던 것이다. 오늘 밤은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다. 이젠 진짜 밥상을 차려드릴 수 있는데. 이젠 나도 어머니와 마주앉아 맛있게 밥먹을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