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숨을 고르고

by 유혜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이렇게 아픈걸까' 우리는 살아가다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일을 만날 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강력해진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먼 산에 다다랗는데 그 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었을 때도 그렇다. 종이가 물에 젖은 것 마냥 지치고 구겨져서 마음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의미롭고 보람찬 일을 하면서 때에 맞게 승진도 하고 능력 또한 인정을 받던 분이 어느 날 불안장애로 찾아오셨다. 급성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도의 불안한 상태가 되어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초췌한 얼굴로 이렇게 되어버린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평온한 쉼도 조금의 안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분은 점점 야위어가셨다. 나를 보더니 퀭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셨다. 무엇을 잃은 것일까. 무엇이 이토록 불안하게 만든단 말인가.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그래서 어서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이 분의 안위를 방해하고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여전히 불안으로 아프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아픈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 분에겐 진정한 평안이 필요했다. 자신에게 안위를 허락해야 했다. 자신을 온 마음으로 받아주어야 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니 어서 나아야지 라는 마음을 저리 두고 아프니까 좀 쉬어야지로 바꿔보세요" 감기에 걸리면 약도 먹고 푹 쉬듯이, 마음에 감기가 생기면 그에 맞게 약도 먹고 쉼도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고, 몸이 아파도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에게 휴식을 주는 것을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던 20대 청년이 깊은 상실감에 빠져있었다. 여러 어려움은 한꺼번에 그를 벼랑으로 몰고가는 듯 하였다.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것 같다고 하였다. 애써 부여잡고 있는 그가 참으로 가여웠다.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니 극복할 방법이 없었다. "꿈은 무지개같아요" 멀리서만 좋아보였다는 그의 말이 더욱 아프게 들렸다. 몇 주가 지났을까. 그가 다시 찾아왔다. 한결 나아진 얼굴이었다. 그의 마음이 못내 궁금하던 찰나 그가 말문을 열어주었다. "다시...시작해보려고요.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것 같아요"

나는 온 마음다해 그를 응원한다. 진정 그가 그의 소중한 꿈을 이루어가면 좋겠다. 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 다시 숨을 고르고 마음의 힘을 모아보기를 바란다. 있는 힘껏 소리도 내보고, 주먹도 꽉 쥐어보고, 운동화 끈도 다시 메고서 움츠렸던 어깨를 쫙 펴길 바란다. 그의 뒷모습에 박수를 쳐주는 일. 그것뿐인 응원이지만 그의 깊은 숨이 생을 향한 새로운 숨이 되길 바란다. 끝없이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도 바란다. 오늘까지의 숨을 다시 고르고 이제 새로운 숨으로 내일을 살기를. 새생명의 긴 호흡으로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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