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나라가 불편했던 이유, 그리고 내가 다시 발견한 호주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6위,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꿈꾸는 나라, 그리고 ‘기회의 땅’.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말들에 혹해서 나는 호주를 선택했다.
미국, 중국, 유럽 등 지난 10년 동안 내가 살아본 나라만 해도 여섯 곳.
나에게 해외에서 산다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살아보지 않은 대륙이 있었다. 바로 오세아니아, 호주였다.
새로운 땅,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나를 움직이게 했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호주에 간다고 하자 “정말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호주라면 당연히 좋은 나라일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막상 살아보니 호주는 내게 생각보다 잘 맞지 않았다.
아직 두 달밖에 되지 않았고, 원래도 6개월만 있을 계획이었지만 벌써부터 “내가 끝까지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고작 두 달 머물렀을 뿐인데 이렇게 말하는 게 성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것’도 시간을 아끼는 지혜라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걸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오고 싶어 할까?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호주의 매력은 뭘까?
처음엔 좋았다. 구름 하나 없는 파란 하늘, 낯선 이를 향해 먼저 웃어주는 친절한 사람들, 여유롭게 흐르는 공기. 카페에 앉아 있으면 시간마저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늘 중요하게 생각해 온 ‘문화적 자극’이 부족했다.
도심은 작았고, 물가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내가 그동안영감을 받아온 예술과 패션은 파리나 미국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길거리를 걸으며 무심히 시선을 빼앗기던 패셔너블한 사람들의 풍경도, 매주 가도 새로운 전시가 기다리던 미술관도 이곳에는 없었다.
그 시기에 한국에서 친구들이 시드니에 놀러 왔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이라 그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도시가 작네”, “물가가 꽤 비싸네” 같은 이야기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시드니에 대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친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 같다.
그들이 시드니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 건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안하다.
하지만 결국, 재미없었던 여행은 없고, 소중하지 않았던 시간도 없다.
함께한 순간이었기에 의미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안다.
유럽에서는 매주 미술관을 가도 모자랄 만큼 볼 게 많았다.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각자의 개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들이 내 시선을 붙잡었지만 호주에서는 달랐다.
호주만의 브랜드도 뚜렷하지 않았고, 깊이 있는 예술적 분위기도 찾기 조금 어려웠다.
음식, 예술, 패션… 모든 게 어딘가 ‘중간’에 머무른 듯한 인상이었다. 처음엔 답답했다.
왜 이렇게 특별함이 없지? 이 나라의 색깔은 도대체 뭘까?
그러다 조금씩 다른 시선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호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호주의 어떤 점이 좋아서 여기 살고 싶은 거야? 돌아온 대답은 늘 비슷했다.
자유, 그리고 다양성. 맞다. 프랑스에서는 아시아 여성으로서 늘 조금의 이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물론 나는 그 차이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설명하기 힘든 장벽이 있었다.
미국, 중국, 유럽, 어느 나라든 자기만의 강한 색깔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틀 안에서 늘 조금은 ‘외부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호주는 달랐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서일까, 오히려 ‘고유의 문화’라는 게 흐려져 있었다.
처음엔 그게 지루하게 느껴졌었으나 나는 곧 깨달았다.
그 덕분에 누구나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다는 걸. 호주는 자기 색깔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나라였다.
이곳에서는 ‘차이’가 특별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르기에, 오히려 차이가 무색해졌다.
나에게 호주는 여전히 완벽하게 맞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아직도 12월까지 있을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호주를 내 방식대로 품어보려고 한다.
처음엔 낯설고 지겨웠던 이곳이, 지금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파리처럼 예술이 넘치는 곳도, 미국처럼 에너지가 폭발하는 곳도 아니지만, 호주에는 호주만의 조용한 매력이 있었다. 아마 이게, 사람들이 호주를 “살기 좋은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극적인 특별함은 없지만, 누구든 머무를 수 있는 여유와 평온함. 그 평온함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배움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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