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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서른에 다시 학생이 되다

인생에 붙은 역마살, 덕분에 단단해진 나

by 하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한국을 떠나 미국, 스페인, 벨기에, 중국, 스위스까지 홀로 흘러 다니며 살았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진 해외 생활은 늘 낯설고 때로는 외롭기도 했지만, 그 낯섦 속에서 단련된 순간들이 결국은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기초가 되어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온 뒤 4년 동안은 사회생활에 몰두하며 정착하려 애썼다.

외국계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갔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안정감을 내려놓고 다시 짐을 싸기로 했고, 그렇게 편안함 대신 또 한 번 낯선 길을 택했다.


그 길의 시작은 파리였다.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내 자존심을 깎아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힘이 내 안에 있구나”라는 확신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카페 직원과 매일 나누던 인사, 동료들과 함께 배워가던 일, 프랑스인들과의 가벼운 비쥬 같은 작은 순간들이 다시 내 삶을 따뜻하게 채워주었고, 그 속에서 나는 떠남의 진짜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결국 떠난다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용기였던 것이다.


그다음 행선지는 시드니였다. 사실 “이때 아니면 언제 호주를 가보겠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지만 막상 살아보니 호주는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파리와는 완전히 다른 리듬을 가진 곳이었고,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인연들이 내 하루를 지탱해 주었다.

매일 가던 카페의 직원, 함께 일했던 동료들… 결국 삶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그런 작은 관계들 위에서 흘러간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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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낯선 시드니에서 나는 서른을 맞이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던 20대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 역시 또다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단순히 “살아남기”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중이고, 그래서 조금은 더 어렵지만 동시에 훨씬 더 깊은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사주를 보면 늘 이런 얘기를 듣는다.

“너는 역마살이 심하네. 해외에서 살아야 잘 풀릴 팔자야.”

그리고 사람들은 자주 묻곤 한다. “한국이 그렇게 싫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삶은 내게 늘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주었고, 여행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매일 부딪히며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늘 해외살이를 갈구하게 되고, 그 새로움 들을 찾아 나서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돌아보면 모든 경험은 결국 같은 메시지를 건네고 있었다. 삶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결코 혼자 단단해진 게 아니다.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 심지어 매일 마주치던 카페 직원들까지… 작은 마음과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연결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또 다른 나라로 향할 것이다. 파리에서, 시드니에서, 그리고 내년에는 런던에서. 그 여정 속에서 ‘단단 프로젝트’는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경험들이 내 안을 조금씩 더 단단하게 다져줄 것이고, 그래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 떠나는 마음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도 결국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리고 이제, 만 30세. 나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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