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부여에 다녀왔다. 전날 밤엔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떠서 늦게 잠들었었다. 낙화암과 고란사를 찾은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여고시절의 소풍, 결혼 후 두 아들과 함께, 세 번 다녀왔다. 그렇게 세 번을 다녀왔어도 이번처럼 옛날의 추억을 따라 걸은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 고란사에 갔을 때는 어머니가 불교 신자였기에 법당에 들어가 어머니 옆에서 절의 의미도 모른 채 절을 했었다. 이번엔 절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처를 향한 경건한 마음으로 잠시 묵상을 했다. 법당 안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향내와 스님은 옛 스님이 아니지만 독경 소리는 옛날과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뜻 모를 독경이었는데도 고스란히 내 마음을 낮게 가라앉히고 고요하게 했다. 고란사 뒤편에 있는 약수를 마셨다. 그때엔 그곳의 이끼 사이로 고란초가 소복이 자라고 있었다. 잎이 도톰하고 가장 싱싱한 고란초 잎을 하나 따서 책갈피에 넣었었다. 잘 말려 두고두고 보리라 하였는데 고란초 잎은 어느 책엔가 꼭꼭 숨겨져 있고, 약수터에 있던 고란초도 사라지고, 꺾었던 추억만이 되살아 나왔다.
고란사 앞으로 백마강이 흐르고 옆길로 갈라진 길 끝에 선착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고 시절 우리 반 모두는 선착장에 내려가 나룻배를 탔었다. 선착장의 위치는 그대로인데 나룻배대신 모터를 장착한 유람선이 강 위를 미끄러지듯이 떠서 오가고 있었다. 그때엔 사공 두 명이 배의 앞과 뒤쪽에서 긴 장대로 강바닥을 밀며 가는, 백 명도 족히 탈 수 있는 큰 나룻배였다. 우리가 탄 배가 강 중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었다. 우리 반 모두는 배 바닥에 깔았던 돗자리를 두 손으로 높이 들어 소나기를 피했었다. 돗자리 틈으로 빗물이 새었어도 우린 모두 웃으며 즐거워했었다. 그날의 웃는 친구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푸른 물결과 같이 파랗게 피어났다. 그렇게 즐거웠었는데... 같은 배에 탔던 친구 중 몇 명과 나를 가장 아껴 주셨던 선생님께선 우리의 강 저편에 이미 건너가 계실 만큼 세월이 흘렀다.
낙화암에 올랐다. 바위를 돌아가려니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소나무 두 그루가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나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졌다. 난 이곳을 올 때마다 이렇게 어루만지며 소나무와 십여 년의 세월을 넘어 회포를 푼다. 소나무 줄기에 나의 손이 닿을 때면 소나무의 반김인지 나의 설렘 때문인지는 모르나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신비롭고 기쁜 일인지...
젊은 아빠가 아이들에게 낙화암의 유래에 대하여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의 아버지도 우리 형제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셨고, 나도 십여 년 전 두 아들에게 저 모습으로 얘기해 줬었다. 지금의 나와 같은 중년의 또 다른 이가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계기야 어떻든 십여 년마다 부여 낙화암을 찾았었다. 또 다른 십 년 후에 그곳에 들른다면 지금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던 추억이 하나 더 떠오를 것이다. 여전히 고란사 법당에서 독경 소리가 들려올 것이고 약수는 그대로 있어 지나는 이들의 목을 축여줄 것이다. 소나무는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어, 나는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로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눌 것이다. 젊은 아빠와 엄마는 자녀들에게 낙화암의 유래를 이야기해 줄 것이다.
두 발만이 내가 옛날에 밟았던 발자국들과 겹쳐질지도 모를 길을 한발 한발 걸었다. 눈과 마음은 어린 시절과 젊은 날들의 모습으로 시간을 거슬러 다녔다. 난 집에 돌아와 추억의 눈으로 둘러본 낙화암의 감회를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전설처럼 이야기했다. 밤이 이슥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