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

by 한 올

세상과 꿈 사이에 있는 5분, 늘 달콤한 시간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침 7시, 평소처럼 알람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일어나기 싫었다. 알람과 알람 사이의 5분을 나는 몽롱하고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몽환적 세계로 채우곤 했었다. 그 시간이 사라진 지 여러 날이다. 며칠째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알람을 무시하고 부족한 잠에 빠지고 싶은 생각도 접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잠들지 못할 게 뻔해서다. 일생동안 쌓아 놓은 것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그것들이 내 가슴을 조이고 거대한 먹구름이 되어 나를 에워싸고 있다. 일어나야 한다. 검은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어둠이 사라질 출구는 아득해 보이기만 한다. 5분이 지났나 보다. 한 번 더 울리게 세팅된 알람이 요란스럽다. 오른손으로 알람을 끄고 느릿느릿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때 누군가가 왼쪽 눈 뒤에서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갑자기 찾아온 통증은 점점 심해져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왼쪽 눈을 손으로 감싸며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환한 햇살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아 도로 블라인드를 내렸다. 한참을 스트레치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몸살을 여러 번 앓았어도 이런 종류의 통증은 처음이다. 두통도 이렇게 찾아온 적은 없다. 게다가 팔다리가 제 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씻어야 사무실에 나갈 수 있다 검찰 소환 날짜가 나를 옥조이며 다가온다. 그들에게 나는 공격할 수 없고 오직 방어만 할 수 있다. 방어를 못하면 나는 그냥 쓰러지는 것이다. 단순히 스러지는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나를 뒤덮을 치욕을 감내할 수 없다. 작은 오점이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달라붙은 본드 자국처럼 지워버릴 수 없는 오점을 내 생에 남길 수 없다.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아 유죄라는 덧에 걸려들 것 같다. 벗어나려 할수록 나를 더 옭아맬지 모른다. 올가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상황에 처하면 나는 억울함을 죽음으로라도 호소할 작정이다. 얼룩진 오물을 뒤집어쓴 채 산다는 것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님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신문 기사들도 덩달아 나를 유죄라고 낙인찍고 있다. 30여 년 전, 나를 스타처럼 떠받들던 그들이다. 옛 일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게 분명했다. 포토라인에 설 날이 다가온다.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떼 지어 몰려와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해댈 것이며 플래시를 터트릴 것인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사방이 적인 것 같다. 외로운 싸움이 되겠지만 어떻게 하든 무죄임을 증명해야 한다. 동료 변호사들이 최선을 다해 돕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겨우 욕실 문을 열고 샤워부스에 들어갔다. 들어가기는 했는데 몸의 균형을 잡고 서 있기가 어려워 벽에 몸을 기대었다. 가까스로 몸을 숙여 수도꼭지 레버를 올렸다. 높이 걸려있는 샤워헤드에서 물이 쫙쫙 소리 내며 쏟아졌다 물소리가 폭포수처럼 굉음으로 귀를 때린다. 쇳소리가 되어 머릿속도 자지러지게 하는 것 같다. 몸에 쏟아지는 물방울이 송곳처럼 살을 찌른다. 게다가 몸이 제멋대로 물결처럼 흔들리는 것 같다. 이게 뭐지.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나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는 생각에 미칠 즈음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게 되었다.

엉덩이를 겨우 들어 한 뼘씩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몸뚱이를 끌며 갔다. 휴대폰은 침대 옆 보조 탁자에 늘 두고 잔다. 휴대폰을 통해야만 누군가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다. 몇 미터 거리를 십 수 분에 걸쳐 휴대폰 가까이 왔다. 팔을 들어 휴대폰을 들어 올리려는데 잡히지가 않는다. 흐느적거리는 팔을 탁자 위에 있는 휴대폰을 향해 먼지를 쓸듯 휘둘렀다. 여러 번 실패 끝에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죽은 듯 검은 휴대폰을 켜고 전화를 해야 한다. 휴대폰 켜는 버튼도 여러 번 시도 끝에 눌렀다. 휴대폰 화면이 밝아진다. 119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세 자리를 연속해서 누를 자신이 없다. 게다가 혼잣말을 해보았는데 말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주소도 내 상황도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하지. 불현듯 수연과 함께 단축번호 1을 저장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내 수연이의 단축 번호는 1이다. 급할 때 쓰자며 서로의 휴대폰에 단축번호 1을 설정하였었다. 둘이 마주 보며 농담 삼아 이제 늙었으니 꼭 필요할 것이라며 저장하였었다. 설정하고 둘이 마주 보며 싸한 웃음을 흘렸었지. 손의 감각이 없어지기 전에 수연에게 연락해야 한다. 온 힘을 다해 검지로 1번을 길게 누르고 전화기 옆에 물 먹은 솜처럼 축 처진 몸을 뉘었다. 신호음이 전달된다.

“여보세요 ”

수연은 언제나 한 톤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내 쪽에서야 급해서 단축번호를 눌렀지만 받는 수연에게는 그저 내 애칭인 ‘알라’라는 이름이 뜨고 전화벨이 올릴 뿐이다. 나는 아무 말이라도 하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요?”

답이 없자 수연은 여보세요를 반복한다. 점점 목소리는 떨리고 다급하다. 긴급 상황을 알려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배에 힘을 주고 아무 소리라도 내려하지만 어떤 소리도 목의 울림 대를 지나가지 못한다. 절규하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으흐흐흐흐 으 흐흐흐흐”

짐승 울음 같은 소리가 나왔다. 어떻든 뭔가 소리를 냈다 이젠 수연이 상황을 알아채길 바랄밖에. 체력이 바닥난 것 같다. 나는 기진맥진하여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다. 밖에서 앰뷸런스 사이렌이 울리는 것 같다. 차 소리와 웅성대는 소리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빨리 움직이는 걸음 소리들, 그들이 나를 발견했다. 안도하는 마음이 들자 몸이 더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들것에 나를 옮기고 앰뷸런스에 올린다. 앰뷸런스가 지나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 앰뷸런스 안에 내가 타게 될 줄 몰랐다. 구급대원들은 친절했고 내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눈 위에 안대를 씌웠다. 잠시 잠들었던가. 앵앵 거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구급차가 멈추고 그들은 나를 바퀴 달린 침대에 태우고 달리듯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5일장이 서는 것처럼 어수선한 응급실에서 의사들은 나의 침대를 에워쌌다.

“성함을 말씀해 보세요.”

“연세는 어떻게 되나요?”

“으으음”

의사들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해댔다. 듣기는 했지만 답들이 입안에 머물고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손짓이라도 하고 싶지만 손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은 이제 질문을 포기한 채 내 몸 여기저기를 찔러보고 만져보며 반응을 살핀다. 생체 실험실의 흰 쥐를 다루듯 한다. 사이사이 그들이 무어라고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소금 뿌려진 미꾸라지처럼 고통스럽고 머리는 아프다. 내 몸이 어찌 되던 나를 가만히 놔두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내 안에 갇혀있고 목소리는 침묵 속에 잠겨 있는 게 분명했다.. 의사 중 누구도 내 비명을 알아듣지 못했고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상처 입은 동물처럼 나를 주무르고 여기저기 찔러대는 의사들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쯤 어디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누군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이곳인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칠흑 같이 어두운 동굴 속이었다. 한 무리의 인파가 수도사 복장을 하고 긴 동굴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안갯속처럼 희부윰한 빛이 있었던가. 복장도 얼굴도 모두 잿빛으로 비친다. 모두 한 방향으로 서 있었고 입은 굳게 다물었으며 눈은 아래로 향해있고 반쯤은 감은 듯했다. 그 무리 속에 있는 나도 다른 이들처럼 잿빛 수도복 차림으로 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충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입은 마치 아교로 붙여진 느낌이었다. 말을 하려 해도 입술이 틈을 벌이지 못할 것 같았다. 모두는 걸음을 떼고 있는 게 아니었다. 대열이 컨베이 벨트에 올라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동굴은 끝없이 이어지고 출구는 없어 보였다. 사방이 온통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열이 움직이는 것이 시간의 흐름인 것일까. 이 움직임이 없다면 시간은 정지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눈을 껌벅이지 않고 입술은 미세한 떨림도 없었으며 옷자락조차 날리지 않았다. 바람도 지나가지 않는 동굴 속, 동굴에 천장이 있다면 물방울이라도 한 방울 떨어졌으면 하고 생각했던가. 생각조차 흐르지 않았던가. 아득하기만 했다. 어디로 가고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사념이 온몸을 감싸 안았으니 분명 생각은 한 것이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아도 대열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생각을 하였다면 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흘렀지만 정지된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막막함만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니 시간의 흐름을 잊은 것은 아닐까.

동굴 전체가 빙빙 돌기 시작한다.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토네이도처럼 원뿔 형태로 빙빙 돌며 우주 공간으로 날아간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기 위해 날아가는 것 같다. 아니 이미 동굴이 블랙홀인지도 몰랐다. 순간이기도 한 것 같고 너무 빨라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같다. 윙윙 굉음이 있기는커녕 소리 자체가 사라진 공간인 모양이다. 돌기가 멈춰진 곳에는 희미한 빛마저 사라지고 온통 까맣기만 했다. 어지러울 법도 한데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가볍기만 하다. 머릿속뿐이 아니다. 몸도 내장 없이 텅 빈 공간처럼, 경계가 없는 것처럼 아무 감각이 없다. 손으로 몸이 있는지 더듬고 싶지만 손의 존재도 느껴지지 않고 당연히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없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일까. 공기처럼 가볍게 떠 있는 것 같다.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무게가 느껴졌으면 했다.

바늘에 찔린 고무공처럼 몸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몸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뭔가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몸 깊숙이 잠겨 있다. 머리가 어디서 시작하고 발끝이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다. 감각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몸의 경계를 느낄 수 없게 되자. 마치 광대한 우주와 하나 된 느낌이다. 마음이 평화롭고 적요하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했던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까닭이 없다. 온전한 고요함이 안에 머무를 거다.라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데 고압전류가 지나가는 듯 머리가 요란하게 찌르르 지끈 거린다. 눈꺼풀 뒤에서 뇌우가 호되게 몰아쳤다.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눈을 태우고 뇌까지 태울 기세였다. 평화로운 세계로 들어가려 했던 나는 다시 지상의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얼마만의 시간이 흐르고 깨어났을 때에 나는 환자복이 입혀진 채 커튼이 칸막이를 대신하는 병실에 뉘어있다. 몇 개의 링거 주머니가 받침대 위에 달려있고 머리 쪽이 살짝 올라간 침대에 푹 파묻혀 있다.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 물체처럼 몸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아내 수연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언제 도착했냐고 묻고 싶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수연은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려고 가회동에 있는 화실에 머무르고 있었다. 전시회 준비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리기 위해 화실에서 기거하고 있다. 아마 그곳에서 119에 전화해서 나를 구했을 것이다. 30여 년 전 그때는 저 표정을 짓더니 내 앞에서 도망치듯 사라졌었다. 사라지지 않겠다고 나와 다시 만났을 때 약속했었다. 이제는 사라지지 않겠지. 그 당시 나는 사법시험에 두 번 떨어졌고 수연은 국전에 입상하지 못했던 때다. 나도 수연도 데이트를 멈추고 마지막이란 각오로 목표를 향해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길에 서 있었다. 법대학생과 미대 학생 팀 미팅에서 처음 수연을 만났었다. 가는 눈매와 날카로운 코, 하얀 피부, 검고 빛나는 머릿결을 하고 있던 수연은 첫 만남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거무데데한 피부를 가진 나는 작고 가는 눈을 가진 수연에게 매력을 느꼈었다. 가장 한국적인 외모를 가진 수연이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미팅 후 나는 수연에게 애프터를 신청했고 그 후 우린 거의 매일 만났다. 데이트는 일과 중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주로 교내에서 데이트를 했다. 학교 구석구석 우리가 머무르지 않은 장소가 없을 정도로 지치지도 않고 만났었다. 둘이 만나는 시간 외에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수연은 그렸을 것이다. 엉덩이에 곰팡이가 날 정도로 공부해야 고시에 붙는다던 시절이었다. 데이트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모했고 데이트 후엔 공부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고 집중도가 떨어진 것 사실이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1년 과정을 마쳤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입영을 해야 한다. 일 년 안에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수연도 졸업을 했고 국전에 입상을 해야 미술계에 얼굴을 내밀 수 있다. 둘 모두 목표를 이뤄야 했다.

“내가 네 옆에 있는 게 재앙인 거 같아”

수연의 말에 나는 버럭 화를 냈었다. 마지막 데이트가 되었고 이별의 메시지가 되었다. 수연은 사라졌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좌고우면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공부에 매진했다. 일 년 안에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시험에 합격해야 모든 일이 풀리고 수연을 빨리 만날 수 있다. 대학원에 적만 둔 채 고시원에 들어갔다. 고시원에는 1년 동안 7과 11이라는 숫자만 지키면 시험에 합격한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떠돌고 있었다. ‘1년 동안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면 시험에 합격한다. 는 뜻이다. 나는 아침 6시부터다, 라며 1시간을 늘였다. 식사와 잠자는 시간, 잠깐의 휴식 시간을 빼고 모두 공부하는데 시간을 썼다. 수면시간만은 꼭 확보했다. 잠을 잘 자야 집중도를 높일 수 있어서다. 합격이라는 큼직한 글자를 도화지에 매직펜으로 굵게 적어서 사방 벽과 책상 앞에 붙였다. 천정까지 붙여 놓고 자기 전에도 한 번씩 되뇌었다. 엉덩이에 곰팡이는 나지 않았지만 엉치뼈가 아프고 엉덩이가 절여서 수시로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때마다 수연과 만나는 상상을 하며 버텼다.

고시원에서 초조하게 합격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표 전날 법무부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최고 득점으로 합격했습니다.”

합격만 하면 되었는데 믿기지가 않았다. 먼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했다. 부모님과 누나들은 모두 소식을 듣고 한결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두 번 떨어지고 난 후라 감격이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거짓말 같아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수연에게도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연락번호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휴대전화도 없던 때라 거주지를 옮기면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꿈인 것 같기도 하고 몽롱한 상태로 그동안 보았던 책들을 높이 쌓았다. 내 키보다 더 높아 쓰러질 듯 위태롭다. 책들을 한 번씩 어루만졌다. 활자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밖에서 수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고시원에 신문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수석합격이라고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했다. 수석 하게 된 공부 비결이 무엇이냐. 앞으로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은가 그런 질문을 했었다. 한 줄로 높이 쌓인 책과 나를 동시에 앵글로 잡으며 셔터를 눌러댔다. 조간신문들엔 아침 기사가로 날 것이라고들 했다. 내 기사를 수연이가 꼭 보리라 믿었다. 지난 두 번 떨어졌을 때도 수연이 먼저 합격자 명단을 훑었으니까. 당연히 수연에게서 연락이 올 터였다.

수연에게서 연락은 없고 내로라하는 재벌과 명문가에서 중매를 서겠다는 여자들이 줄을 이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은 어떤 며느리를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군사정권의 실세 중 하나가 인편을 고향 부모님께 보내왔다. 사위 삼고 싶다고. 부모님은 아들이 출세 가도를 달릴 거라며 줄기차게 전화를 했다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생각할 것도 없다. 부모 말 들어라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

“권력은 불과 같아서 너무 가까이 가면 타고 맙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타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니까요..”

선출로 얻어진 권력도 경계해야 하는데 더구나 군사정권의 실세라니.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연이 떠올라서 어머니의 말에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수연을 빼놓고 생각하면 모든 걸 내게 걸어온 부모님 당부를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수연과 연락이 닿으면 부모님께 며느릿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터지만 연락도 안 되는 수연을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연수원 들어갈 때까지 가까스로 미뤘다. 당연히 몇 달이면 수연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수소문했지만 수연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연수원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약혼을 했다. 연수원 성적이 법조계에 있는 동안 지배한다며 결혼은 연수원 과정을 마치면 하기로 양가가 동의했다. 그 안에라도 수연을 만나면 약혼을 파하고 수연과 결혼할 생각이라는 것은 숨겨두었다. 연수원을 졸업해도 수연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수석합격이고 연수원 성적도 좋아 원하는 대로 임용될 수 있었다. 장인은 장차 검찰총장감이라며 검사 발령받기를 원했다. 이런저런 권력 주변의 일들을 처리하는 칼이 될 것이 눈에 보였다. 그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면 안 된다. 재빠르게 법관을 지망했다. 그런다고 번복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내 의지의 강한 표현이었다. 원래 고시 공부할 때부터 공정한 법관이 되는 게 내 목표이기도 했었다. 장인도 내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장차 대법원장감일세’ 라며 말을 바꾸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 민사지법 판사 임용이 된 후 나는 국방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 법무관에 지원했다. 군 법무관 생활과 훈련을 마치니 40개월이 지났다. 군 생활이랄 것도 없이 법관처럼 대우받고 지냈다. 훈련은 돌이켜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로 했다. 조교가 와서 훈련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은 다음 훈련을 했으니 훈련도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조교가 느슨하게 훈련을 요청하는데 피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주로 앉아서 생활하고 지냈기 때문에 체력도 단련할 겸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강압적이지 않아서인지 아님 운동이라 생각하며 해서인지 훈련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사격은 재미가 있어 더 열심히 했다. 사법시험 수석을 하였지만 기수로 보아서는 대학 재학 중 합격한 친구를 제외하더라도 동기보다 2년이 늦었다. 하지만 장인 입김 덕일 것이다. 자격이 되면 곧바로 승진했고 내 입지는 단단해졌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한 소대랄 만큼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떼 지어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가 CT 촬영 연속 사진을 수연에게 보여주며 내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다. 아마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 의료진은 CT 촬영을 한 모양이다. 앳돼 보이는 의사가 촬영 사진을 슬라이드 넘기듯 넘기며 젊은 의사들과 함께 경청하고 있다. 마치 강의실을 병실로 옮겨 놓은 듯하다. 뇌의 왼쪽 부분에 하얀 구멍 같은 것이 보인다. 의사는 좌측 뇌에 출혈이 심하여 신체 마비와 언어 장애가 온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치료하면 정상적 생활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출혈량이 많아서 수술을 한 후 예후를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수술을요?”

수연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수술하지 않는 방법은 없나요?”

“약물치료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출혈이 저 정도에서 멈춘 게 다행입니다. 아니면 생명까지 위험할 뻔했습니다. 우선 출혈로 뇌가 부어있어서 스테로이드 처방을 했습니다.”

수연을 만난 지 이제 일 년밖에 되지 않는다. 수연이 오랜 외국생활을 접고 돌아와 전시회를 열었다. 나는 그동안 전시회가 열리면 혹 작가가 수연이 아닐까 하며 하나도 빠지지 않고 훑었었다. 일여 년 전 ‘무민’이란 작가의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민, 어쩐지 본명이 아닐 것 같았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수연 바로 그녀였다. 전시회에서 수연을 만났다. 그녀는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었고 나는 이혼한 직후였다. 수연은 몇십 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젊을 때 만났던 설렘이 되살아났고 자연스레 우리는 결합했다.

그녀와 결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수사 대상에 올랐다. 수연이 예전에 했던 ‘너에게 재앙’ 말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모든 일에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는 거다. 내가 정권 실세의 한 모퉁이에 그림자로지만 있었고 그로 인해 지금의 결과가 온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는 대법원 행정 연구원을 끝으로 직을 그만두었다. 장인은 권력의 힘을 빌려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다. 사업이 번창하여 거의 준 재벌급으로 방만해졌다. 퇴직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변호사 본연의 일에 전념하려고 했지만. 장인은 사위인 내게 여러 회사 중 모회사에 부사장이라는 보직을 주었다 사양했어야 했는데 덜컥 그 직을 받았다. 아마도 내 안에 돈과 명성에 대한 욕망이 잠재해 있던 모양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결혼도 끝까지 거부하지 않은 건 권력에 대한 야망을 가면 속에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인이 쳐놓은 그물 안에 갇히게 되었다. 이혼 후 보직을 내놓고 변호사 업무와 로스쿨 교수로 지내고 있다. 군사 정권의 비리가 하나씩 드러나는 와중에 장인의 회사도 비켜가지 못했다. 투자한 광산의 매장량을 부풀리고 대량 생산 계획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해 어마어마한 세세 차익을 얻은 협의가 내게 씌어졌다. 타인 명의로 주식에 투자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매, 부당한 차익을 얻었다는 혐의도 있는 상태다. 모든 일을 주도한 사장은 장인의 동생인데 그는 해외로 도피 중이다. 그가 돌아오면 내 혐의를 상당 부분 벗길 수 있는데 그는 어디에서 숨어 지내는지 그의 행방을 수사당국은 찾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쓰러졌을 때 상황은 어땠나요? 구토, 시간, 등등”

“환자가 과거 수술받았거나. 고혈압, 당뇨는 없는지요?

의사의 질문에 수연은 난감해했다. 사실 일여 년 결혼생활 중에 수연은 나와 함께한 시간보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낸 시간이 더 많은 터라 아는 것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냥 없다고 하면 되는데. 대신 답해줄 수도 없어 답답했다. 평상시 복용하는 약은 없는지 어떤 약에 대한 부작용은 없는지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환자가 표현을 못하니…. 평소 복용하는 약 있으면 누구라도 가져오라고 하세요. 했다. 수연은 의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주문을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아마 아들에게 의사의 질문을 대신할 것이다. 결혼 후 분가해서 사는 아들은 나에 대해 잘 알까. 전처에게 전화하면 아들 보단 잘 알 텐데. 잠시 후 수연이 들어왔다.

“병력이나 약 부작용등 특이한 점은 없답니다.”

의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시간을 다투는 문제라 곧바로 수술이 진행될 것이라며 수연에게 수술동의서를 받는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MRI MRA 검사를 할 거예요. 동시에 하는 검사니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조영제를 주사하지 않고 검사하려고 합니다. 주사하고 검사하면 더 영상이 선명하지만 만일의 경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해도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으니. 요새는 주사 없이도 영상이 비교적 선명하기도 하니까요.”

흰 가운을 입은 남자 두 명이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둘은 내 처진 몸을 들어 옆으로 뉘었다. 뭔가로 등을 받쳤을 것이다. 먼저 가위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내 면도기를 들었다. 아마도 면도하듯이 머리카락을 밀 모양이다. 얼마 후 다시 내 몸을 돌려 천정이 보이게 뉘었다. 아내에게 검사를 받으러 갈 거라 말을 끝내자마자 침대를 밀고 어디론가 향한다. 수연이 옆에 따라붙는다. 검사실 안에 들어가지 남자 둘이 나를 들어 다른 침대에 누인다. 침상이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내 머리를 작은 터널 같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뛰잉-딱! 딱! 빨리릴겔렐리리리릴 릴 소리가 요란하다. 다른 감각은 없는데 소리와 빛이 송곳처럼 찌른다. 머리가 더 쑥쑥 쑤신다. 참기 힘들다. 고통을 호소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나는 굉음을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검사를 마치고 병실에 돌아왔을 때 사무실 동료들이 와 있었다. 나와 눈을 맞추고 동정 어린 눈길을 보내었다. 그들이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다 수연을 보며 나의 상황을 미리 알고 싶어 하는 눈길을 보냈다. 수연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알아듣는다 생각하고 말을 해주었으면 했다. 내 뜻이 이심전심 전달되었을까.

“괜찮으실 겁니다. 곧 훌훌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

나와 눈의 마주치기는 했지만 내가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모른다. 물론 수연도 모른다. 내 의식이 깨어있다는 사실을. 의사와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건넬 때마다 수연이 내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얼굴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음 놓고 욕을 해대도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내 의사를 어떤 표현방법으로 나타내지 못할 뿐이라는 것만이라도 알리고 싶었다.

“얼마나 놀라셨어요?”

“늘 건강해 보이셨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 일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수연은 그들에게 그간의 경과를 말하고 곧 수술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검찰에 변호사님 상황을 알렸습니다. 아마 변호사님의 경과를 봐가며 수사가 진행될 것 같습니다.”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는 알 수가 없는데 전혀 의사표현을 못하는 상태입니다. 수술을 한 후 예후도 어떻게 될지 의사도 확답을 못하는 상태이고요.”

“꼭 예전대로 돌아오실 겁니다. 변호사님 의지가 워낙 강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검사실에 나를 운반했던 남자 둘이 들어왔다.

“수술 들어갑니다.”

수연은 검사실에 갈 때처럼 내 옆에 붙고 동료 변호사들은 ‘힘내십시오.’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마치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듯이 애잔한 눈길을 보낸다. 침대에 누인 나는 그들이 미는 속도에 따라 스르르 이동된다. 어두운 동굴 속 컨베이 벨트에 서 있었던 환영처럼. 수술실 문이 열렸다. 수연은 물론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수술실은 눈이 부시도록 환했다. 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곧 나는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깨어날 것인가. 예전처럼 아무 장애 없이 온전히 돌아와 검찰과의 싸움을 이어가게 될 수 있을까. 갓 태어난 유아처럼 모든 것이 미숙한 그저 울음으로 배고픔과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게 될까. 다시 말과 글을 배우고 기고 걷고 달리기를 익혀 나가야 할까.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노력하면 모든 것을 온전히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그런데 쌓았던 것들은 무엇이었나. 바닷가에 쌓은 모래성처럼 파도가 밀려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님 숨만 쉬는 생물체로 깨어나 아무것도 느끼지도 생각도 못하게 될까. 그 상태로 이 세계로 돌아온다면 돌아왔다 할 수 있을까. 의식을 잃었을 때에 맛보았던 우주와 일체를 이루는 영원의 세계에 머물고 싶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의지와는 무관하다. 의지대로 된다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상태로 이 세계에 돌아오는 것일까.

소리가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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