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하나
객석의 불이 꺼진다. 서치라이트 같은 조명이 장막을 비추듯이 텅 빈 무대를 비춘다. 무엇을 찾으려는 듯 시선을 붙들어 매려는 듯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빛이 무대 한가운데에 멈춘다. 잠시 머물던 조명이 사라진다. 새 장이 열릴 것이다. 캄캄한 무대 위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 것인가.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숨죽이고 지켜볼 것이다. 서서히 무대가 드러나겠지. 늘 공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릿광대는 다시 한번 거울을 본다. 흰 덧칠한 얼굴에 얼룩진 곳이 없는지.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입은 좌우 균형 있게 립스틱이 그려져 있는지. 커다란 눈 밑에 검은 눈물방울을 빠트리지는 않았는지. 모두 완벽해 보인다. 코에 빨간 볼을 끼우고 빨간 삼각 모자를 쓴다. 거울을 보고 자신을 향해 한 번 호탕하게 웃는다. 오늘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을까 매번 다른 얼굴을 만나는 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우리의 어릿광대입니다”
팡파르와 함께 어릿광대는 입구로 향한다. 연극 무대와 달리 무대와 객석의 조명은 은은한 빛을 품고 있다. 서치라이트가 무대 끝 광대가 등장할 곳을 비춘다. 어릿광대가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뒤뚱거리는 걸음을 옮기며 무대를 가로지르는 선을 긋는다. 검은 무대에 하얀 선이 그려진다. 선 위에 올라선 어릿광대가 외줄 타기를 한다. 흔들리는 외줄에서 발걸음을 옮기듯 조심조심 발걸음을 뗀다. 한 발자국 옮기고 비슬거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또 한 발 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간다. 양팔로 날갯짓을 하며 균형을 맞춘다. 순식간에 몸이 기운다. 줄에서 떨어질 듯 위태롭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어릿광대는 객석을 보며 웃는다. 관객들도 따라 웃는다. 줄에서 떨어질 듯 외줄 타기는 이어지고 그때마다 관객은 웃고 그도 관객을 보며 웃는다. 외줄 타기가 끝나자 어릿광대가 모자를 벗는다. 서치라이트가 허공에 옷걸이처럼 구부린 검지를 비춘다. 어릿광대는 모자를 검지에 건다. 그리고 손을 내린다. 모자가 무대에 떨어진다. 어릿광대는 왜 모자가 걸리지 않는지 의아한 듯 양팔을 벌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시 한 번 모자를 손가락에 걸고 이내 팔을 내리자 모자는 어김없이 떨어진다. 관객이 폭소를 터뜨린다. 어릿광대는 객석을 보며 왜 웃느냐는 듯 객석을 한 번 훑으며 소리 없는 말들을 관객을 향해 흩뿌린다.
다들 즐거웠냐? 좋은 일 있었냐? 몸들은 안녕하신지. 슬퍼서 울지는 않았냐. 우울해서 술 마시고 싶은 적은 없는지, 가슴이 답답해서 소리 질러봤는지. 모두 인생이란 무대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어릿광대. 너희를 바라보며 웃고 있지. 입을 크게 벌리고. 내 입보다 더 큰 입으로 웃을 수 있어. 내 눈보다 더 크게 눈 뜨고 웃을 수 있어 입을 벌리지 않아도 웃음소리 날리지 않아도 이 어릿광대는 너흴 보며 웃지, 그런데 신도 지금 우릴 보며 웃고 있는 건 아닐까.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 어릿광대는 모자를 주어들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저랑 춤추실까요, 라고 청하듯이 인사를 건네고 팔자걸음으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무대 위에 선을 긋고
어릿광대가 외줄 타기를 한다
중심을 잃는 듯 다시 서고
떨어질 듯 한 발자국
비틀거리며 또 한 발자국
큰 눈의 어릿광대를 보고
우린 웃는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무대 위에
우린 선을 긋고 내 것 네 것 한다
무대 이쪽에선 축배를 들고
저편에선 병정놀이도 한다
대기실도 없는 데
몇 명은 역할이 끝났다고 퇴장하고
새로운 얼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연출가는 숨어서 작품구상을 한다
희극으로 이끌까 비극으로 끝낼까
우리의 관객은 한 명
큰 입의 어릿광대가
우릴 보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