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장미씨~ 힘을 내요, 윤이야~
아픈 후배를 위한 응원가
지난 1월 어느 밤에 아끼는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갑자기 선배 생각이 나서요..."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언제 연락해도 어제 만난 듯 친근하고 애틋한 후배.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그 후배와 함께했다.
그녀와 나는 첫 직장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울면서 야근도 많이 하고 주말에도 함께 여행 다니고 남편을 만날 때도 남편 친구들이랑 함께 놀고...
직장 접고 인도로 긴 여행도 함께 다녀왔다.
그런 그녀가 늦은 밤 난소암 말기를 알리는 카톡을 보내왔을 때, 나는 잠자던 남편까지 깨워서 함께 펑펑 울고 말았다.
맘은 당장 다음 날에라도 찾아가 만나고 싶었지만 그때 벌써 5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면회도 안 되는 이 거지 같은 상황.
목소리도 듣고 싶고 얼굴도 보고 싶은데 무너져버린 내 모습에 그녀가 더 힘들어할까 봐 바로 전화도 못했다.
그녀가 뒤늦게 아픈 걸 전하게 된 것도 본인 마음이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전엔 누구랑 얘기를 해도 울기만 해서...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그녀는 보통 2주 입원해서 항암치료 하고 일주일정도 집에 있는다고 했다.
나는 지난주에 그 일주일 중 하루를 빌려 그녀를 만나고 왔다.
의왕까지 차가 막혀서 두 시간 걸려 도착한 카페.
나는 눈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발끝만 바라보며 횡설수설하는 나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무심히 건네주는 후배.
나는 밤사이 지난 앨범들을 뒤져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고,
딱 20년 전에 회사에서 제주로 놀러 갔던 사진들 중에 둘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진 한 장을 골랐다.
앨범에 쓰여 있던 일기를 옮겨 적고 그녀에게 응원과 사랑과 고마움의 마음을 적었다.
편지를 전하고 그렇게 하루종일 후배와 수다 떨고 먹고 또 수다 떨다 돌아왔다.
그녀가 너무 힘들 때 병원에서 가끔 남편한테 전화를 하면 매번 울고 있던 남편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며.
본인이 힘들어할수록 남편도, 가족들도 더 아파할걸 아니까...
여하튼...
집으로 오는 길에도 눈물콧물에 어떻게 운전을 하고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때 받은 장미들은 매일매일 물도 갈아주고 예쁜 말도 해주며 보고 있는데 오늘 아침 안방에 꽃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힘을 내요, 장미 씨~ 힘을 내요, 윤이야~"
아침에 물 갈아주며 계속 노래를 부르니 아이들이 무슨 응원가냐고 물어온다.
"윤이이모 힘내라고 부르는 응원가야~~~
장미도 힘내고, 윤이이모도 힘내고..."
저 장미들이 고개를 번쩍 들고 다시 생생해지길...
내 예쁜 후배가 훌훌 털고 기적을 만들어 내길...
아침부터 간절한 응원가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