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미 성격이 지랄 맞으니까 자네가 잘 좀 맞춰주게~"
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 인사 왔던 날 엄마는 진심으로 부탁했다.
어디에서나 성격 좋다는 말을 듣는 나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가족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지랄 맞았다.
어려서는 욕심이 많아서 내 것은 내 것, 언니 것도 내 것이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언니 옷만 사 주면 큰일이 났지만 내 구두 하나 더 사는 것은 괜찮았다.
두 살 위인 언니랑 싸우기라도 하는 날엔 어떻게든 내가 언니를 이겨먹었다. 그때는 내가 강해서 인 줄 알았다. 내가 주장하는 게 맞고 그러니 당연히 내가 이기는 게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착각이다.
성격 좋은 언니가 져 준거다.
내가 어질러 놓은 방이 지저분하면 지저분하다고 짜증 냈고 치워놓으면 내 것 어디 갔냐며 짜증을 냈다.
지금 생각하면 내게 딸이 없는 게 정말 다행인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만 이기적이고 지랄 맞았을까.
그래도 내 어린 시절의 지랄 맞음을 변명해 보자면,
나는 예민하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도 했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레이더가 늘 풀로 가동되고 있었고 남들의 이목이 신경 쓰이니 예의 바르고 똑 부러지게 행동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그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풀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참 미련했었다.
내 지랄 맞음은 예민한 성격에서 온 미련한 행동이었다.
우리 남편도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집에서는 긴장을 아예 놓아 버리는 건가?
"나를 정말 사랑하면 좋아하는 건 많이 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싫어하는 걸 하지 말아 줘."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잔소리는 듣기가 싫지만 하는 것도 정말 싫다.
그러니 알아서 잘해주길 바라지만 다들 내 맘 같지 않다.
나도 고상하게 육아하고 예쁘고 고운 말만 쓰며 나이 들고 싶다.
그런데 B형 남자 셋과 살기에 가끔 나도 힘이 들긴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의 지랄 맞음을 남편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나는 엄마가 내게 해 주셨듯이 그냥 다 받아주고 있는 건가?
이건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듯한데...
글을 쓰며 순차적인 감정의 흐림을 정리하다 보니 결과는 사랑인가 보다.
"너는 성격이 왜 그 모양이니?"같은 말 한마디 안 하고 키워주시고는 시집갈 때에서야 그런 말씀을 하신 엄마의 인내심도 인정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데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이해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며 서로의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나 보다.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을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지는 말아야겠다.
지금 그때 나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의 약자다.
엄마를 많이 닮아서 인지 인내심도 대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랄 맞음도 잊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