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2년차 초보농사꾼 부부의 농사기지 구축 경험담...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서 들판을 지나다 보면 곳곳에 컨테이너와 파란 물통(농업용 물탱크)을 종종 볼 수 있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무심코 지나가던 들판의 풍경이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내게는 이제 여사로 보이지 않는다. 처음 귀농을 한다고 고향으로 내려와 벼수확이 끝난 텅 빈 들녘을 바라보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넓은데, 농사 연습을 하긴 했지만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논으로 쓰던 땅을, 밭농사를 짓겠다고 호기 있게 덤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동생의 땅을 빌려 키우고 싶은 작물들을 주로 모종을 사 심고 키우고 가꾸어본 게 전부다. 주말텃밭이니 면적도 작고 지하수가 있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물주기도 가능했다. 기존에 설치된 농막도 있어서 전기를 쓰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귀농해 농사를 짓겠다고 시작한 고향 땅은 전기도, 물도, 일하다 잠시 앉을 농막도, 농기구를 보관할 곳도 없는, 그냥’맨땅’뿐이었다.
지난 4년간 한 농사 연습은 이미 갖추어진 인프라 안에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하나하나 우리만의 농사 기지를 만들어야 했다. 급한 대로 성토하고 (이전 기사: ’한번 해봤으니 이제 좀 쉽겠지‘…. 올해 농사가 시작됬다), 작년 2월부터 초보 농사꾼 부부는 기지 구축을 시작했다.
실내에서 일부 작물을 키우고 관리할 수 있게 작지만 비닐하우스 1동을 짓고, 농기구들을 보관할 농기구 보관소도 하나 설치했다. 다음으로 설치한 게 농업용 물탱크다. 예전에는 천수답(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의존해 농사짓던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농업용 물탱크에 물을 저장해 물주기를 할 수 있다. 물론 물탱크에 채우는 물은 들판 중간에 있는 농수로에 흐르는 물을 양수기로 퍼 올려 물탱크에 저장한다.
그런데 농수로에서 물탱크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선 양수기가, 그 양수기를 돌리려면 전기가 필요했다. 전기공사업체와 연결해 전기 신청을 했는데(한전에 개인이 직접 신청할 수 없다. 반드시 전기공사업 면허를 가진 업체가 대행해 처리된다) 주변 전봇대에서 전기를 끌어오기에 거리가 멀다며 한전에서 전봇대를 2개나 설치했다. ‘야호…. 전봇대 2개 생겼다‘ 전봇대를 설치하고 지인들에게 ’이쑤시개 필요하면 말해. 나 전봇대 2개나 있어, 하나 빌려줄게..‘ 좌충우돌 귀농 경험에서만 할 수 있는 유쾌한 농담이다.
그렇게 성토하고, 비닐하우스 1동을 짓고, 농업용 물탱크와 양수기를 설치하고, 전기까지 끌어와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난 해 귀농 후 첫 도전의 주력 작물은 고추 농사였다. 주말 텃밭에서 지어본 경험을 토대로 순조롭게 고추 모종을 심었는데 또 필요한 게 생겼다. 바로 고추 건조기다. 익은 빨간 고추를 건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건조기 없이 말리기는 불가능하다.
오래전 시어머니는 익은 고추를 마당에 널고 방에 군불에 넣어서 말리곤 하셨는데, 최근 농가에서는 크기가 크고 살이 두꺼운 대과종 품종을 많이 심기 때문에(이는 수확량이 많고 고춧가루도 많이 나온다) 건조기 없이 햇볕만으로 말리기는 실제로 불가능하다. 살이 두꺼운 고추는 그만큼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자연건조로는 자칫 내부(고추 안쪽)로 곰팡이가 피기 십상이다. 그렇게 기지에는 고추 건조기까지 한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남편과 나는 모든 게 처음인 기지 구축을 위해 하나하나 찾아보고 물어보면서 때론 투닥거리면서 참으로 분주했다.
지난해 밭에 나와 일을 하면서 낮에 잠시 휴식을 할 공간이 없어 햇볕 듬뿍 받은 비닐하우스에서 선풍기 틀고 뜨거운 바람으로 잠시 쉬곤 했었는데, ’여보 이러다 우리 쪄 죽겠다. 내년엔 우리도 쉴 수 있는 공간을 좀 만들자‘ 기지 구축에 예상치 못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우리의 쉴 공간은 일단 미루었었다.
어제(16일) 미루었던 쉴 공간으로 큰 창문이 달린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비용 때문에 몇 번이고 고민했지만 잠시 쉬는 공간에서 주렁주렁 달린 고추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큰 창문 하나를 욕심냈다. 귀농 후 2년에 걸쳐 기지를 구축하는 동안 나를 위한 유일한 욕심이었다.
올해 농사를 위해 씨를 파종해 모종으로 키우고, 성토한 흙에 거름을 뿌리고, 동파 방지를 위해 비워둔 물탱크에 물을 채우는 작업을 마쳤다. 이제 곧 고랑을 만들어 감자를 심고 시기에 맞게 토마토, 오이, 가지, 콩, 깨, 땅콩, 고추를 심을 거다.
새로 들인 컨테이너 한 동, 작지만 비를 피해 작물을 심고 키울 수 있는 비닐하우스 한 채, 물 가득 채운 물탱크, 귀한 전봇대 2개, 지나가는 풍경으로만 보던 것들이 귀농 2년 차 초보 농사꾼 부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농사 기지다. 지난해 서툴지만 배부르게 지은 농사경험기를 안고 올해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한번 가보자. 레츠 고!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5550&PAGE_CD=00000&CMPT_CD=S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