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동반자는 바로 자기 자신.
책을 고를 때 마주하는 첫인상 얼굴이 ’제목‘ 일 때가 많다. 이번에 선택한 책이 그 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의 삶에 비추어볼 때 대부분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몫으로 나는 옳고 상대방이 틀린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오는 화를 참지 못해 결국 갈등하고 분노하는 관계를 힘들어하는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아주 오래전 해 본 명상의 시작을 알리는 싱잉 볼 소리처럼 차분함과 반가움을 줬다.
한창 삶에 대한 고민과 사람과의 관계로 근심이 깊을 때 템플스테이를 찾아다니며 잠깐씩 해 본 명상이 내게는 곤욕이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코끝의 숨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코끝의 숨이 들락거리는 걸 한 열 번 세고 나면 ’남편이 나 없이 잘 있나? 오늘 점심 반찬은 뭐가 나올까? 옆 사람은 명상을 지금 하고 있을까? ‘별별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 있다. 다시 코끝의 숨으로 돌아오기를 수차례 하다 보면 끝이 나곤 했다.
명상을’없음, 무(無)‘라고만 알고 있는 초심자가 겪은 명상의 실패 경험을 저자는 본인의 경험으로 위로하고 격려해 준다. 숲속 승려 시절 넘쳐나는 잡념과 지루함,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운 경험을 책에서 그대로 전달하며 결국 오만가지 잡념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대신 떠오르는 잡념을 그대로 바라보다 다시 코끝의 숨으로 돌아오는 그 과정이 명상이라고 알려준다. 생각을 없애려는 의지가 아니라 이 생각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되는 과정에서 깨달아 가는 것이 수행의 과정이라고 했다.
이 책은 26세 젊은 나이에 스웨덴 기업의 최연소 최고재무책임자의 자리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액 연봉, 사회적지위를 가진 저자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태국의 깊은 숲속 승려가 되었을까? 한 개인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결국에는 인간이 찾고자 하는 내면의 평온함에 이르는 긴 여정을 담고 있다.
그렇게 속세를 떠나 17년간 숲속 승려 생활을 마친 저자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고국인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온다. 태국과 영국에서의 승려 생활을 통해 얻은 내면의 평온함에 이르는 지혜를 혼자만 알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숲속에 배운 깨달음을 나누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수행을 선택한다.
우리는 흔히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유사한 말들을 종종 듣고 접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에서의 지위로 성공 기준을 정하고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삶을 잣대로 평가하는 외부의 소리를 내 생각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명상을 통해 이러한 외부의 소리를 걷어내고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나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결국 이 소리는 나 자신을 믿는 힘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나 스스로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지혜가 있다고 했다. 다만 우리는 오랫동안 외부에 맞춰 사느라 정작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어버렸기에 고요한 속에서 나를 만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도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패에는 관대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연민을 베풀지 못하는 데에 대해 돌아보는 의문을 가지게도 한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인간적인 온정과 너그러움을 허락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우며 성공해야 그 자격이 생기는 겁니까?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속죄해야 할까요? 손대는 모든 것을 얼마나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는 할까요? p222
유독 자기검열에 엄격한 현대인들에게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위로가 아닐까 싶었다. 성공해야 하고 실수하지 말아야 하고 완벽해야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애당초 그런 건 없다고 시원하게 말해준다.
저자는 17년간 승려 생활로 얻은 지혜를 가지고 스웨덴으로 환속해 사람들에게 명상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강연자로 활동하던 중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결국에는 가장 저자다운 방식(조력 안락사)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자기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저자는 그간의 수행 과정을 이 책에 담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거리낌없이 보살핀다면 또 어떨까요? p223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 한쪽이 울컥했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 저자가 생명을 마치면서 전하고 싶었던 영원한 동반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를 안아주고 실수를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바라봐 주는 것, 이것이 나를 지키고 인생의 운전대를 바로 잡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책장을 덮으며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친절해지리라 혼자 다짐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