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30봉지에 담긴 온기, 따뜻했다.

적당한 거리두기 덕분에 소중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by 선심화

어제(20일) ’고객님의 상품을 오늘 12~14시경에 배송 예정입니다. ‘택배 안내 문자가 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문한 게 없는데…. 뭘까…? 오후에 ’부재중인 고객님을 위해 위탁 장소(문 앞)에 배송하였습니다‘라는 문자가 또 왔다. 급기야 택배기사님께 전화해 지금 외부에 있는데 주문한 게 없다고 하니 송장 번호로 확인해도 주소에 맞게 배송했다고 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물건 상자를 열어보니 ’드립커피 30봉지‘가 들어있다. 번뜩 최근 브런치스토리(글쓰기 플랫폼)에 ’커피 한잔‘ 올린 글(아침마다 드립커피에 물을 부으며 차분히 하루를 시작한다는 내용)이 생각나며 한 사람이 스쳤다. 업체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뇌리를 스친 그녀가 맞다.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뭐 앞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거 브런치에 글로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고마운 마음을 에둘러 그렇게 농으로 표현했다.

260320 택배(커피30봉지).jpg 택배상자에 담긴 커피30봉지(덤으로 따뜻한 온기가 듬쭉...)

사람이 살다 보면 우연찮게 접점이 없어도 결이 맞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한 번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 없는데 어쩌다 속내를 나누는 사이가 됐고, 그러다 몇 해 전 같은 부서로 같은 날 발령받아 함께 근무했던 한 살 아래 후배가 바로 그녀다.


내가 다녔던 직장에선 불문율이 있었다. ‘친한 사람끼리는 같은 부서(팀)에서 근무하는 거 아니다‘ 친분 때문에 업무적으로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기 어렵기도 하고,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하고, 반대로 두 사람이 너무 친하면 조직 내에서 다른 직원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부서의 과장과 팀장으로 발령장을 받던 그날(22년 9월),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오래전 좋아하던 선배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로 자리 이동이 될 뻔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사전에 알게 돼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조직 내에서 아무리 유리한 조건이라도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지켜온 내게 그날의 발령은 새로운 부서로의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예상치 못한 발령으로 그녀와 나는 한 사무실에서 수화기 너머 통화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깝게 책상을 두고 2년 가까이 근무했다.


모든 날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각자 위치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달랐기 때문에 때론 날 선 의견으로 대립도 하고 큰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갈등이 한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과제 해결 과정이라는 것과 자칫 좋았던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음을 둘 다 너무나 잘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깨지 않기 위해 적정 거리를 유지하기 하면서 부단히도 애썼다.


그러기를 2년여, 혼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할 과제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후배인 그녀가 떠나고 치열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관계가 흐트러지지 않고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각자의 영역 범위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 애쓴 노력과 서로에게 지켰던 적당한 거리두기가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거리의 자동차만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 관계에서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친하고 가까울수록 상대의 허물이 먼저 보이고, 그렇다고 너무 멀면 서운함을 토로한다. 어찌 보면 적당한 거리가 확보된 관계일수록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너무 밀접한 거리는 냉정한 판단으로 소통할 수 없어 결국에는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육십을 앞두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내가 배운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준인 셈이다.


불문율로 시작됐던 그녀와 나의 직장 생활, 적당히 잘 지킨 거리 덕분에 지금은 비록 자주 보지 못하고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향한 주파수는 늘 열어놓고 있다. 매일 아침 드립커피 한잔을 내리며 아마도 그녀를 떠올리게 될 거다.


’제가 아침에 하나씩 드립해서 마시는데 괜찮은 거 같아요. 참고로 아주 저렴해요~~‘


’마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거유‘


’정답~~~‘ 주고받은 마음의 온기가 따뜻하니 더 그렇다.

그녀가 좋아하는 파도멍....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6873&PAGE_CD=00000&CMPT_CD=S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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