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너머 6시간 걸려 매주 아이를 보러 다니던 고단했던 나의 육아전쟁
딸은 직장 생활 4년 차다. 하는 일 특성상 늦은 밤 혹은 자정 전후에 귀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있어서는 안 되는 험한 사건·사고 뉴스를 볼 때면 늦게 귀가하는 딸의 안전이 염려됐다. 차가 있다면 그나마 늦은 귀가가 조금이라도 안전할 텐데 하는 생각이어도 덜컥 차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먼저 말하는 순간 차 구입비 일부를 보태지 못하는 부채감을 안게 될 게 뻔해서다.
중고차 매매점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아직은 얇은 통장 잔액으로 포기하기를 수차례 했다.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는데, 얼마 전 중고차를 구매했다며 통보했다. ‘엄마, 이제 우리도 차가 있으니,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으면 바로 갈 수 있다. 내가 태워줄게‘ 직장 생활 4년 차에(이전 기사: 직장상사 힘들어 하는 딸에게 35년 경력 엄마가 해준 말) 중고차지만 자차를 구입해 좋아하는 딸을 보며 대견함, 반가움, 미안함, 고마움, 먹먹함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쭉 나는 직장을 다닌 워킹맘이었다. 딸이 태어난 1996년에도 육아휴직 제도는 있었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100% 무급,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설상가상 당시는 주 5일 근무가 아니라 주 6일 근무로 토요일 오후 1시까지 근무했다.
딸이 태어나고 6시간 이상 걸리는(당시는 고속도로가 없어 대관령을 넘느라 울진까지는 6~8시간씩 걸렸다) 친정에 딸을 맡기고 근무가 끝나는 토요일 오후 그 먼 거리를 거의 매주 오가며 나는 육아 전쟁을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어릴 적 딸의 필름 사진이 제일 많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으니, 필름 카메라에 아이 사진을 담아 인화한 사진들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주중에는 지난 주말 찍은 필름 사진이 닳도록 꺼내 보며 토요일을 기다리곤 했다.
어린이집 5세 반 보낼 때까지 떨어져 할머니 손에 자란 딸, 나는 그저 멀리 있는 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라며 돌아오는 대답은 없어도 수화기 너머 안부 전하기를 매일 했다.
여느 아이처럼 딸도 자라면서 사춘기를 겪고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수없는 밀당을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누르는 짓눌림…. 그것은 바로 떨어져 키웠던 아이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큰 돌덩이 하나다. 딸이 자라면서 고집 피우고 반항할 때면 어김없이 키우지 못한 5년의 공백이 떠오르며 ’내가 안 키워서 관계 형성이 안 돼서 그런가‘ 딸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 믿었던 시간은 나를 늘 주눅 들게 했다. 어쩌면 아이에게도 엄마인 나에게도 서로가 필요했던 결핍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지난 어느 날 기억에도 없는 어떤 일로 마찰이 생겼을 때다. 이견을 조율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 번은 꼭 딸에게 전하고 싶었던 큰 돌덩이를 꺼냈다. ‘너를 할머니한테 맡겨 키운 건 그때는 그게 너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할머니랑 있었던 시간을 짧게 하고 엄마가 좀 더 일찍 너를 데리고 와 키우며 애착 관계를 형성했어야 했다고 생각해‘라고 진심을 전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근데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해? ‘하고 물었다. 너를 키우며 늘 마음의 빚이 있었다고 하니,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던 딸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엄마,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었어. 그러니까 괜찮아.‘
딸의 괜찮다는 그 한마디에 오래도록 안고 있던 미안함의 무게가 쑥 내려가는 걸 느꼈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퇴근해 데리러 오는 엄마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딸과 손잡고 집으로 가던 그때부터 늦었지만 시작된 딸과의 걸음은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란히 잘 걷고 있다.
며칠 전(20일), 구입한 차가 중고차라 차량 점검받고 몇 가지 수리를 해야 한다며 ’엄마, 같이 가자‘하길래, ’오케이, 차 수리비가 많이 나올 테니, 커피는 엄마가 낸다‘ 그렇게 짧은 외출을 다녀왔다. 딸은 어린 자식을 친정에 떼놓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던 엄마의 나이를 훌쩍 넘었다. 한 번씩 지난 얘기를 꺼내면 그 먼 거리를 매주 오가며 자신을 보러 다녔던 엄마의 주머니 사정까지 넣어 위로 한다. ‘어떻게 그렇게 매주 날 보러 왔냐. 기름값도 장난 아니었겠네‘
딸은 자신보다 어렸던 엄마가 자신을 위해 했던 최고의 선택을 이해할 만큼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언제든 필요할 때 말하라며, 조수석은 엄마 자리라고 건조하지만 툭 던지는 한마디를 들으며 긴 세월 나를 짓눌렀던 무거운 돌덩이는 이제 어디에도 없구나 싶었다.
어제(23일) 아침, 창 너머 어린이집 가방을 멘 아이의 손을 잡고 출근하는 젊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의 지난 모습과 겹쳤다. ‘오늘도 힘내세요. 엄마도 파이팅, 아가도 어린이집에서 파이팅!‘ 언젠가 저 엄마도 지금은 아장 걷는 어린 아가지만 성인이 된 자녀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어제 아침의 고단함을 떠올릴 수 있기를 응원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7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