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금(金)이 많아 고집과 주관이 뚜렷해요. ‘고고하고 날카로운 보석‘ 형국이네요.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고생 많이 했겠어요. 60살 지나면 조금씩 편안해질 거예요’
살면서 한 번도 사주(四柱)를 본 적이 없었다.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열심히 살다 보면 고생 뒤에 낙이 온다는 신념을 충실히 믿었다. 하지만 평생을 몸담던 직장을 떠나기 위한 퇴직을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24년 11월경) 지인의 소개로 명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한 분을 만났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몇 년을 남기고 조기 퇴직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름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무엇이라도 확인 도장을 받고 싶은 심정으로 선택한 게 사주였다.
사주(四柱)는 한자 뜻 그대로 ‘네 개의 기둥’을 의미하며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 네 가지를 기둥으로 삼아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분석해 타고난 성격, 운명을 예측한다. 조기 퇴직을 고민하며 지금껏 살아온 삶이 사주와 맞았는지, 선택하려는 퇴직이 남은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에 대한 궁금함과 불안을 잠식시킬 나침반이 필요했다.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한 명리 상담가(이후는 선생님이라 칭함. 실제 미술학원을 운영하셨음.)는 나보다 연배가 한참 많으신 분이었다. 사주라는 걸 처음 본다고 사실대로 말하며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타고난 운명을 맞히기보다 지나온 서로의 삶에 대한 담소로 이어졌다.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각자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나누다, 종이에 적힌 나의 사주풀이를 보며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 상대하느라 힘들었네요. 고생했어요’ 나침반의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들은 뜻밖의 깊은 위로였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직장 내 최고 결정권자, 상사, 동료, 후배들, 일과 관련된 각양각색의 사람들, 특히 불편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마주했던 사람들과의 각 세운 감정은 늘 에너지를 고갈시키곤 했다. 거침없는 요구와 쏟아지는 불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하지 못했다.
대충, 대강, 엇비슷하게 마무리하는 건 내 책임감이 허락하지 않았고 불의 앞에서는 내게 닥칠 손해를 겁내지 않았다. 선생님은 타고난 내 사주가 남들처럼 둥글게 둥글게 살지 못하고 부러지더라도 휘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강직한 성정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미련할 정도의 강직함과 성실함이 지금의 위치까지 나를 이끌어 주었다며 마음을 토닥토닥 해 주었다.
문득 대체 사주가 무엇일까, 정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걸까?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이라면 우리가 노력하고 애쓰는 삶의 과정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주가 만일 정해진 결말이 있다면 삶은 너무 허망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단호히 말했다. ‘사주는 절대 정해진 운명이 아니에요. 자신이 어떤 결의 사람인지 미리 알려주는 날씨 예보 같은 거예요.’ 아무리 좋은 사주를 타고났더라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운의 기회를 결코 잡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풀어본 나의 사주 상 성정인 강직함이 역설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고 힘들게 했지만 또한 기댈 곳 없는 직장 생활에서 나를 지켜준 방패막이였던 셈이다. 선생님 얘기대로 사주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날씨 예보 같은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모르고 맞은 날씨지만 앞으로 삶은 예보 덕분에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유연해질 수 있겠구나! 생각됐다.
사주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누군가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숨구멍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나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확인 도장을 찍기 위해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사주 선생님을 만나고 내가 깨달은 건 사주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나 결론이 아니다.
사주는 앞날을 맞추고 예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타고난 성정의 해석’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운명이라는 걸 미리 안다면 오는 비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젖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는 건 오직 내가 해야 한다.
결국 지금까지 타고난 성정을 가지고 성의껏 살아온 지난날의 생각과 행동들이 남은 내 삶을 안내해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주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나침반은 이미 내 안에 자리 잡아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로 가끔 그 날 만남이 생각난다. 사주 선생님과 고객으로 만났지만, 타고난 성정으로 고단했을 인생 후배를 격려해 주던 인생 선배의 따뜻함을 잊을 수 없어서다.
나는 여전히 나의 타고난 성정대로, 내 안에 있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물론 날카롭고 고집스러운 성정을 없애지는 못했다. 어쩌면 평생 없애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과 나를 향한 성정을 숨 고르기 한 번 하는 정도의 여유를 두고 관찰할 수는 있다. 남들처럼 둥글둥글하지 못하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나 하면서 서투른 나를 안아주며 묵묵히 살아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