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육묘장에서 정성을 들이는 일
이제 곧 시골 오일장 장터엔 올 한 해 밭농사에 필요한 모종들이 육묘장에서 출하돼 그 모습을 선보일 거다. 육묘장에서는 봄이 오기 한참 전인 1월 추운 겨울부터 파종해 모종을 키운다. 작물마다 육묘 기간(씨앗을 뿌려 싹을 틔운 뒤, 밭에 옮겨심기 적당한 정도의 모종으로 키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고추는 육묘 기간이 70~90일 정도로 다른 작물들보다 길어, 4월 중순쯤 고추 모종을 심기 위해선 추운 겨울인 1월에 미리 파종해 싹을 틔워야 한다.
씨를 발아해 모종을 키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와 습도다. 추운 겨울, 씨가 싹을 틔우기 위해 육묘장에서는 바닥에 열선을 깔거나 대형 온풍기를 가동해 온도를 유지하고 자동 환기시스템을 이용해 습도를 조절한다. 농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남편과 내가 원하는 품종의 고추를 키워보기 위해 씨를 발아해 모종을 키워보겠다고 시작한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예민한 탐색이었다.
집 거실에서 한번 실패하고 다시 도전해 31일 차까지 키우던 고추 모종을 밭에 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기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온도와 습도를 적정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커 실내 하우스의 경우 낮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어가지만, 밤 기온은 5도까지 떨어진다.
건강한 고추 모종을 키우기 위해서 낮 동안은 20도 선에서, 밤 기온은 15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밤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냉해를 입어 성장을 멈추고 살아남지 못하거나 혹여 살아남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낮 동안은 높게 올라가는 비닐하우스 안 온도를 내리기 위해, 밤 동안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초보 농사꾼 부부는 고심을 거듭했다.
우선 비닐하우스 안에 모종들만을 위한 소형 비닐하우스 집을 더 만들어 보호하고, 타이머를 달아 15분 단위로 온풍기를 돌려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 봤다. 그런데 밤에 15분 단위의 온풍기로는 온도차가 적정하게 유지되지 않았다. 그리고 온풍기 주변으로만 따뜻하고 끝에 있는 모종까지는 온도 전달이 어려운 걸 확인하고 빠르게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번에는 낮에는 햇빛을 받아 실내 온도가 27.5도 이상이 되면 선풍기가 2대가 돌아가 하우스 곁창에서 들어오는 바람과 공기 순환이 되도록 해 실내 온도를 낮추고, 밤에는 15도가 될 때까지 온풍기와 미니 선풍기를 동시에 돌려 끝에 있는 모종까지 바람이 전달되도록 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부직포를 추가로 덮어 온도를 밤새 유지했다. 또한 야간에 계속해서 온도가 올라가면 안 되니 내부 온도가 17.5도가 되면 온풍기가 자동으로 멈추고, 15도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온풍기와 선풍기가 돌아가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거실을 떠나 하우스로 옮긴 모종은 지금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다. 어제 29일 저녁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기 전 모종들을 살피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이건 농사가 아니야. 완전 돌봄이야.’ 남편과 내게 모종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정성을 들이고 가꾸는 반려 식물이다. 처음 거실에서 씨앗을 파종해 싹 틔우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결국 온도 조절에 실패해 씨앗들은 쓰레기가 돼버렸지만, 다시 도전한 씨앗들은 지극한 돌봄과 정성에 보답해 싹을 틔우고 모종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
흙에서 자라는 작은 생명들을 지켜보면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던 오랜 직장 생활의 기억은 점차 잊히는 대신 오로지 모종이 잘 자라도록 온도와 잎 수를 세고 흙의 습도 확인에 집중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와 문서에 파묻혀 살던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선물 같은 노동의 휴식이다.
2월 초, 우연히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가 브로콜리 매대 앞에서 망설이는 나를 보고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길래 ‘브로콜리 국내산(제주)이 3,500원이야.’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내가 비싸서 망설이고 있는 걸 눈치채고는 ‘안 되겠다. 사랑하는 사모님이 좋아하는 브로콜리 맘껏 드셔야지, 내가 모종 키워볼게.’ 사실 고추 모종 키우기에 자신감을 얻은 남편이 며칠 전부터 품목을 늘려볼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기미가 보였다.
이후 고추 모종 옆으로 브로콜리, 오이, 흑토마토, 찰토마토, 부추, 대파 씨앗을 파종하고 모종으로 키워 한방에 옹기종기 같이 지내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 주먹구구식 우리만의 육묘장에는 이제 돌봄 대상이 여럿이다. 이 방법도 써보고 안되면 또 다른 방법으로 모종들을 키우고 있지만 정성 들이는 시간만큼 모종도 남편과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안 모종 포트에서 자라고 있지만 4월이 되면 품목별로 적정 시기에 밭 흙에 심기게 된다. 좁은 포트에서 넓은 밭으로 자리를 옮기면 그동안 받은 돌봄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지금부터는 밭 흙에 심어져 거친 환경에 맞서 흔들리지 않고 흙 속으로 강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강인하게 키워야 한다. 돌봄을 넘어 모종들을 단련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 보겠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19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