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내 놀이터야’ 팔십평생 땅 한평 소원하던 엄마, 소원이 이루어졌다
엄마는 내 고향인 울진에서 태어나 팔십 평생을 그곳에서 사셨다. 복잡한 가족사로 정 붙일 곳이 간절했던 엄마는 일찍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외벌이하는 아버지 수입으로 5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엄마의 등골은 휘었다. 지금도 엄마는 자식들이 한창 먹성 좋을 나이에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게 마음 한쪽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집에 땅 한 평 없어도 둑방 너머 하천부지에서 엄마가 길러온 고구마를 먹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재래식 화장실에서 푼 오물을 똥지게에 지고 인분 거름을 주러 가던 엄마의 뒷모습...그때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아낙이었다. 이른 아침 엄마의 똥지게 진 뒷모습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나는 주머니가 얇아 자식들에게 먹일 고구마 살 돈이 없는 아픈 속내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리고 철이 없었다.
엄마의 평생소원은 농사지을 내 땅 한 평 가지는 것이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이지 못했던 고달팠던 옛 시절과 뒤를 받쳐 주지 못하고 도시로 내보낸 자식들이 고향집을 찾을 때 땅이 준 선물 같은 수확물을 창고에 보관해 하나라도 싸주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었다. 하지만 자식들 입히고 가르치느라 엄마의 주머니는 늘 구멍 난 것처럼 비어 있었고 자식들이 다 성장한 후에도 입히고 가르칠 때 얻은 묵은 빚을 갚느라 땅을 살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엄마는 늘 땅을 가지고 싶어 했다. 자식들이 다 결혼해 먹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못 먹이던 시절이 잊히지 않는지 흙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엄마의 몸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해 예전만큼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고향에 작지만 우리 식구 먹을 고구마는 원 없이 지을 수 있는 작은 땅을 가지고 있던 내가 귀농을 결심하고 부모님 곁으로 오면서 드디어 엄마에게도 ‘내 땅’이 생겼다.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마치 평생소원을 이루었다는 듯,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다며 크게 기뻐하셨다.
우스갯소리로 ‘엄마, 그 땅은 내 이름으로 돼 있는 건데…. 엄마 땅도 아닌데 뭐가 그리 좋으시대?’ ‘새끼 땅이 내 땅이지 뭘…. 좋다…. 참 좋다….’ 내 농담은 귀에 담지도 마음에 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평생 소원하던 땅이 비록 당신 명의가 아니어도 자식에게 있는 게 좋을 뿐이다. 그렇게 엄마는 ‘새끼의 땅’이자 ‘당신의 평생소원’인 밭에서 지난해부터 키우고 싶은 작물을 키우고 있다.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하천 부지에 고구마 심고 비가 많이 와 심어놓은 고구마가 다 떠내려가던 아픈 기억을 잊을 만큼, 무릎으로 흙을 기어가며 호미질한다. 하천 부지에서 비가 오면 흙탕물에 심어둔 작물들이 다 쓸려 내려가고 비가 그치면 다시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야 했다고 엄마는 그때의 서러움을 잊지 않고 말씀하신다.
지난해부터 엄마와 나는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 밭농사를 시작했다. 내가 농사 연습을 한동안 하고 귀농했어도 흙에 씨앗을 바로 심을지, 비닐하우스 안에서 심어 싹이 나오면 옮길지를 두고 둘은 늘 툭닥툭닥했다. 작년 검은콩과 옥수수를 심을때다. 밭 흙에 씨앗을 바로 심을 건지 하우스 안에 싹을 틔워서 옮겨 심을 건지를 두고 의견이 팽팽했다. ‘엄마, 그걸 언제 하나하나씩 심었다가 옮겨요. 그냥 뿌리자’ ‘딸, 안돼. 그러면 싹이 안 나와’ 다른 건 다 양보하는 엄마가 농사일만큼은 단호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농사는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과정이 아니라 하천부지에서 정성껏 심은 고구마가 물에 쓸려 내려가도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했던 심정을 알아 작물 하나하나에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것 같다.
올해 초 봄이 오려면 한참 남은 겨울부터 엄마는 밭에 심을 작물을 생각했다. 올해는 오가피, 엄나무(개두릅), 구기자나무를 심고, 더덕, 도라지 씨를 꼭 뿌리겠다고 하셨다. 이 품목들은 전부 올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일년생 작물이 아니다. 최소한 2~3년은 지나야 새순이 나고 뿌리를 수확할 수 있다. 굳이 아까운 땅에 당장 먹을 수 없는 걸 심느냐고 투덜거렸지만 결국 이번에도 엄마의 뜻대로 며칠 전(30일)에 30주를 심고, 씨를 뿌렸다.
심은 나무들 곁에서 ‘몸살 나지 말고 잘 살거라’ 묘목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혼잣말하는 엄마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장 먹을 수 없어도 이 땅에서 서투르지만 농사짓고 사는 자식들과 같이 무럭무럭 자라며 자식들 곁을 지키는 친구 나무가 돼주라는 마음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딸, 고마워, 여기는 내 놀이터야. 여기서 니들과 5년만 즐겁게 지내다 갈란다’ 엄마가 처음 가져보는 놀이터, 엄마의 농담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뭘 하든 투덜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며칠 전 심은 나무가 자라 새순이 나오고 열매가 달리고, 더덕과 도라지 향이 나는 밭에서 엄마의 5년이 무한히 길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