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딸...”나를 다시 살게 한 엄마의 한마디

우울증으로 힘겹게 보내던 나날, 나를 일으켜 세운 말...

by 선심화

우리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가족이라는 두 글자,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 자매로

고향을 가는 길은 대부분 같은 기억의 반복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의 희미한 학창시절과 어렵게 살던 가정형편에서 도시로 나와 구직을 하고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주마등처럼 스치는 세월의 기록이다. 울진 가는 길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대화의 주인공은 달라지지만 대부분 같은 기억 속 가족 중 하나다.


퇴직을 결정하고 25년 12월 17일 마지막 출근 후 12월말까지 남은 기간은 긴 휴가를 내고 고향인 울진으로 보름간 쉬러 가는 길 그날은 주인공이 엄마다. 팔순에 가까운 엄마의 세끼를 이번에는 내가 해야겠다. 내가 있을 동안이라도 엄마가 좀 편했으면, 아버지 저녁 시간 걱정하지 않고 동네 마실가서 아줌마들과 맘껏 수다 떨고 오게 해 드려야지 다짐했다.


가는 길 주인공인 엄마를 생각하다보니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은 그때가 떠오른다.


십수 년 전, 퇴근길 버스안에서 나는 멍하니 도시의 건물이 뿜는 불빛들을 영혼없이 바라봤다. 내가 왜 사는건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아무것도 하기싫고 사무실 일도 너무 지겹고 심지어 애들도 귀찮았다.

그러기를 여러 날, 남편이 병원을 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한다.

“너 요즘 좀 이상해...”

나도 내가 이상하더라. 늦게 출근한다고 직장에 연락하고 천호동에 있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제가 좀 요즘 이상합니다”


오랜 기억이지만 문항이 꽤나 많았다.

긴 답변을 마치고 50대중후반 쯤 되는 의사선생님과 마주했다.

첫 대면이지만 뭔가 얘기를 나눠도 비밀을 지켜줄 것 같은 안도감이 살짝 들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사실대로 얘기해도 되겠지?

2009년은 정신과를 다녀오면 뭔가 이력에 오점이 남는다는 그런 말들이 왕왕 있을때다. 편견과 부정적 낙인은 오롯이 본인이 감당해야 하던 때다.


2~30분 상담을 하고 의사선생님이 약처방을 해줬다.

잠을 제대로 못자니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알약을 병원에서 직접 처방해서 주더라

신경안정제였던 것 같다. 수면제는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1주일에 1~2번에서 주기를 바꿔가며 네 번의 계절을 힘겹게 보냈다

지금 돌아봐도 참 힘겹고 눈물나던 때다.

내가 나를 알지못하고 누군가 나를 끌고 가줬으면, 아이들을 품에 안고도 사랑을 느낄 수 없던 쓰리고 아팠다. 동생이 울면서 갖고 온 탕약기조차 고맙지 않았다.


우울증의 원인은 사실 복합적인데 훗날 나를 돌아보니 돌이켜보니 맏이 콤플렉스와 자신에 대한 완벽주의 기대치가 너무 엄격했다.


약복용과 상담을 반복하는 동안 남편과 동생들의 절대적 지지로 네 번째 계절 어느 날 병원 상담을 마치고 건물을 나오는데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파랗더라 그 하늘을 보며 “아...좋다..나..살았구나”

몸 구석구석에서 감정의 세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다시 일어설 수 있겠구나 하는 울컥한 마음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우울증으로 힘겹게 보내던 어느 주말, 울진에서 부모님이 버스를 타고 집에 오신 적이 있다.

잘 지내던 딸이 갑자기 정신과를 다니고 우울증이라니 시골 부모님은 딸 얼굴이라도 봐야겠기에, 어려운 발걸음을 했지만 냉랭한 나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먼 타인같은 사이가 되버린거다

볕이 잘 들던 거실한쪽에서 손톱을 깍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 와서 말없이 앉으셨다.

“우리 딸, 엄마가 너무 큰 짐을 줬구나. 미안하다”

나는 아무 대꾸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가 알고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엄마가 알고있었구나.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내가 왜 아픈지 엄마가 알고 있구나


엄마의 그 말이 나를 다시 살게하고 일으켜 세웠다는 걸 지금은 너무 잘 안다.


251229 경주(엄마와나).jpg 25.12.29. 경주 불국사를 다녀왔다. 엄마와....

그 이후 우울증을 극복하고 그 힘들었던 시기를 잊지 않고 마음을 살핀다.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그 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지금도 한걸음 떨어져 삶을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40대 초반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이 어쩌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아니였을까. 신이 있다면 나를 이뻐해서 주신 기회였다 싶다.


그 덕에 나는 늘 내 마음을 살핀다.

불러도 불러도 그리운 엄마와도 잘 지낸다.

지금도 간혹 투닥투닥한다. 그런데 엄마가 늘 져준다.

여든에 가까운 엄마는 끝까지 쉰이 넘은 나를 지켜주고 있다.


26.1.13.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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