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4년차 딸의 출근을 응원한다
딸아이는 이제 직장 생활 4년 차다. 첫 직장에서 2년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지금 직장으로 이직했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던 일을 포함한 근무조건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고 이직을 축하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다는 얘기를 제법 자주 한다. 딸아이와 나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요즘 대세인 MBTI가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친 엄마에게 간혹 상담을 구한다.
특히 상사와의 관계가 힘들 때는 툭툭 넋두리를 포함해 답답함을 호소한다. 그럴 때면 귀로는 딸의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다른 한편에선 어찌 답해 줘야 좋을지 깊이 고심한다. 사회 초년생의 넋두리로 듣고 경청만 해주는 게 답인지, 딸과 상사의 각각의 처지에서 이해를 시켜야 할지, 어떤 답을 해줘도 사회 초년생은 본인이 유리한 쪽으로 받아들이기에 십상이니 말이다.
28일 늦은 퇴근 후에 딸이 이렇게 말한다
”집에 와도 일이 떠나지 않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좀 받아 봐야 하나 싶어…. 엄마….“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오늘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들을 털어놓는다.
이번에도 들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감정으로 털어놓는지 너무나 이해가 됐다.
이게 길었던 내 직장 생활의 저력인 걸까, 상황 파악이 금세 되어 딸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가 충분히 되었다.
지난 35년 직장 생활을 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났다. 상사, 동료, 부하직원, 단체 회장님들, 센터장들, 셀 수 없이 많은 민원인, 드문드문 기억 속에는 잊히지 않은 어르신들까지….그 세월 속에서 만난 이들과의 경험이 힘든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못 줘도 상담은 해줄 수 있는 나만의 무기인 셈이다. 퇴직 하고 돌아보니 사람과의 관계 그 어려웠던 것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 나만의 힘인가 보다.
내가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3년 차이던 때이다. 평생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면사무소에 근무할 때인데, 마침 발령으로 업무 변동이 있고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변동된 업무는 사실 선임이 해야 할 회계, 계약 업무였다. 똘망똘망해 보이는 24살 여직원이 하기엔 딱 맞다 생각했던지 면장님과 총무계장님이 그 업무를 하라고 결정하신 거다. 직전 담당자는 다른 곳을 이동하고 당장 며칠 뒤 직원들의 봉급을 줘야 했다.
당시는 흙빛 봉급 봉투에 수기로 급여가 얼마인지 적고, 직접 현금을 넣어 줄 때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떻게 어려운 그걸 했는지…. 다음 업무는 농수로 공사 계약 건 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는 면사무소에서 일정 금액 이하의 공사계약도 할 때다. 업무도 모르겠고 너무 어렵고 힘들어 ‘안 되겠다. 면장님께 가서 업무가 어렵고 힘드니 바꿔 달라고 해야지….’
2층에 있는 면장 실 앞에서 망설이는데…. 방안에 면장님과 총무계장님의 대화 소리가 새 나왔다.
아마 총무계장이 내가 업무로 어려워하는 걸 눈치채고 먼저 보고를 드린 모양이었다.
”아니 뭐야…. 똑 부러질 것 같아 시켰더니 형편없구먼…. 제대로 뭘 하는 게 없어….“나는 2층 면장실 문을 두드리지도 못하고 쫓기듯 1층으로 후다닥 내려와 면사무소 뒷마당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한참을 울었다. 너무 서럽고, 창피해서였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모르면 가르쳐 줘야지…. 형편없다고…. 그래…. 해보자…. 까짓거….’그렇게 나는 스스로 다짐을 하고 그 시기를 버티고 버텼다.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지금도 내 기억에 쐐기 박힌 상사의 호된 뒷담이 잊히지 않는다.
딸의 토로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너를 탓하지 마라. 오늘도 힘든 회사를 다녀오느라 고생한 너를 네가 왜 탓 하니….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고생했다…. 하고 안아줘라…. 그것도 연습이 돼야 하더라…. 엄마도 그랬다…. 하루하루가 힘들어 화내고 짜증 내고 수없이 나를 탓하고 했다. 그런데 그러고 나도 변한 건 없더라. 그래서 지금은 나를 안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한참 동안 우리는 딸의 직장 얘기와 나의 경험담으로 얘기를 나눴다. 딸에게 퇴근하면서 직장을 사무실에 두고 오는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일과 내 삶과의 균형…. 그러나 월급쟁이가 직장과 나를 분리해 균형잡기가 말처럼 그리 쉽나? 길고 길었던 직장 생활을 마친 지금 돌아봐도 참 어렵다. 그러나 어차피 직장에서 상사든, 일이던 피할 수는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좀 더 나를 살피고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지는 각자의 숙제다.
오늘도 딸은 늦은 퇴근을 할 거라면서 출근했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 지만, 오늘은 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릴까 한다.
”오늘도 수고했다…. 딸….“ 그렇게 말하며 안아주고 자야겠다.
26.1.29.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