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아버지와 여행, 나란히 걷는 법을 배웠다.

by 선심화

80대 부모님과의 여행은 갈까 말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결정할 수 있다. 일어나는 시간,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포함해 생활 리듬이 맞지 않기도 하고, 서로 다른 취미와 체력, 그러나 사실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버지와 성향이 달라 여행 뒤에 몰려오는 피로감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여행을 계획하고 함께 하는 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평행선 같은 관계를 조금은 좁히고 싶은, 두 세계의 속도를 맞추기 위한 나만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올해 초부터 남편과 나는 걷는 게 불편한 엄마와 독불장군 아버지, 그렇게 넷이 가는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가볍게 둘이 다녀와도 되지만, 못내 가고 싶은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다녀오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이제 거동도 불편하고 세상의 빠른 흐름에 발맞추기도 어려워 자식들과 같이 가는 여행이 아니면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 그래도 TV 속 공항의 인파를 보며, 주변에서 자녀들과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전하며 전달되는 마음은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안다.


‘전쟁으로 비행기 값도 올랐다는데 나는 안 가도 된다.’ 여행을 가기 전 몇 번이나 경비를 걱정하며 아버지가 얘기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표현한다는 걸 잘 알아 ‘비행기 값 오르기 전에 예약해서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안심시켜 드리고 출발했다. 아버지와의 여행은 매번 떠나기 전, 새로운 곳으로 가는 설렘과 ‘아버지와 잘 지내다 올 수 있겠지’ 걱정스러운 마음 반반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예전과는 마음가짐이 좀 달랐다. 24년 끝으로 다녀온 여행 이후 아버지는 2년 새 눈에 띄게 나이가 든 노인이 되었다. ‘나 아직 건재하다’라고 늘 고집을 부리고 당신만의 마이웨이를 걷고 있지만 걸어가는 뒷모습에서도 이제는 예전의 당당함은 찾을 수가 없다. 꼿꼿하기만 하던 등도 눈에 띄게 굽어 있고 성격만큼이나 급하고 빠른 발걸음도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버지는 주변의 누군가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내심 부러운 내색을 감추지 않으신다. 그 마음을 알기에 차마 우리끼리 다녀온다고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이번 여행은 눈에 띄게 노인이 된 아버지의 건강이 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른다는 조급함과 다녀오면 우리 사이의 평행선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바라는 나의 소망을 담아 준비했다.


두 분의 속도에 맞게 이번 여행은 가까운 일본의 후쿠오카, 유후인, 벳부를 돌아오기로 했다. 3박 4일(24일~27일), 부모님의 속도에 맞춰 여행을 다녀온 지금 내 마음은 아리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2년 전보다 두 분의 걸음 속도는 더 늦어져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의 감각도 둔탁해졌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느려진 발걸음과 무뎌진 감각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먹먹했다.


여행 이튿날(25일) 일어나보니 아버지가 안 계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운 곳이 궁금한 아버지는 이미 밖으로 나가셨다. 전날 자기 전에 내일 아침 비 예보가 있으니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아무래도 나가실 것 같아 ‘아버지, 혹시 나가셨다가 길을 잃어버리시면 자리 옮기지 마시고, 전화하세요. 꼭이요’ 단단히 일러두었다. 산책을 나간 지 1시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아 여러 번 전화했으나 받지 않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30분이 지나도록 연락은 닿지 않았고, 불안감은 커졌다. 잠시 뒤 연결된 아버지는 숙소 앞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 숙소에 오신 아버지는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전날 신신당부 드렸지만 결국 비 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헤매신 거였다.


예전 같으면 찾으러 나갔을 텐데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날을 세웠을 상황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전화하지 않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흠뻑 젖어 돌아온 아버지를 보고 다행이라는 마음은 잠시, 끝까지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며 당황했을 당시 상황에 올라오는 서글픈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아버지, 국제 미아 될 뻔 했는데 잘 찾으셨네요. 잘하셨어요’


드라이기로 젖은 운동화를 말리며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서 나는 알았다. 아버지가 전화하지 않고 끝까지 숙소를 찾아온 건 아직 내가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존심이 지금 당신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존심을 나는 고집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이다.

260427 일본(아버지가 걸은 유후인 뒷골목).jpg 아버지와 나란히 걸은 유후인 뒷골목...

아버지와 나는 평행선 같은 관계다.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혀보기 위해 다녀오는 여행, 하지만 젖은 운동화를 말리며, 아버지가 좋아하는 초밥을 위해 2시간을 기다리고, 유후인 동네 뒷골목을 누비며 나눈 대화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억지로 평행선을 좁히려는 노력보다, 이제는 내가 세상과 아버지의 빈틈을 뒤에서 조용히 메꿔 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 아직 건재하다’라며 아버지가 보내는 신호를 내가 먼저 알아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일본의 낯선 거리에서 뒤를 따라다니며 본 아버지의 뒷모습이 언젠가 내게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나는 그 뒷모습을 가득 담으며 한 걸음 뒤에서 속도를 맞추는 연습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마주 보는 평행선 같은 부녀일 것이다. 하지만 맞닿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서 나란히 이어지는 평행선이기만을 기도하며 이번 여행을 마쳤다.

260427 일본(오호리공원을 산책하는 우리).jpg 후쿠오카 오호리공원을 산책하는 엄마, 아버지, 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29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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