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스스로 일어나는 것 까지가 진정한 퇴직이야”
퇴직한 선배 한 분이 우울증으로 고생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의아한 적이 있었다. 전해 들은 바로는 원래 소심하신 분이라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잦지 않고. 거기에 더해 부인이 갑자기 집안에 들어앉은 남편을 대놓고 삼식이라고 타박해 상심이 깊어지면서 지금은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오늘 아침 선배 언니랑 나눈 카톡 대화 중에 언니가 “옆에 있으면 꼭 안아주고 싶다. 사실 퇴직하고 스스로 일어나는 것까지가 진정한 퇴직이야. 잘했어. 수고 많았다!!” 눈곱도 떼지 않은 이른 아침,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 자칫 눈물까지 날뻔했다. 마치 언니가 옆에서 지난 한 달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싶었다. 얼른 시원한 물 받아 세수하고 크게 한번 숨을 쉬고 하루를 시작했다.
흔히들 오랜 기간 직장 생활 후 퇴직하면 훌훌 털고 지긋지긋한 직장은 뒷발로 차버리는 바로 자유인이 되리라 짐작하는데, 막상 퇴직 전 보름의 휴가와 이제 실제 퇴직 후 보름 남짓 보낸 내가 겪은 감정선은 다소 복잡했다. 나는 이직을 하지 않고 한 직장에서 꽉 채운 35년에 며칠을 더 한 직장 생활을 했다. 물론 여러 부서를 옮기며 순환 업무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다들 직장을 전쟁터라 비유하는데 나도 공감한다. 다니고 있는 직장보다 바깥세상이 더 지옥일까 퇴직하기 두렵다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자주 듣곤 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오늘 할 일을 세밀하게 수첩에 적는 아날로그식 출발로 대부분의 일과를 시작했다. 그렇게 종일 컴퓨터를 앞에 두고 올라온 서류들을, 미간을 찌푸리며 뚫어져라 쳐다본다. 오탈자, 맞춤법, 정확도 하루 중 반나절은 그렇게 화면과 씨름한다. 간혹 올라간 보고서로 상사에게 샤우팅이라도 한 방 맞으면 그날은 엉망진창이다.
그렇게 대부분 직장인은 매일매일 전쟁을 치른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잘 버티다 나온 퇴직이지만 직장 밖 홀로서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또 마주한 현실이더라니….
그래서 내가 택한 건 ‘선택적 고독’이다. 오롯이 내가 나를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직장 생활에 있었던 기억에도 없는 수많은 일들, 오가며 만난 많은 사람들을 조용히 마무리할 여유 없이 짐보따리를 챙겨 나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적 고독’을 택한 이후 주변에서 전화와 카톡이 오지만, 받지도, 답하지도 않고 침묵했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안아줄 시간과 연습이 너무나 절실했다. 지난 한 달 중 보름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가 세끼 밥해드리기를 하고 중간중간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내가 진정 내려놓아야 하는 것에 대해 골똘히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츰차츰 안정을 찾아가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깥세상이 이제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언니가 칩거하는 나를 기다려줬다는 것도 오늘에사 알게 됐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고 퇴직하는 우리 중 하나라도 번아웃 후유증, 공허, 상실감, 은퇴 후 증후군, 정년 우울증의 터널로 진입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명예로운 퇴임, 제2의 인생, 새로운 시작, 여유, 자유인이라는 또 다른 터널이 그 옆에 나란히 있음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됐다.
26.1.16.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