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날 위해 야채바구니를 만들어 줘’
얼마전(2월 13일), 둘째가 신림동으로 방을 얻어 나갔다. 아는 형이랑 둘이서 원룸을 얻어 나가서 살겠다는 거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말하는 취업을 하지 않고 1인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다. 노트북 하나 챙겨 카페로, 도서관으로 다니며 간혹 밤을 꼴딱 새우는 걸 종종 봤다. 출퇴근으로 직장 생활을 오래 한 나는 처음에 아들의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고 밤새 작업하는 규칙적이지 않은 패턴이 나와는 맞지 않고 정기적인 급여 생활자였던 나는 아들의 수익 구조가 낯설었다. 그러나 청년 취업난이 어려운 지금 세월에 엄마의 관심이 간섭, 부담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모르는 얘기를 하면 충분히 들어주고 의견을 물으면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대답해 줬다.
아들의 독립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대학에 들어가 학교가 집에서 1시간 거리 내인데도 굳이 자취하고 싶단다. 성인이 되었으니, 독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방을 얻어줄 여유가 없다고 하고 그냥 집에서 다니자고 설득했지만 결국 자취하는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이 결정했으니, 생활비를 지원해 줄 수는 없다고 하니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은 친구와 1년여 자취를 했다.
어느 주말 아침 전화가 왔다.
‘엄마, 저 좀 데리러 와 줄 수 있어요? 저 이제 집에 들어가려고요….’아무것도 묻지 않고 알았다고 하고 집 근처로 가니 짐을 바리바리 싸서 차에 싣는다. 집으로 오고도 아무 말이 없고 나도 묻지 않았는데, 며칠 뒤 ‘엄마, 다른 사람이랑 사는 게 참 힘들었어요’
친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집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고 자기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다 보니 상대적 빈곤을 느꼈고, 끝에 공과금 계산 문제로 언쟁이 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 독립은 4학년 때 학교 연구실에서다.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느라 한 1년을 그렇게 보내며 형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간혹 빨래를 들고 집에 와서 ‘역시 집이 최고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을 집에서 혼자 개발일을 하더니 집에 있으니 너무 편안해서 안 되겠다고 독립해서 좀 고단하게 살아야겠다고 나갔다.
흔히들 자녀가 스무 살이 되면 독립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되면 이제 법적으로는 성인이다. 부모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성인과 성인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의 생활 방식이 맞지 않다 보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유발되고 관계는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되기도 하다. 부모가 계속해 보호막이 되줄 수 없다. 독립을 해 혼자 살면서 끼니도 직접 해결하고 빨래, 청소, 공과금, 월세 등 해봐야 생활력을 키울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 앞에서 나는 머리로 받아들인 자녀의 독립을 실행하지 못했다. 최소한 자녀의 독립을 실행하기 위해 방 한 칸 마련할 자금은 줘야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거비가 너무 높다. 내 형편상 전세금을 마련해 줄 여력은 없었다. 자녀의 독립을 바라지만 해주지 못하는 형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아들은 세 번째 독립을 한 것이다.
며칠 뒤(18일) 카톡이 왔다.
‘엄마가 날 위해 야채바구니를 만들어 줘.’
집에 있을 때 매일 아침 먹던 과일 몇 조각이 생각난 모양이다. 아직 시원찮은 수입에 월세, 공과금, 생활비를 지출하려니 과일까지 사 먹는 건 호사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두 번의 독립으로 이제 아들은 집을 떠나 살면 얼마의 돈이 드는지를 잘 안다. ‘내일 아침에 도착하도록 보내줄게. 과일은 엄마가 보내줄게, 과일 정도는 보내줄 수 있어.’
바나나, 사과, 방울토마토, 블루베리(냉동)를 급하게 시켜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도록 했다.
아들이 ‘과일부자’라며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
스물여섯, 혼자 나가 살아도 아무 문제 없는 성인이다. 그래도 방 한 칸 마련해 주지 못한 미안함을 한쪽에 갖고 있는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다. 자녀의 독립을 굳이 구분한다면 공간의 독립, 심리적 독립, 경제적 독립을 꼽을 수 있다. 자녀의 최종 독립은 ‘경제적 독립’이라는 말도 있다. 공간이 분리되고 혼자 살아도 결국 경제적 독립이 안 되면 부모의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경제적 독립이 완전해져도 엄마의 응원하는 마음으로 과일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세 번째 독립한 아들이 형과의 동거를 끝내고 언젠가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인생은 늘 예고치 않은 변수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시 네 번째 독립을 지지하며 응원할 거다. 씩씩하게 혼자 잘 살아주는 아들이 고맙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9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