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아버지와 5남매의 실갱이

‘알았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아직 아버지 끄떡없다’

by 선심화

오늘(23일) 아침 ‘카톡’이 울린다. 이 시간 가족톡의 울림은 아버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친정 가족 카카오톡에는 12명이 묶여있다. 엄마, 아버지, 5남매와 배우자…. 딱 12명이다. 카톡을 처음에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은 아버지다. 다른 집을 보니 가족들이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더라면서 부러우셨던지 우리도 가족톡을 만들어 소식을 전하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83세다. 나이로 치자면 가족방을 제안한 사람이 아버지라서 좀 놀랐다. 아버지로서 딸, 아들, 사위, 며느리 한 곳에 모아두고 싶지만, 우리들은 형부, 제부, 올케, 시누이 관계이니 불편할 수 있는 관계다. 그러나 우리 집 우선순위 1번인 아버지의 명령으로 가족방이 시작됐다.


텔레비전에서 보이스 피싱, 화재, 누전 사고 등 안전사고 뉴스가 나오면 어김없이 가족톡은 아버지의 당부가 전해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있다. ‘아버지 살아있으니 잔소리한다.’

잦은 당부가 자식들에게 귀찮은 잔소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족방으로 가장 많이 전하는 건 동해 일출이다. 아침잠이 없어 일어나 바로 산책을 나서 동해 일출을 보며 사진을 찍고 바로 올린다 늘 같은 코멘트를 다신다 ‘지금 동해바다요’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기운을 카톡으로라도 자식들에게 전하며 좋은 기운 받아서 편안하라는 아버지만의 방식이다.

260223 동해바다(4).jpg 오늘 아침 보내온 일출 사진

사실 아버지는 의사에게 많이 걸으면 안 된다고 처방받았다. 하루 만 보 이상 걸어야 건강을 유지한다는 당신만의 고집으로 계속 걷는다. 그러나 이제 팔십을 넘기면서 병원에서는 최대한 걷는 걸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아버지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기저질환이 있어 서울을 오가며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는다. (울진에 거주)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의 노인은 절대 무리하게 걸으면 안 된다. 만 보 이상의 걷기는 심장에 무리를 줘 심장근육에 무리를 줄 수 있고, 또 오래 걷다 보면 체력이 소진되면서 혈압이 불안정해져 피로가 쌓일 경우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면서 어지러움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충분한 휴식 없는 반복적인 걸음은 오히려 근육통과 만성피로를 유발해 면역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걷기 사랑은 본인만의 건강 유지 비결이지만 의사의 절대 걷지 말라는 처방과 자식들의 걷기 통제 얘기는 아버지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병원을 다녀가면 한 며칠은 자제하지만 결국 카톡으로 올라오는 동해 사진이 만 보 이상을 걸었다는 증거다. (집에서 바다까지 다녀오면 만 보가 훨씬 넘는다)


260223 동해바다(7).jpg 울진 은어다리 사이 일출사진
260223 동해바다(6).jpg 일출사진(아버지는 사진을 잘찍으신다)

고령의 아버지와 자식들의 실랑이는 무한 반복이다. 수시로 전화하는 자식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무리해서 걷는 게 건강을 해친다고 하잖아요. 제발 걷지 마세요.’

‘알았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아직 아버지 끄떡없다’


아버지에게 걷기는 건강 유지 비결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 발로 걷는 것조차 못하면 정말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다. 그리고 퇴직한 지 20년이 지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으로 걷기가 중요한 목표인데 하지 못했을 때 오는 불안감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아무리 의사의 말이라도 이 상황을 정신력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도 한몫하는 듯하다.


전쟁을 겪고 우리나라 현대사를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아버지는 자신의 안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가장으로 일곱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평생 생계를 책임지며 가정에서의 위치는 확고했다. 가장으로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한 퇴직 이후, 산에 다니고 걷기에 집중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보인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장으로 다섯 자식 공부시키고 짊어졌을 아버지 두 어깨의 무게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는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그럼에도 아버지와의 실랑이는 어렵다.


마냥 그냥 두기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못 하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제 방법을 좀 바꿔가고 있다. 전화로는 안부만 나누고 만나게 될 경우 자식들 중 한 사람만 얘기하기로 했다. 뻔한 설득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는 인정욕구를 채우고 만 보에서 5천 보로 줄여가도록….

260223 동해바다(1).jpg 아버지가 보내준 일출사진(26.1.1.)

오늘 아침 어김없는 동해의 일출 사진으로 당신의 건재함과 자식들의 월요일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카톡에 우리는 ‘만 보 걸으셨네’를 숨긴 최고의 이모티콘을 날렸다. 아버지의 만 보 걷기에 대꾸하기보다 삶의 방식이 다름을 인정하며 아버지와 우리의 평행선이 조금은 좁아지기를 바란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9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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