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도전, 고추모종 키우기(3)

‘구독자 만명이 우리의 고추모종키우기를 지켜보고 있어..’

by 선심화

실패했다. 혹시나 이제나저제나 하고 숨죽이며 보고 또 보고 기다렸는데 씨앗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발아한 씨앗을 흙에 심고 120시간(5일)이 지나면 싹이 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한 스무 개 정도 고개를 살짝 들이밀고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거다. 혹시 물이 부족해 그런가 싶어 저면관수까지 하고도 이틀을 기다렸지만 낭패다. 발아가 안 된 게 문제가 아니다.


”여보 어떻게 해, 집에서 고추 모종 키운다고 글 쓴 거 오마이뉴스 구독자 4천 명 이상이 읽었단 말이야….”


사실 구독자는 더 있다. 귀농 준비 과정으로 여러 해 운영한 주말 텃밭에서의 일상과 초보 농사꾼의 도전, 성공, 실패를 담은 영상을 수년째 유튜브로 올리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까지 합하면 만 명이 넘게 ‘집에서 고추 모종 키우기’ 무모한 도전을 알고 있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기세등등하던 남편도 기가 죽었다.

“뭐게 잘못됐지?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온도도 적당했고, 습도도 괜찮았고….” 사실 유튜브에 오랫동안 영상을 올리다 보니 구독자분 일부는 댓글로 응원도, 쓴소리도, 조언도 한다. 이번 고추 모종 도전에 대해 ‘아니, 그게 집에서 가능해요?’라는 글이 있긴 했다.

그걸 보고 우리는 ‘우리가 성공해서 보여주자’ 하고 불끈 두 주먹을 쥐고 결의를 다지는 우리만의 퍼포먼스도 했단 말이다.


“여보 다시 연구하자. 우린 찐 마늘도 해봤잖아…. 실패해도 재밌었잖아.”


귀농을 준비하면서 농사 연습으로 여러 해 마늘을 심은 적이 있었다. 마늘을 심어두고 수확은 했는데 수확한 마늘을 아파트에 가지고 올 수가 없어(마늘은 수확 후 며칠간 흙 위에서 2~3일 정도 햇볕에 말려야 한다. 마늘 뿌리 습기를 없애고, 줄기에 남아 있던 영양분으로 마늘 알이 굵고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주말 텃밭에 널어놔야 했던 적이 있는데, 혹여 누가 가져갈까 싶은 마음에 마침 가지고 있던 멀칭비닐(밭의 잡초를 방지하기 위해 덮는 검은 비닐)로 곱게 덮었다. (사실 감추어둔 게 맞을 거 같다).


주말 텃밭은 주말밖에 갈 수 없어 다음 주말 텃밭을 가보고 정말 뒤로 자빠졌다. 남편과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볕이 뜨거운 6월 말 일주일을 그것도 검은 비닐로 덮어 땅과 비닐 사이에서 마늘이 익어버린 거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그때 그 마늘을 우리는 ‘찐 마늘’이라 이름했다.


마늘은 전년도 10월 말경 씨 마늘을 심어 추운 겨울을 보내고 5월 중순에 마늘쫑을 뽑아주면(마늘쫑을 뽑아줘야 마늘이 굵어진다) 한 달 정도 뒤 6월 말경 수확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대표 작물이 마늘이다. 긴 겨울을 흰 눈 속에서도 추위를 잘 견디고 버티면서 마늘촉이 올라오는 게 너무 대견해서다.


사실 겨울을 나고 올라오는 마늘촉을 보면 고단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견디고 툴툴 털고 일어서는 우리네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키운 마늘이 찐 마늘이 되어 잠시 기가 막혔지만 우리는 익은 마늘을 전부 까고 빻아 큐빅으로 냉동 보관해 반년을 먹었다. 음식을 하면 남편이 늘 이렇게 묻는다.

“이거 찐마늘이야…? 그래서 더 맛있네”

240622 찐마늘..ㅎㅎ.jpg 24년수확한 찐마늘...ㅎㅎ(색깔이 누런게 쪄진마늘이다)

찐 마늘로 잠시 마음을 풀고, 600개가 심긴 트레이(씨앗을 뿌려 모종을 기르는 육묘용 판)를 엎었다. 엎기 전에 실제 씨앗들이 어쩌고 있나 보려 몇 개를 파보니 발아 자체를 못 하고 씨앗이 대부분 그대로 있다. 눈으로 확인하니 더 확실하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보여 일단 다시 고민했다.


이틀을 끙끙거리며 원인을 분석한 결과 ‘바닥 온도’ 가 트레이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다.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바닥 온도(28~30도), 공기 온도(25~28도)가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거실에 설치한 비닐하우스 안 공기 온도에 집중하느라 뿌리를 내리기 위한 바닥 온도에 소홀했던 거다. 땅에서 키웠으면 땅 온도(지온)일 테지만 거실에서 키우니 거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도를 유지해 줘야 했다. 고추는 뿌리를 먼저 내리고 잎이 나오는 작물인데 뿌리를 내리기 위한 적정 온도가 안되어 결국 발아를 하지 못했던 거다.

“다시 시작, 날을 잡자. 좋은 날로….”


“2월 1일 파종(트레이에 씨를 심는 것)하자. 파종 날짜 계산하기도 좋으니….”


그렇게 우리는 1차로 했던 과정을 다시 했다. ‘12시간 따뜻한 물에 담그기(6시간째 1번 물 갈아주기)-건진 씨앗을 키친타올에 감싸고 30도 온도에서 2일간 발아되기를 기다리기-발아된 씨앗을 트레이에 하나씩 심기-바닥 온도(이번엔 전기장판을 잘 활용하고 온도계로 바닥 온도를 측정하며 했다), 공기 온도 유지하기’

모종이 나오기까지 섣불리 기사를 쓸 수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지도 않고 조심조심 지켜보고 관리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온도계 2개를 더 추가하고 바닥에 1개, 사면에 4개로 바닥과 공기 온도를 체크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파종한 지 4일 차인 지난 4일, 살짝 느낌이 온다. 흙들이 솟아오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섣불리 기뻐할 수 없다.


파종하고 9일 차인 그제(9일) 떡잎이 나온 파릇파릇한 593개의 어린 새싹들에게 첫 저면관수(트레이 밑부분을 물에 담가 뿌리부터 물을 흡수하게 하는 것)를 했다. 발아기(씨앗이 싹터서 땅 위로 올라오는 시기)는 98% 성공이다. 이제부터는 육묘기(씨앗을 뿌려 싹을 틔운 뒤, 밭에 정식으로 옮겨심기 전까지 모종을 키우는 시기)다. 육묘기는 발아기와는 또 다른 환경을 해줘야 한다. 온도를 낮추고 햇빛양을 늘리고 수분을 잘 관리해 줘야 한다.


260211 오마이뉴스 (4).jpg 파종9일차 고추모종들(떡잎 난 고추모종..이제 본잎이 나와야한다)

귀농 초보 농사꾼 2년 차인 우리 부부의 도전과 실패는 계속될 거다. 어쩌면 남편도 나도 도시에서의 긴 직장 생활 동안 무수히 반복했을 도전과 실패,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60이라는 나이를 향해 익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26.2.11.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6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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