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여러분 제가 오늘 바둑이방울을 쳤어요..“
피아노학원에 가서 상담하고 오늘 첫 수업을 약속한 지난 며칠 동안 몇 번이나 생각이 바뀐다.
”하나도 못하는데 어쩐다, 못 알아들어 망신당하는 거 아닌가, 수업 1번하고 그만두면 어쩌지, 딸이 웃을 텐데….“큰소리 뻥뻥 치고 피아노 배우는 게 로망이라고 했는데….어젯밤부터 내일이 학원가는 날이네! 기다리면서도 내심 걱정도 되어 혼잣말만 한다.
”내일이 학원가는 날이네!…. 음…. 내일 11시지….“상담하러 갔을 때 책을 주문할 테니 책이 도착할 때쯤 첫 수업을 하자고 했던 걸 떠올리며 은근히 내 책, 내가 배울 피아노 책이 와있을 텐데…. 그 책이 보고 싶어서 걱정하면서도 내심 빨리 수업에 가고 싶기도 했다.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바이엘, 체르니 책을 담아 다니던 학원 가방, 그 학원 가방이 나도 오늘 생겼다.
물론 재질이나 모양은 달랐다.
수업이 끝나니 원장님이 학원 가방을 하나 주신다길래”네? 학원 가방요? “하고 놀라니
”성인을 위한 에코 가방이에요“ 딸뻘 되는 원장님이 내 마음을 읽었나 보다.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 앉으란다. 그것도 그랜드피아노….”선생님…. 저 진짜 도레미파솔라시도밖에 몰라요“ 상담 때도 말했는데 또 한 번 놀라서 얘기하고
”저기…. 저기 앉으라고요? 전 하나도 못 하는데요?“
웃으며 괜찮다고 앉으란다.
그렇게 생전 처음 피아노학원 문턱을 넘은 나는 세상에, 피아노 그것도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았다
오른손, 왼손 손가락 번호, 오선, 음표. 오십 년 전 초등학교에서 보고 배운 콩나물을 다시 마주했다
그렇게 50분을 열심히 설명을 듣고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도 살포시 올려놓아 봤다.
”바둑이 방울, 징글 벨“까지, 오늘 수업을 받았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은 기초 이론과 바이엘 실기를 나눠서 수업하는데, 성인은 아이들보다 시간을 내기도, 연습하기도 어렵고 작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보는 효율적인 수업 방식을 택한단다. 성인이 아이들보다 이해 능력이 빠른 장점이 있다고 하니 위안이 충분히 되었다.
다음 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2번째 수업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업 갈 때와는 발걸음이 다르다. 가볍다. 다시”야호! 내가 피아노 건반에 손을 대고 바둑이 방울을 쳤다네….“딸이 카톡으로 오늘 뭘 배웠냐고 물어보길래, 바둑이 방울을 찍어서 보내줬다.
”악보를 볼 수 있음?“
”저기요, 저 오늘 수업하고 배웠거든요“
긴 직장 생활을 마치고 퇴직이라는 관문을 거쳐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나의 몫이다. 치열했던 35년의 직장 생활 뒤에 찾아온 이 소소한 일상이 아주 고맙다.
다음 주 2번째 수업 전에 오늘 배웠지만 잘 안되는 양손 같이 가기”자장자장”을 연습하며 한 주를 기다려야겠다. 원장님께 혼나면 안 되니까 열심히 연습해야지….
26.1.20.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기사로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수정한 내용으로 올라갔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