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1년째다. 시어머니가 안 계신 이후로 나는 친정에서 명절을 보낸다. 5남매 맏이와 결혼한 남편은 맏사위로 매번 처가 식구들과 보내는 명절이 불편할 만도 한데 불평 한번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서 음식을 하고 장인, 장모를 챙긴다. 왜 그러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려라. 제사상에 아무리 좋은 음식 올리면 뭐 하냐, 드시지도 못하는데….’
내가 엄마, 아버지 흉이라도 볼라치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이제 살만해 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사드릴 수 있을 때 곁을 떠나버린 부모님을 늘 그리워한다.
직장을 다닐 동안 명절은 부모님이 상경해서 보냈다. 이제 퇴직 하고 고향으로 귀농을 한 후로 명절은 고향에서 보낸다.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기 위해 상경 하시던 부모님은 근처에 사는 다른 자식들도, 손자들도 전부 보고 가셨지만, 올해 명절 식구는 단촐하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뿐이다. 동생들은 시댁을 챙기거나 일정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다.
설날 당일(17일)저녁 아버지는 ‘너희가 없었으면 두 노인네만 명절을 보낼뻔했다….’라며 못내 서운함을 표현하셨다. 북적북적하던 명절을 어른 넷이 보내니 많이 허전하신 모양이다. 늘 보고 싶은 자식, 손자들이다.
지난해 추석 명절에 사단이 났다. 서울로 명절을 보내러 상경할 때는 미리 음식 식자재를 준비하고 근처 사는 동생들이 와서 다 같이 전을 부치고 해서 수월했지만, 고향에서 명절을 보내니 전부 나와 남편의 몫이다. 매번 하던 음식이지만 여럿이 같이 할 때와 둘이 하려니 양이 너무 많다. 엄마는 매번 하던 음식을 그대로 해서 서울에 있는 자식들에게 싸서 보내고 싶어 했다. 전을 부치고, 탕을 끓이고, 채소국을 만들고(울진은 무와 콩나물로 시원하게 국을 끓이고 국에 시금치,미역,고사리,냉이,버섯 무침을 조금씩 올려 먹는다) 생선을 찌고, 갈비찜을 하고….
그렇게 음식을 다 만들고 나면 그때부터 소분 포장이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기 위해 바리바리 싸야 한다. ‘엄마, 아니 명절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내버려둡시다. 명절에 요리하다 지쳐 쓰러지겠어….’
들은 척도 않는다. 내일(18일) 서울 가는 버스 편으로 음식을 보내야 엄마의 명절은 끝이 난다.
‘엄마, 음식량을 줄이든지 아니면 우리도 어디 여행을 가든지 이건 아닌 거 같아. 명절이 스트레스면 곤란해, 내가 친정 와서 명절증후군 생겼어.’
그렇게 언성을 높이면서 명절 내내 분위기는 험악했다. 급기야 남편이 중재하고 다음 명절부터 집에 오는 자식만 음식을 싸주는 거로 협상 하고 일단락됐다.
이번 명절이 오기 한참 전부터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이번에 진짜 음식량을 안 줄이면 다음 명절부터는 어디 여행을 가버린다고 혼자만의 다짐을 했다. ‘엄마, 줄여야 해요. 우리 먹을 거만 해요. 나도 힘들어요….’수없이 말했지만,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부지런히 시장을 다녀오는 걸 알면서 모른 척 했다.
16일 아침 일어나 부엌에 가니 고사리가 큰 양은솥에 하나 가득 불려있다. 엄마의 큰손이 또 명절 음식을 시작하는구나, 그렇게 이번에도 나는 엄마와 밀당을 하며 이틀을 꼬박 음식을 만들었다. 지난 명절 협상했던 집에 오지 못한 자식들 음식 싸서 보내는 건 실패했지만, 양은 그래도 많이 줄었다.
음식을 다 만들고 기름 냄새를 없애야 하고 새해를 맞아 깨끗이 씻기 위해 온천에 갔다. 매번 등을 시원하게 밀어주던 엄마가 기운이 없다. ‘아니, 뭐야, 엄마 힘들어? 음식은 내가 다 했는데?’
‘나도 피곤하네. 이제 늙었나 봐’ 여든인 엄마가 음식 하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못 먹이고 시집, 장가간 자식들에게 때만 되면 음식을 해 보내야 마음이 편한 엄마의 명절이 명절증후군을 이유로 투덜대는 큰딸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고단했던 모양이다. 혼자서는 음식을 만들고 포장해 버스에 실어 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만들어 보내주고 싶은 엄마를 누가 이기겠나!
성인이 되어 품을 떠나 대학에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해 각자 자식 낳고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을 만큼 살고 있어도 엄마에게는 어린 시절 풍족하게 먹이지 못하고 배를 곯린 미안함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버스한켠에 자식들에게 줄 음식을 실어 보내야 당신의 한 숟가락이 가벼워지는 엄마의 마음을 60이 내일모레인 나는 아직도 모르나보다.
이제 다음 명절인 추석은 9월 25일이다. 아직 일곱 달이나 남아 있다. 그때까지 이번 명절에 겪은 피곤함이 녹지 않을까? 여전히 엄마는 시장을 부지런히 다녀와 냉장고 한켠에 추석에 쓸 식자재들을 쟁여놓을 거다. 모른 척 해야겠다.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음식을 마음껏 해줘야 엄마의 상처가 아물 수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면 다음 명절증후군도 잘 지나가지 않을까?
26.2.19. 오마이뉴스에 기사 채택되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08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