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기 전 사람들은 나를 ‘과장님’이라고 불렀다. 직장 생활을 35년 하면서 부르는 호칭도 여러 번 바뀌었다. 우리 직장에서 과장은 실제로 한 부서의 업무를 책임지는 결정권자다. 내가 퇴직한 마지막 부서는 4개 팀에 직원이 40여 명 되었다. 퇴근할 때까지 당일에 올라오는 문서는 전부 결재하고 퇴근하려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 야근하고 올린 직원들의 결재 건들이 밀려있다. 내가 퇴근한 이후에도 직원들이 남아 일을 한 공문을 보면서 피곤했을 직원들에게 ‘오늘도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야겠구나’ 혼자 생각하곤 했다.
과장이라는 자리까지 가는 데 32년이 걸렸다. 35년 직장 생활 중 3년을 과장으로 일하고 퇴직을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승진이라는 문턱이 높고 넘기 어려운 문턱이다. 내게도 그랬다. 운 좋게 과장을 달고 직장의 허리 이상 역할에 힘듦과 고단함은 있었어도 나의 결정으로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수혜가 더 좋아지는 결과를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퇴직 후 직장을 벗어 던진 홀가분함 뒤에 찾아오는 헛헛함은 의외로 컸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나의 35년 직장 기를, MBTI 전혀 맞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한 31년의 가족 기를, 귀농하며 겪는 우당탕 실패와 성공을 담은 농사기를 글로 담고 싶었다.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를 통해 나의 글이 기사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글을 써도 되겠구나, 결국 편집자도 구독자인데 내 글을 읽어주는구나!’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첫 글이 실리고 글을 쓰는 지인에게 링크를 보내주니 나의 글쓰기를 너무 반가워하며 ‘브런치 작가’를 신청해서 계속 글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그 지인은 오랫동안 글을 쓰고 다듬는 게 직업이라
‘어휴, 어떻게 내가 작가 신청을…. 아직 좀 더 연습해서….’하고 말았다.
사는이야기에 글을 보내고 내 글들이 올라오며 다른 기자님들이 쓴 글도 유심히 보게 됐다. 그런데 일부 글들을 보면서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라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띄었다. 도대체 브런치가 뭐지? 하면서 찾아보게 됐다.
정확한 명칭은 ‘브런치스토리(brunchstory)’, 카카오에서 작가 신청이라는 심사 과정을 거쳐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글 쓰는 이들의 공간이었다. 다만, ‘작가 신청’을 해서 통과가 되어야 했다. 그제야 지인의 브런치를 들여가 그녀가 쓴 글을 제대로 읽고 브런치 작가들의 글들을 보게 됐다.
‘아…. 나도 쓰고 싶다.’
사실 오마이뉴스에서 채택하는 글이 기사로 올라오면 퇴직 이후 헛헛함을 채우는 소통하는 창구가 되어 보람이 크다. 나의 경험이라고 해도 시의성, 구독자들에게 전달될 사회적 가치, 공공성을 따져 글들을 분류해 오마이뉴스로 보냈다. 다만 오마이뉴스로 송고하지 못하는 살아오면서 느낀 감정을 담은 감성적인 글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어 용기를 내 ‘작가 신청’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작가 신청’은 300자 이내의 자기소개, 앞으로 브런치 작가로서 어떤 활동을 할 건지 활동 계획 300자 이내, 그리고 본인이 쓴 글 최대 3편으로 신청서를 제출한다. 이후 접수된 신청은 5일 이내 검토해 결과를 알려준다는 메시지가 뜬다.
‘작가 신청이 완료되었어요’
그렇게 나는 11일(수)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내고 기다렸다.
‘그래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 혹시 떨어질 수 있으니 다른 글을 써놓자’
그런데 어젯(12일)밤 잠들기 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브런치 앱 알림에 있는 거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 이거 전체 공지야? 뭐지?’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됐다.
길었던 직장 생활만큼 깊은 허탈함…. 그만큼 직장 생활은 내게 큰 의미였고 그동안 나의 전부였구나 하고 되돌아봤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던 곳에서의 최선을 뒤로 하고 이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과장님’에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브런치 작가’로 거듭 주어진 인생 2막을 당당히 걸어가겠다.